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베스의 기도: 고통을 은총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역대상 4장 9-10절에서 인생의 해답을 찾았습니다
나의 삶을 바꾼 성경입니다. 이 성경을 자세히 읽고 읽다 보면 삶의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입니다. 인생 문제의 해답을 찾게 됩니다. 그 해결책을 깨닫고 노래하며 춤추게 될 것입니다.
역대상 4장9-10절 [9] 야베스는 그의 형제보다 귀중한 자라 그의 어머니가 이름하여 이르되 야베스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수고로이 낳았다 함이었더라 [9] Jabez was more honorable than his brothers. His mother had named him Jabez, saying, “I gave birth to him in pain.” [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10] Jabez cried outto the God of Israel, “Oh, that you would bless me and enlarge my territory! Let your hand be with me, and keep me from harm so that I will be free from pain.” And God granted his request.
오늘 말씀의 핵심은 불행한 인생을 살았던 야베스가 하나님께 구할 때, 하나님께서 그의 간구를 들어주셨다는 말씀입니다.
불행한 자신의 상황을 하나님께 구할 때, 하나님께서 그 불행한 상황을 바꾸어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오늘 저의 설교는 “우리의 불행을 행복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혹은 “하나님이 바꾸어주십니다”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려고 합니다.
1. 야베스는 어떤 사람이며, 어떤 상황에 처한 사람입니까?
야베스 이름의 뜻은 고통(pain, trouble), 수고라는 뜻입니다.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어떤 부모가 자식의 이름을 정할 때, 나쁜 뜻을 가진 이름을 정하겠습니까? 정상적인 부모라면 자식의 이름을 지을 때, 1) 축복된 이름 2) 희망찬 이름 3) 듣기 좋은 이름 4) 부르기 좋은 이름 5) 기억나는 이름을 정하지 않겠습니까?
저도 하나님께서 기업으로 그리고 숙제로 맡기신 자녀들의 3명 이름을 지을 때 기도하며 심사숙고해서 지었습니다. 지금 이미 3자녀의 어미가 된 장녀는 “하나님을 찬미하는 사람이 되라”고 “찬미讚美”라고 지었습니다. 또한 두 자녀의 아비가 되고 목사이며 교수인 장남은 “복의 근원이 되라”고 “근원根源”이라고 지었습니다. 또한 신혼살림을 하고 Ph.D 논문 중인 막내아들은 “온 백성들 중에 뿌리 같은 존재가 되어라”고 “근민根民”이라고 지었습니다. 하나님을 찬미하라, 복의 근원이 되라, 백성들 중에 뿌리가 되라 얼마나 축복된 이름, 얼마나 희망찬 이름, 얼마나 부르기 좋은 이름, 얼마나 기억나는 이름입니까?
그런데 왜 야베스의 부모는 그의 이름은 “고통”, “수고”라고 지었을까요? 이름은 그 사람의 인격을 대표합니다. 이름은 그 사람의 미래를 결정합니다. 이름은 수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락내리락합니다. 이름은 역사와 문서에 남습니다. 이름은 그 사람 자체, 그 사람 인간 됨을 말합니다.
그런데 왜 야베스, 즉, 고통이라고 지었을까요? 야베스를 두고, 부모가, 친구가, 동네 어른이, 아는 사람들이 고통, 고통, 고통이라고 불렀을 때, 자신의 이름을 듣는 순간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이름은 듣는 순간 정말 귀를 막고 싶었을 것이고, 도망가고 싶을 것입니다. 대인기피증이 생겼을 것이고, 스스로 자신을 왕따를 시켰을 것입니다.
