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December 22, 2024

[역사기획/ 사적지 지정을 앞둔 교회들] (36)칠곡 왜관교회

인기 칼럼

6·25 당시 왜관전투 중 예배당 소실 되는 시련을 미군 도움 받으며 극복

사랑 빚 갚는 마음으로 전 세계에 글로벌왜관교회 세우며 선교열정 쏟아

전쟁악몽 속에서도 은혜의 기억은 생명수처럼

6·25 전쟁기의 시련과 재건의 은혜를 함께 경험하며 굳세게 자라온 칠곡 왜관교회의 예배당 전경.

6월의 왜관교회(정옥현 목사)에는 전쟁의 기억들이 뚜렷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경북 칠곡군 왜관읍 일대는 1950년 8월 미군과 북한군 사이에 치열한 낙동강 전투가 전개된 현장이다.

이 전투에서의 승리로 북한군에 일방적으로 밀리던 아군은 낙동강 전선을 지켜내는 것은 물론, 기세를 올려 반격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전투가 한창인 기간에 왜관교회는 예배당을 잃었다. 다 불타버린 교회당에서 성도들은 한 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 아픈 시간을 함께해준 것이 미군들이었다. 절체절명의 방어선을 지켜주었을 뿐 아니라 무너진 예배당의 복구를 도와주기도 했다. 왜관교회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은인이다.

왜관교회 역사관에서는 당시의 유물들을 적잖이 찾아낼 수 있다. 전쟁 기간 왜관교회 교인들에게 발급한 신분증은 삼엄한 통제 속에서도 자유로운 통행을 미군 측에서 보증하는 문서였고, 모든 물자가 귀했던 그 시절 UN군 명의로 제작해 배포한 영한찬송가는 전쟁이 끝난 후까지도 귀중한 예배용품 역할을 했다.

UN군이 제작해 성도들에게 보급한 한영찬송가.(사진 왼쪽) 전쟁 중 통행증 용도로 왜관교회 성도들에게 지급된 신분증.
전쟁기간에 세워져 지금까지 보존되며 왜관교회의 애환을 함께 한 종탑의 모습.

이 같은 응원을 받으며 왜관교회는 다시 힘을 내어 일어섰다. 아직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에 세운 종탑은 재건의 상징과도 같은 존재로, 지금도 교회 앞마당에서 그 자태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세태가 변하면서 한동안 울리지 못했던 이 종탑은 교회설립 100주년을 기념해 그 웅장한 소리를 널리 퍼뜨렸고, 내년에 다시 20년 만의 타종을 기다리는 중이다.

왜관교회 역사관이 소장한 수많은 문서자료들 속에서 정옥현 목사는 빛바랜 노트 한 권을 집어 든다. 표지에 ‘예배회순서(禮拜會順序)’라는 글씨가 선명하다.

“일종의 예배일지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전쟁 기간의 예배기록이 담긴 이 문서를 살펴보면, 폭격이 계속되고 교회당마저 사라진 그 힘들고 불안했던 시절에도 우리 왜관교회 성도들이 한 번도 예배를 쉰 적 없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뭉클하고 존경스러운 발자취입니다.”

왜관교회 초기 역사가 기록된 당회록 제1권.

왜관교회의 설립일은 1904년 4월 1일이다. 조선예수교장로회 사기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기록에 따른 것이다. 설립자인 미국북장로교 선교사 헨리 브루엔(한국명 부해리)의 지도를 따라 김원영 영수, 손양원 집사, 김영채 조사 등이 섬기며 교회를 반석 위에 세워나갔다. 이듬해에는 성도들이 50명 수준으로 크게 늘었고, 왜관읍 월오동에 정식 예배처소도 마련했다.

부르엔을 이어 월터 어드먼(한국명 어도만) 윌리스 그린필드(한국명 권일두) 허버트 블레어(한국명 방혜법) 등 대구선교부 선교사들이 성도들이 돌보고, 다시 그 뒤를 한국인 목회자들이 이어받으면서 왜관교회는 꾸준히 성장했다.

