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November 21, 2024

[정준모 박사 칼럼] “하나님이 싫어하는 인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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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준모 박사
  • 하나님이 싫어하는 인생들 –

시편을 묵상 중 자신에게 반면교사가 될 인물들을 만나게 된다. 하나님이 싫어하시고 경계하시는 인간의 속성을 여실히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음을 고백한다.

특히, 가정생활, 사회생활, 교회 생활에서도 아직도 온전히 성화 되지 못한 인간의 죄성, 육신의 연약함 때문에 돌출되는 악한 성품을 인정하게 된다.

시편 5편 4-5절에 ” 4. 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며 5. 오만한 자들이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 6. 거짓말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와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라고 다윗이 고백하고 있다.

첫째로, 죄악을 기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다(4절).

다윗은 죄악을 기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속성을 알고 그들의 특성을 밝히고 하나님께 그들의 행악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달라는 기도를 드린다.

하나님은 4절에 죄악을 좋아하지 않으시고, 5절에 미워하시고, 멸망시키시고, 6절에 싫어하신다.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긍휼을 베푸시는 사랑의 주님이시지만, 죄는 미워하셔도 죄인은 미워하지 않는다는 논리는 맞지 않는다.

성경은 죄와 죄인을 구분하지 않으시고 모두 싫어하시고 미워하신다. 다만, 죄인이 자신이 범한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올 때는 자비와 긍휼을 베푸셔서 용서해 주신다.

하나님께서 죄악을 기뻐하지 않으시는 그 이유는 악이 주와 함께 머물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죄악은 주님과 어울릴 수 없기 때문이다(표준 새번역). 여기서 머물다, 유한다는 뜻은 ‘-의 손님이 된다’는 뜻이다.

고대 근동 아시아에서는 주인이 손님을 극진히 환대하고 대접하는 풍습이 있다(창18:1-8; 19:1-11). 우리나라에도 아직 그런 미풍양속이 남아 있다. 그러나 악한 자는 그런 손님 대접을 받을 수가 없다. 악인이 비록 명예와 부와 권세를 다 누리고 있다고 할지라도 악인은 주님의 손님으로 주님과 함께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없다.

시편 15편에 보면, 여호와의 장막에 유할 자가 누구인가?라고 질문을 하고 있다. 그러나 시편 5장 4절 본문에는 “악인은 주와 함께 유하지, 거하지 못한다” 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면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죄인, 악인은 어떤 자인가? 5-6절에서 사중적으로 밝히고 있다. ‘오만한 자’, ‘행악자’, ‘거짓말하는 자’, ‘살인자(피 흘리기를 좋아하는 자)’, ‘속이는 자’로 언급되고 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레11:44; 19:2; 20:26; 벧전 1:16)으로 조그만 죄악도 용납하지 아니하신다. 그런데 어찌 악이 가득한 죄인과 함께 거하시고 그 죄인들이 하나님 앞에 지체할 수가 있겠는가?

다윗은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자들이 자신에게 악행을 행하고 있기에 그러한 죄악을 범하는 자들을 싫어하시는 하나님께 자신을 구원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다.

둘째로, 오만한 자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이시다(5절).

다윗은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오만한 자, 교만한 자의 공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달하고 기도 드리고 있다.

오만한 자, 거만한 자, 교만한 자들로 번역되어지는 이들은 ‘자기 스스로 자신을 높이는 자들’이다(시75:4; 롬 1:30; 고전 13:3; 고후11:17)이다. 브릭스( Briggs)는 ‘자랑쟁이’라고 번역하였고 크라우스(Kraus)는 자랑하는 자, 어리석은 자, 미친 자(시83:3; 75:4 참조)로 번역하였다.

자신의 자랑거리 자체를 감사 거리로 겸손히 여겨야 한다. 자랑거리가 있으면, 자랑거리를 주신 주님을 자랑하거나 주 안에서 자랑해야 한다. 그러나 스스로 성공과 잘난 것을 자랑하는 것은 오만과 교만의 자태로 죄악의 근본이 된다.

오만한 자는 주님 앞에 서지 못한다. 주님의 거룩한 임재 앞에 머무를 수 없다. 오만한 자도 외형적인 종교적 의식에 동참할 수 있으나 근본 주님 앞에서 설 수 없고 설령 선다고 할지라도 주님이 그와 함께 머무르시지 않고 역겨워하신다.

5절 하반절에 그런 자를 ‘악행자’로 칭하고 있다. 행악자는 ‘허망한 자’(사 58:9; 암5:5) 혹은 ‘궤사한 자’(잠17:4)로 하나님은 이런 모든 악을 행하는 자를 미워하신다.

케일과 델리츠(Kei & Delitzch)는 “오만한 자들에게는 어떤 고상함, 진실함, 순결함을 발견할 수 없다”라고 했다.

셋째로, 거짓과 살인을 싫어하시는 하나님이시다(6절).

다윗은 대적자들의 거짓말과 거짓 행동으로 살인을 서슴치 않고 저지르는 그들에 대하여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몹시 실어하시길 때문이다.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악한 행동을 하는 그들이 다윗을 대적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하나님께 하나님의 속성에 반한 악행을 하는 그들을 막아주시고 그들로부터 보호해 달라고 간구하고 있다.

‘피 흘리기를 즐기는 자’는 ‘피흘리는 죄를 지은 자’, ‘피에 주린 자’, ‘피 흘리는 것을 좋아하는 자’로 번역된다. 곧 ‘살인자’이다(삼하 16:7,8; 시 139:19).

살인은 실제로 사람의 생명을 죽이는 행위와 함께 의로운 자, 무흠자를 모함해서 죽이려는 의도와 행동, 그리고 사람을 마음으로 미워하는 모든 죄악을 일컫는다(요한일서 3:15).

거짓의 근원은 사탄이다(창3:4; 요8:44). 하나님께서 심히 미워하시는 것 중의 하나가 거짓이다(잠16:17,17,19; 11:1, 20:10; 슥 8:17). 거짓말하는 자는 천국에 들어갈 수 없고(계21:8), 영원한 형벌인 유황불에 던지움을 받게 된다(계21:8).

하나님은 누구를 죽이기 위해 거짓과 속임수를 쓰는 행위를 몹시 싫어하신다. 크레이기(Craigie)는 시편의 악인은 “하나님의 임재에서 추방된 사람들의 원형”이라고 했다.

우리의 삶은 두 길이 펼쳐져 있다. 하나님의 임재 속에 거하는 의인의 삶과, 하나님의 임재에서 쫓겨난 악인의 삶이다.

하나님의 성품에 근거하여 기도한 다윗, 하나님의 속성에 거역하는 자들에 대한 판단과 심판은 주님께 있다. 하나님 속성에 따라 기도할 때, 기도 응답의 확실성이 있다. 그러나 기도자 자신도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에 합당한 거룩한 삶,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하겠다(약 2:21-24).

오늘날 정치권이나 교계를 바라보면, 자리싸움, 정권 창출을 위해 인간으로서 도저히 감행할 수 없는 만행을 저지르고 있다. “코람데오”, 하나님 앞에서 감히 행할 수 없는 신앙 양심 마비 현상을 쉽게 보게 된다.

자신의 양심, 가족, 국민. 성도, 고회 앞에서 화인 맞은 양심과 거짓의 탈을 쓰고 행하는 자태를 본다. 나 자신도 그런 류의 전과범 혹은 공범이 아닌가 깊이 자성해 본다.

오 주여, 악을 길을 좇지 않게 하시고, 순간순간 치솟는 악한 생각을 성령께서 다스려 주소서, 정과 욕을 날마다 십자가에 못 받게 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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