왜 야베스, 왜 고통이란 나쁜 이름, 부정적 이름을 지었을까? 그 의문에 대한 대답은 성경을 기록할 당시 이스라엘의 시대적 정황이나 문화적 상황을 이해할 때, 해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경 시대에는 사람의 이름을 지을 때,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이름을 짓을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시대가 처한 상황에 때란 이름을 짓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믿음의 조상, 열국의 아비가 되라는 뜻으로 “아브라함”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물에서 건져냈고 장차 애굽으로부터 이스라엘을 건져내라고 “모세”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발꿈치를 잡고 나왔고, 약삭빠르다고 “야곱”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자식을 달라는 자신의 애절한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사무엘”이라고 지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야베스는 고통 속에서 그 아들을 낳았기에 “고통”, “고통”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수고로움 속에서 그 이들을 낳았다고 “수고”, “수고”라고 지었습니다.
그러면, 왜 야베스는 고통, 수고라고 이름이 불리게 되었을까요? 여기에는 몇 가지 추론들이 있습니다. 해석하는 견해들이 다양합니다. 이러한 견해들이 있고 다음과 같이 유추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남편 없이 자식을 낳았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성폭행들 당해 낳았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미혼모로 낳았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원치 않은 임신을 했기 때문입니다. 다섯째로, 출산 때에 산모나 태중의 아기에게 생명의 위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섯째로, 당시 사회나 국가에 큰 위기가 있었기 때문이라는 등등의 추측과 학설이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제가 소개하는 사람 5명의 사람들의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스티브 잡스, 레오나드 다빈치, 빌리 홀리데이, 마릴린 몬로, 오프라 윈플리 등입니다. 잘 모르시나요? 제가 알려드리겠습니다.
이들은 모두 사생아들입니다. 유복 자녀가 아닌, 사생아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역사에 위대한 인물, 놀라운 영향력을 미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사생아라는 불행한 자신의 인생, 고통스런 자신의 삶, 비극의 상황을 극복하고 명성을 남기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따르면, 야베스가 고통의 인생, 수고로운 인생임에도 불구하고 놀랍게도 하나님께서 그를 9절에 “귀중한 자”, “존귀한 자”가 되게 하셨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귀중한 자라”는 영어 성경에 “ more honorable”입니다. 그 뜻은 “영예로운 자”, “무게가 있는 자”, “영향력이 있는 자”, “칭찬을 받는 자”, “남들이 부러워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야베스를 “고통 덩어리”를 “복덩어리”로 바꾸어주셨다 성경을 밝히고 있습니다. “문제 인생”을 “축복 인생”으로 바꾸어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졸장부 인생”에서 “대장부 인생”으로 역전시켜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손가락질받는 인생”에서 “박수받는 인생”으로, “낙제생 인생”에서 “모범생 인생”으로 바꾸어주셨다는 뜻입니다.
놀랍습니다. 할렐루야입니다. “하나님이 바꾸어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을 바꾸어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고통을 바꾸어주십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불행한 상황과 산적한 문제를 바꾸어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 인생을 우리 노력으로, 우리 지혜로, 우리 능력으로, 우리 방법으로 바꿀 수 있다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의 결정적인 문제를 우리는 결코 바꿀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바꾸어주셔야만 합니다. 오직 하나님이 허락하셔야만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결재 테이블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여러분,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아시고, 분명히 깨닫고, 분명히 확신하고, 분명히, 오직, 확실하게 하나님께 우리 인생을 맡겨야 합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 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시 37:5~6).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의인의 요동함을 영원히 허락하지 아니하시리로다”(시편 55:22).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에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시리라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베드로전서 5:6-7).
내 인생의 굽은 길, 하나님만이 곧은 길로 바꾸십니다. 내 인생의 그늘진 길 하나님만이 밝은 길로 바꾸십니다. 내 인생의 폭풍의 바다, 하나님만이 평온의 물결로 바꾸십니다. 내 인생의 고난과 고통, 하나님만이 형통과 평탄으로 바꾸십니다.
하나님이 바꾸십니다. 하나님이 해결하십니다. 하나님이 합력하여 선으로 바꾸십니다. 할렐루야
2. 하나님은 어떤 자에게 고통의 인생을 바꾸어주십니까?
