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December 22, 2024

[황현조 박사 칼럼] “초승달과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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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조 목사(IRUS 교수, 커네티컷비전교회 담임)

“초승달과 십자가”

주후 330년 로마제국의 콘스탄틴 황제는 수도를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플(현 이스탄불)로 옮긴다. 콘스탄티노플은 원래 고대 그리스의 도시 비잔티온이었다. 395년 로마황제 테오도시우스 1세가 사망하자 그의 두 아들이 동 로마와 서 로마를 분할하여 통치한다. 그러나 서 로마는 476년에 게르만족에 의해 멸망하고 만다.

동 로마는 정통성을 지닌 로마제국으로서 중세기 1천년동안 지속되었다. 그러나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서방에서는 로마제국이라는 명칭 대신에 동 로마제국이라 불렀고, 후에 학자들은 수도를 옮기기 이전의 로마제국과 구별하기 위해 동 로마를 비잔틴제국(Byzantine Empire)이라고 칭하기도 한다.

오래 전 비잔티온 시민들은 그 도시가 달의 여신 이오헤라의 딸인 케로에사에 의해 세워졌다는 그리스 신화를 믿었다. 그래서 그들은 초승달을 도시의 상징으로 삼아왔다. 이제 도시 이름이 콘스탄틴 황제의 이름을 따서 콘스탄티노플로 바뀌었고 그때부터 초승달은 기독교 국가인 로마제국과 기독교의 상징이 되어 수세기동안 내려왔다.

그러나 1453년 이슬람제국인 오스만-터키에 의해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되고 로마(비잔틴) 제국은 종말을 고한다. 이제 초승달은 오스만-터키제국의 심볼이 되어졌다. 19세기에 이르러 이슬람은 초승달에 별을 합쳐 이슬람교의 공식 상징으로 삼았고, 오늘날도 모든 이슬람 사원의 첨탑에 설치되어 있다.

초승달은 원래 보름달을 향해 커져가는 확장의 힘을 상징한다. 그래서 이슬람교에서는 장차 세계를 이슬람화할 수 있는 자기 종교의 막강한 힘을 초승달이라는 공식 상징 속에 부여하고 있다. 실제로 현재 이슬람교는 무서운 속도로 전 세계로 팽창해 가고 있다.

그런데 온 세계가 심각히 우려하고 있는 문제는 이슬람 테러주의자들에 의한 폭력적 만행이다. 과거 냉전시대에는 공산주의 침략이 문제였다면 지금은 이슬람 테러주의자들의 야만적인 횡포가 세계를 위협하는 빅이슈가 되고 있다. 당장 우리가 일상생활 가운데 겪는 비행기 여행의 어려움을 보라.  9.11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저질러진 뉴욕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 폭파 이후부터, 비행기 탑승 때마다 한층 까다롭게 통과해야 하는 시큐리티 첵업(Security Checkup)은 즐거워야 할 여행객들에게 얼마나 지속적인 불편과 성가심을 주고 있는가?

부활주일이 2주후로 다가오고 있다. 몇년전 부활주일에 파키스탄에서 기독교도들이 공원에서 부활절 예배를 드리고 있었는데 그 현장에 폭탄테러를 감행하여 72명이 숨지고 300 여명이 부상했다. 희생자 대부분은 어린이와 여성이었다. 성스러운 부활주일에 이슬람 테러조직인 탈레반이 끔찍한 살생을 저지른 것이다. 이 참극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자기 종교를 열심히 포교하여 교세를 확대하는 것은 나무랄 수 없다. 그러나 타 종교의 성스러운 예배 참석자들을 폭탄과 총기로 살상하는 행위, 자기들은 타국에 가서 마음대로 포교하면서 자국에 기독교인들이 들어와서 선교하면 무자비하게 참수한다든가, 비행기를 납치하고 건물들을 폭파하여 수많은 생명을 무참히 짓밟는 등의 야수적인 비행은 세계인의 지탄을 받아 마땅할 것이다.

이슬람교가 상징으로 삼은 초승달의 원래 의미는 결코 무자비한 폭력테러에 의한 세계정복과 팽창이 아니었다. 모든 종교는 모름지기 사랑과 자비에 입각한 인류 공동선을 추구하는 것이 그 본질이라고 할때,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작금의 야만적인 테러행위는 반드시 중단되고 근절되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이 당하신 십자가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고난주간을 앞두고 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다시 살아나셔서 인류에게 영원한 소망을 주신 부활주일을 기다리고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상징이다. 그것은 사랑, 희생, 자비, 소망, 평화의 세계적인 상징이다. 그래서 인류의 박애, 봉사 기관인 적십자사의 표상이 되었고 여러 국가들의 국기에도 십자가가 들어있다. 십자가의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롬 1:16),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전 1:18)고 바울 사도는 거듭거듭 선포했다.

여기 “능력”이라는 말은 성경원어 그릭어로 “듀나미스”이고, 영어의 다이나마이트가 이 단어에서 파생됐다. “십자가의 도”의 능력은 테러의 폭탄 다이나마이트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과 사랑의 다이나마이트가 되어 땅끝까지 폭발적으로 번져가는 복음의 능력이다. 고로 십자가는 인류에게 구원의 빛을 비추어 주는 심볼로 사랑받고 있는 것이다. 이슬람교의 초승달 (Crescent)과 기독교의 십자가(Cross)는 지금 이와같이 의미가 사뭇 다른 심각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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