엊그제 텍사스 초등학교에서 총기 사고가 터졌다. 모두 19명이 죽었다고 들었다. 가해자는 겨우 18세의 남자. 이유는 anger. 분노 조절 장애로 보인다. 우리는 대개 무슨 문제가 있으면 외부로 향하여 손가락질한다. 저놈 때문에. 저것 때문에. 성경은 다르게 이야기한다. 가인과 아벨. 하나님이 아벨의 예배는 기뻐하셨고 가인의 예배는 싫어하셨다. 그러자 가인은 몹시 화가 났다. 가인의 예배를 하나님이 받지 않은 것은 가인의 예배가 행위 따로 마음 따로였기 때문. 즉 가인에게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하나님이 경고하셨다.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앞에 엎드리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창세기 4:7). 그러나 안타깝게도 가인은 문 앞에 엎드린 죄(분노)에 걸려 넘어졌다. 살인. 잘못은 자기에게 있는데 왜 남을 해할까? 이것이 분노의 무서움이다. 현대 사회는 이것을 사회적으로 조절하는 능력에서 너무 취약하다. 기독교는 어떻게 말할까? 분노를 포함하여 우리의 모든 죄는, 이웃을 향한 또는 타인을 향한 죄까지 포함하여, 결국 하나님에게 죄를 짓는 것이다. 예를 들어보자. "살인하지 말라." 이것은 정언적 명령, 절대적 명령이다. 살인했다면 하나님의 명령 즉 하나님을 거역한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하나님과 회계해야 한다. 분노? 역시 하나님과. 미움? 역시 하나님과 해결해야 한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잘못은 하나님을 향해 잘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어겼으므로. 게다가 사람은 누구나, 기독교인이든 아니든, 하나님의 걸작품이다. 분노는 하나님의 경고도 무시한다. 분노는 하나님도 무시하는 무서운 죄이다. 하나님의 분노를 성경은 <진노>라고 한다. 하나님은 그 무서운 진노를 우리에게 씌우지 않고 독생자 예수에게 (자신에게) 돌렸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