성경 본문의 11절에 답이 있습니다.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뢰다”는 영어 성경에 “울부짖었다”고 되어있습니다. “cried out”라고 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은 고통의 인생, 야베스가 울부짖을 때, 하나님께서 고통의 인생에서 존귀한 인생으로 바꾸어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통 속에 있는 야베스가 어떻게 했다고요? 울부짖었다고 했습니다. 몸부림치고 매달렸다는 의미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몇 가지 “기도의 원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기도의 간절성, 기도의 집중성, 기도의 믿음, 기도의 응답 원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어떤 하나님께서 야베스가 기도했다고 성경을 밝히고 있습니까? 11절에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었다”고 되어있습니다.
이스라엘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 이스라엘 하나님은 무슨 뜻이 있습니까?
약속하시는 하나님,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 신실하신 하나님, 언약의 하나님, 반드시 기도를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다는 뜻입니다.
성경 역사는 줄곧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신실성을 구약의 족장시대, 출애굽 시대, 광야 시대, 분열 왕국 시대, 예언자의 시대를 거쳐 신약 시대의 메시야의 도래와 십자가 구속 사건과 부활 승천, 그리고 다시 오신다는 재림의 종말의 지금까지 보여주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의 여정을 살펴볼 때도 우리가 고백할 수 있는 그 한마디는 바로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도우셨다”라고 할 뿐입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다”(신 7:9). 신실한 하나님은 미쁘신(고후1:18) 진리의 하나님(시 31:5)이시다.
고통의 인생 야베스가 신실하신 이스라엘 하나님께서 어떻게 할 때, 어떻게 귀중한 자, 존귀한 자로 바뀌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울부짖었을 때입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었을 때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생의 고통에서 해결 받는 길, 우리 인생의 문제가 바뀌는 길은 “오직 기도”입니다.
기도가 답입니다. 기도가 힘입니다. 기도가 해결입니다. 기도가 길입니다. 기도가 승리입니다.
기도가 역사입니다.
칼빈은 “기도는 믿음의 표현이다”, 기도는 믿음의 측정기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창고를 여는 열쇠입니다. 기도는 우리의 공급을 채울 수 있는 무한하 신용카드입니다.
토레이는 “하나님께는 우리의 수많은 수요를 채울 수 있는 무한한 공급이 있다.”
패드릭 존스톤 “우리가 일하면 우리가 일해야 되지만,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이 일하신다”
기도 없는 성도는 사탄의 밥입니다. 기도 없으면 하나님은 바꾸어주시지 않습니다. 기도 없으면 영적 파산입니다. 기도 없으면 축복 스톱, 올스톱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비상 시대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하늘만 바라보아야 할 시기입니다. 우리가 지금 살길은 오직 기도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지금 살길은 끊어진 기도 줄을 잇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살길은 막힌 기도를 뚫는 길입니다.”
현대인, 특히, 현대 그리스도인을 조소하고 야유하는 의미 있는 어떤 글을 제가 약간 오늘 말씀에 맞추어 변경하여 소개합니다.
“사는 공간은 넓어졌지만, 마음은 더 좁아졌다.
더 많은 물건을 사지만 기쁨은 더 많이 줄어들었다.
집 평수는 커졌지만 가족은 더 적어졌다.
더 편리해졌지만 시간은 더 없다.
지식은 많아졌지만 판단력은 더 모자란다.
전문가는 많아졌지만 문제는 더 많이 생긴다.
약은 많아졌지만 건강은 더 나빠졌다.
얼굴은 자주 대면하지만 미운 마음은 더 커진다.
수명은 길어지지만 삶의 의미는 줄어진다.
먼 달나라 가는 세상이나 가까운 이웃은 더 멀어진다.
공기 정화기는 있지만 영혼은 더 오염되어진다.
몸은 풍만하지만 인품은 더욱 왜소해진다.
세계평화를 외치지만 테러 전쟁은 더 심해진다.
책보는 시간은 점점 짧아지나 유튜브는 시간은 길어진다.
휴대폰 사용 시간은 늘어나지만 기도 시간을 바닥이 난다.
잡담 시간은 아깝지 않지만 성경 보는 시간은 뒷전이다.
먹거리, 볼거리에는 혈안이 되어 있지만 영혼 관리는 소홀히 한다”.
기도 없는 영혼 호흡 질환자가 교회 안에 많이 있습니다. 교회 지도자들 기도 시간은 짧고 회의 시간은 길어집니다. 이것이 병든 우리의 영적 현상과 실상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는 실상들입니다.
남태평양 작은 섬나라 “나우르 공화국 이야기”의 이야기를 우리의 영적 모습에 비추어 볼 수 있습니다.
“보통 국민들이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나가 쇼핑을 하는 나라, 도로 위에 람보르기니와 포르쉐 고급 승용차가 즐비한 나라, 전 국민에게 매년 1억 원의 생활비를 지급하는 나라,
주거, 교육, 의료비가 모두 공짜인 나라, 세금을 내지 않는 나라, 그 나라는 오세아니아 미크로네시아에 위치한 <나우루 공화국>은 인구 1만 명 정도, 땅 크기는 울릉도의 1/3 크기의 작은 이 섬나라입니다. 이 나라가 이렇게 잘 사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인광석>이라는 희귀자원이 풍족한 섬이어서 1980년대 이미 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를 넘어가는 부자나라였습니다.
이렇게 된 계기는 섬에 지천으로 널린 새똥 때문이었습니다.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였던 이 섬에 오랜 세월 쌓인 새들의 똥은 산호층과 배합되어 인광석으로 되었던 것입니다. 나우루 공화국은 인광석으로 벌어들이는 막대한 돈을 국민에게 공평하게 분배하는 파격적인 정책을 시행합니다.
덕분에 나우루 공화국 국민들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소비하는 생활만 할 수 있었습니다. 인광석을 채굴하는 일도 외국인 노동자들을 들여와 일하게 하고 모든 가정에는 가정부와 집사를 고용해 편하게 생활했습니다.
심지어 공무원들까지도 외국인들로 고용했다고 합니다. 국민이나 정부나 남는 게 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상태로 30년이 지나자 나우루 공화국 사람들은 집 안 청소하는 방법도, 요리하는 법도 모두 다 잊어버렸습니다. 섬나라 나우루엔 어선이 사라졌고, 전통문화가 없어졌으며, 일이라는 개념 자체가 실종돼버렸습니다.
그들은 그저 먹고 놀고 여행하는 습관만 남게 되었습니다. 나우루인들의 결국 80%가 비만에 시달렸고, 비만율, 당뇨병 사망률 1위 국가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불행하게도 2003년 인광석의 채굴량이 갈수록 줄어들면서 나우루 공화국의 인광석 또한 결국 고갈되었습니다. 가난해진 나우루 공화국 국민들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청소하는 법, 요리하는 법을 다시 배워야 했고, 고기잡이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오랜 기간 놀고먹던 국민들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일하는 즐거움을 잊어버린 그들에게는 나태함과 무기력만 남았기 때문입니다. 이뿐만이 아니라 나우루 공화국은 존재 자체를 위협받기 시작하는데, 무리하게 땅을 파헤쳐 섬의 고도가 낮아진 것입니다. 그 때문에 만약 수면이 높아질 경우 섬이 통째로 가라앉을 위기를 맞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기도가 소홀해진 우리의 실상들, 하나님 찾기를 게을리하는 우리의 신앙의 모습들, 회개와 눈물, 기도와 간구가 옛 추억거리로 남은 우리의 모습과 한국교회는 영적 나우르 공화국의 실상과 같지 않을까요?
신실하신 하나님께, 울부짖었던 야베스에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새로운 삶의 대역전극이 벌어집니다. 상상할 수 없는 축복의 세계가 열립니다. 우리가 소망하고 앙망하는 문제해결의 응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3. 울부짖는 야베스에게
하나님 그의 인생을 어떻게 바꾸셨습니까?
본문 10절을 살펴보면, 야베스가 받은 놀라운 복들이 상세히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가 받은 복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고통을 복으로 바꾸어주셨습니다(Bless Him).
하나님께서는 기구한 인생, 파산당한 인생, 진흙탕에 곤두박질한 인생을 바꾸어주십니다. 실패의 인생을 성공의 인생으로 고통의 인생을 축복의 인생으로 바꾸어주십니다. 성경에는 제 2, 3, 4의 야베스가 있습니다. 우리들도 “또 다른 아베스”일 수도 있습니다.
그 모든 야베스의 인생들이 주님을 만났을 때, 주님께 부르짖었을 때, 주님께서 바꾸어주셨습니다.
“소경 바디매오는 빛을 보는 인생으로 바뀌었습니다. 죽은 딸 무남독녀 회당장 딸은 달라다굼, 죽음에서 생명으로 바뀌었습니다. 38년 된 앉은뱅이 병자가 걸어나는 인생으로 바뀌었습니다. 열두 해 동안 혈류증 여인이 고침을 받은 인생으로 바뀌었습니다. 간음하다 현장에 잡힌 여인이 용서의 기쁨으로 얻게 되었습니다. 목마른 수가성 여인이 영혼의 생수를 얻게 되었습니다. 귀신 들린 스로보니게 여인의 딸의 귀신병이 떠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무자식 한나가 사무엘을 얻는 기쁨을 얻었습니다. 핍박자 사울이 위대한 사도 바울로 바뀌었습니다”.
2) 넓은 지역으로 바꾸어주셨습니다(enlarge his territory).
“지역을 넓혀주셨다”는 것은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세워주셨다는 뜻입니다. 비록 고통과 고난, 역경과 파산 인생이지만 하나님께 전적 매달려 울부짖고 간구하는 인생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내리십니다. 또한 그의 지경을 넓혀주십니다. 영향력 있는 인물로 세워주시고 높여주십니다.
미국의 토크 쇼의 여왕, 그리고 부의 대명사인 흑인 여성 <오프라 윈플리>는 또 다른 현대판 야베스입니다.
그녀는 1) 가난한 미혼모의 사생아로 태어났습니다. 2) 9살 때, 사촌오빠에게 성폭행당했습니다. 3) 14살에 임신을 하여 2주 만에 죽게 됩니다. 4) 자신의 삶을 비관하여 마약에 손을 댑니다. 그러나 외조모의 복음을 듣고, 신앙생활, 기도 생활, 감사 생활로 인생이 바뀌게 된다. 하나님은 그녀의 인생을 바꾸어 토크 쇼의 여왕이 됩니다. 세계적인 기부금의 여왕이 됩니다.
그 일례로 중앙일보(2007.01.08.)에 나온 그녀의 기부에 관한 기사 한 부분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미국 토크 쇼의 여왕으로 불리는 오프라 윈프리(52)가 4000만 달러(약 380억원)를 들여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세운 여학교 ‘오프라 윈프리 리더십 아카데미’에서 6일 에이즈 검사를 받았다. 학생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테스트에 응한 그는 “위대한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져야 한다”며 솔선수범한 이유를 설명했다. 윈프리는 가난하지만 뛰어난 학생들을 미래의 아프리카 지도자로 길러내기 위해 이 학교를 세웠다.
그는 학생들에게 아프리카의 재앙이 되고 있는 에이즈에 대해 개방적인 자세를 갖기를 바라며 에이즈 검사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검사는 의무사항은 아니며 필요할 경우 에이즈 치료도 해 주겠다고 학생들에게 약속했다. 윈프리 아카데미에 입학한 학생 중에는 에이즈 감염 가정의 아이들도 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윈프리와 학생들이 받은 검사 결과는 당사자에게만 통보된다.
“남아공 의료 연구 회의가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이 나라 인구 4800만 명 가운데 에이즈 바이러스 감염자는 540만 명에 이른다. 지난해에는 매일 950명이 에이즈 관련 질병으로 사망했으며, 한 해 동안 모두 53만 명이 에이즈에 새로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15세의 학생이 60세까지 살 수 있는 확률은 50%도 안 된다. 특히 젊은 여성은 감염 위험이 더 높다.
자신도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윈프리는 교육에 미래가 있다고 보고 이 분야에 큰 관심을 가졌다. 특히 가장 가난한 대륙인 아프리카가 절대빈곤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좋은 교육시설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했다. 남아공 윈프리 아카데미에 입학 신청하려면 월수입 787달러 미만의 가정 출신이면서 지적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라고 보도되었습니다.
3) 하나님의 능하신 손이 함께 하시는 역사가 일어납니다.(hand be with him).
하나님의 손으로 고통의 인생을 복된 인생으로 바꾸어주십니다. 하나님의 손은 어떤 손일까요? 창조의 손, 축복의 손, 기적의 손, 전능의 손, 치료의 손, 심판의 손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떄 하나님의 손이 역사합니다.
우리의 손으로 바닷물을 어찌 옮길 수 있습니까? 옮겨야 얼마나 옮길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손의 역사로 폭퐁, 태풍, 토네이도를 일으키시면 순간에 태산 같은 바닷물을 옮길 수 있습니다.
4) 환란과 근심을 바꾸어주십니다 (keep him from harm).
하나님께 울부짖는 자에게는 아무리 환란의 태풍이 불어와도 하나님의 능하신 손으로 막아주십니다. 아무리 근심의 비바람이 몰아치고, 고난의 쓰나미가 몰려와도 울부짖는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손으로 막아주시고 하나님께서 든든한 방파제가 되어 주십니다.
요셉을 보세요, 여호수아를 보세요, 다윗을 보세요, 다니엘을 보세요 하나님께서 환란과 근심을 형통과 평강으로 바꾸어주십니다. 성경의 위대한 인물은 바로 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을 체험한 자들입니다.
별것이 아닌 인생들이 하나님의 은총으로 새 역사의 주인공으로 쓰임 받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주님께 부르짖을 때, 환란과 근심으로 비바람이 순풍의 바람으로 바뀌게 됩니다. 약한 자가 기도할 때, 강하신 하나님의 전능의 손길이 역사합니다.
5) 귀중한 자, 존귀한 자로 바꾸어주십니다
(more honorable)
한국 사람으로 미국에서 최고의 관직을 오른 사람이 누구인지 아시나요? 강영우 박사입니다. 백악관 정책 차관보를 지냈습니다. 그의 아들은 강진석은 세계 최고의 안과 전문의가 됩니다. 그의 둘째 아들은 아버지처럼 백악관 법률고문이 되었습니다.
그는 시력 장애인이었습니다. 참으로 야베스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께 매달리고 하나님의 능력의 손길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살았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실명은 장애가 아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위한 도구이다. 그는 no where, now here 아무 곳에서 실망할 필요 없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실망의 그 자리에서 곧 지금 여기서 시작하라고 그가 받은 지난날의 은총을 강력히 그리고 살며시 증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고통이 저주가 아닙니다. 새로운 축복의 통로입니다. 여러분의 아픔이 절망이 아닙니다. 기적 체험의 재료입니다. 여러분의 눈물이 좌절이 아닙니다. 새역사의 제물입니다. 나의 고난과 아픔이 약재료가 되어 자신도 살리고 가정도 살리고 교회와 국가를 살립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어떤 악한 것도, 어떤 슬픈 것도, 어떤 절망도, 어떤 위기 상황도 아름답게 바뀌게 하십니다. 부족한 저도 저의 인생 행로에 최악의 절망의 순간. 위기의 폭풍이 몰아닥칠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붙잡은 말씀이 바로 야베스의 기도였습니다. 그리고 작년 가을에 많은 교회를 다니며 눈물로 이 말씀을 전하며 코로나 위기 상황에 있는 성도들과 교회에 큰 위로와 소망을 나누고 치료와 회복의 역사를 체험했습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야베스와 같은 우리의 고통, 우리의 뼈아픈 상황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울부짖을 때, 자신의 죄악을 토설하고, 우리의 교만을 내려놓고, 자신의 우상을 깨드리고, 우리의 메마른 영혼을 위해 탄식할 때, 하나님께서 더욱 존귀한 자로, 더욱 소중한 자로, 더욱 지경을 넓혀주시고, 더욱 영향력 있는 인물로 바꾸어주실 줄 믿습니다.”라고 외쳤습니다.
“사람에게 높임을 받을 때, 하나님은 사람에게 짓밟히게 하십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짓밟힐 때, 울부짖는 성도는 하나님께서 높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 회복하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바꾸어주십니다.
빌립보서 4장 6절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대하 20:12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 오직 주님만 바로 볼 수밖에 없는 인생입니다. 그러나 오직 주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인생이 될 때까지 하나님은 모든 인간의 지혜, 인간의 방법, 인간의 수단을 내려놓게 하십니다. 그때, 우리는 눈물과 웃음이 뒤섞인 상황에서 다윗의 고백처럼 오직 소망이 주께로 나옵니다. 하면서 울부짖고 간구할 때, 하나님이 바꾸어주십니다. 회복게 하십니다. 새역사가 일어납니다.”
“음악의 거성 베토벤을 만든 것은 청각장애와 사랑하는 여인과 시련의 고통 때문이었습니다. 도스토에프시키를 위대한 문학가로 만든 것은 간질병과 사형수 감옥의 시련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이 위대한 사역자가 된 것은 동족의 대적과 몸의 가시의 아픔 때문이었습니다.”
“약할 때 비로소 온전해집니다.
고난 때, 비로소 새역사가 일어납니다.
고통 때, 드디어 옥동자를 낳습니다.”
“인간은 고난 속에서 자신의 허물을 보게 됩니다.
인간은 시련 때의 자신의 연약함을 보게 됩니다.
인간의 가난의 때, 자신의 부족을 보게 됩니다.
인간의 실패의 때, 자신의 교만을 회개하게 됩니다.
인간은 낮아질 때, 하나님의 손길을 앙망하게 됩니다”.
저는 제가 고등학교 사춘기 시절에 몰입해 읽었던 <미우라 아야꼬(삼포능자)>의 인생 스토리로 결론을 맺고자 합니다.
그녀는 <빙점>, <길은 여기에>, <빛이 있는 곳에>, <이 질그릇에도>, <양치는 언덕> 등 놀라운 기독교 문학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분입니다. 그런데 불행스럽게도 평생 질병 공격 속에 살았습니다. 처녀 때부터 결핵성 척추병으로 8년간 요양소에 있었습니다. 퍼킨스 병, 피부병으로 평생 고생했습니다. 말년에는 암으로 고통당했습니다. 그녀는 뼈를 깎는 깊은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바라보았습니다. 눈물 어린 기도로 아픔을 극복했습니다. 그때, 그분이 성령의 감동으로 지은 시가 있습니다.
“아프지 않으면 드리지 못할 기도가 있다,
아프지 않으면 체험하지 못할 기적이 있다.
아프지 않으면 올라가지 못할 성전이 있다.
아프지 않으면 앙모하지 못할 그분이 계신다.
고통과 불행의 조건을 제거해 주심도 하나님의 기적이요 은혜이지만, 이보다 더 크고 이보다 더 값진 은혜는, 고통과 좌절, 절망과 낙담의 상황 속에서 한결같은 말씀을 의지하여 주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가는 것입니다.”라고 역설적 은혜를 노래하였습니다.
결론입니다. 현재 나의 삶이 야베스라고 할지라도, 내가 지금 야베스의 인생이라고 할지라도 주님께 나와 울부짖고 매달릴 때, 하나님께서는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귀중한 자로 바꾸어주십니다. 지경을 넓혀주십니다. 환란과 근심을 사라지게 하십니다. 다시 시작하게 하십니다. 다시 회복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다시 새역사의 빛을 비추게 됩니다. 다시 축복의 만나가 내리게 됩니다. 이 말씀을 읽고 또한 증거하는 분들에게 놀라운 하늘의 체험, 신령한 은총의 생수가 흘러넘치길 오늘 새벽 콜로라도 로키에서 간절히 기도하며 글을 마무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