1921년에는 왜관동에 예배당으로 사용할 아홉 칸짜리 기와집과 전도실로 사용할 세 칸짜리 초가집을 신축했다. 이 때 들어간 비용을 성도들과 이웃교회들의 연보는 물론 교회 밖 불신자들의 기부로까지 충당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이 스토리는 왜관교회가 초창기부터 지역사회에서 신뢰받는 공동체였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많은 사랑을 받은 역사적 배경들이 있기에 왜관교회는 그 빚을 갚는 일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긴다. 지역사회에서는 이웃사랑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국제적으로는 미전도 종족을 향한 선교사역에 열심을 내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예수님의 제자되어 복음으로 사람을 고치고, 키우고, 살리는 교회’라는 사명선언은 ‘예배’ ‘교육’ ‘섬김’ ‘양육’ ‘전도와 선교’ 등 다섯 가지 핵심 가치를 통해 실천한다. 그중에서도 ‘전도와 선교’는 왜관교회가 설립 120주년을 목전에 둔 최근 들어 가장 역점을 두는 부분이다.

이미 루시나왜관장로교회(러시아) 파타이왜관교회(인도) 퉁러이왜관교회(태국) 뱅왜관교회(캄보디아) 오시노니왜관교회(케냐) 등 16개의 글로벌 왜관교회를 설립한 바 있으며, 역사적으로도 추수감사절 헌금을 총회 선교사업에 기부하고 러시아에 박정수 선교사를 파송한 경험을 가졌다. 내년에는 태국에 단독선교사 파송과 또 하나의 글로벌 왜관교회 설립을 계획 중이다.

왜관교회 본당 입구에서 역사관으로 이어지는 통로 벽면에는 그 기나긴 세월 동안의 이야기를 시대별로 일별할 수 있는 각종 사진과 기록들이 전시되어 있다. 역사관은 대대적인 정비를 통해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신할 채비를 하고 있고, 유서 깊은 종탑 주변에도 안내판 설치 등의 작업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아직도 채워나가야 할 빈 벽면들이 있다. 정옥현 목사는 “이 공간들에는 앞으로 왜관교회 가족들이 같은 사랑과 같은 사명으로 채워나갈 더욱 은혜로운 이야기를 담아낼 것”이라고 다짐한다.

[인터뷰] 왜관교회 정옥현 목사

이웃에게 더 좋은 친구 되겠다

정옥현 목사는 이웃과의 끊임없는 소통과 나눔이 왜관교회의 저력이라고 말한다.

“지역사회에서 ‘참 좋은 이웃’으로 인정받는 교회가 되고 싶습니다.”

왜관교회 정옥현 목사의 말에는 과장이나 가식이 없다. 많은 것들이 그 사실을 입증한다. 왜관읍 한 중심에 있는 교회답게, 나눔과 소통으로 묵직한 존재감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교육관 앞 길가에 설치된 냉장고는 이와 관련해 대단히 상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냉장고에는 늘 시원한 생수로 가득 차 있어, 아무라도 이 앞을 지나다 문을 열고 꺼내 마실 수 있다. 한여름 더위를 쫓아주는 ‘냉수 한 그릇’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여름에 펼쳐지는 ‘사랑의 생수 나눔’ 사역이 겨울에는 ‘사랑의 라면 나눔’으로 바뀝니다. 연탄이나 쌀 같은 월동 생필품들을 나누기도 합니다. 이를 통해 외롭게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왜관교회는 여러분과 함께하는 친구’라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입니다.”

이웃을 섬기는 사랑의 생수나누기를 시작하는 왜관교회 성도들.

사실 120년 세월 동안 왜관교회는 일제강점기의 극심한 박해와 6·25전쟁의 격전지로서 감내해야 했던 공포 등 온갖 애환을 지역사회와 함께했다. 그 시간 속에서 싹튼 신뢰는 왜관교회가 예배당을 건축할 때, 불신자인 이웃들도 헌금으로 동참하는 모습까지 이끌어냈다. 그렇기에 각자 지닌 것을 서로에게 나누는 모습이 왜관교회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운 전통인 셈이다.

“우리 교회에는 여러 스포츠클럽들이 활동하고 있는데요. 교인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지만, 교회 바깥의 사람들도 얼마든지 참여할 수 있도록 개방하고 있습니다. 이 또한 소통의 기회이자 전도의 기회가 됩니다.”

정옥현 목사는 이와 같은 문화의 저변에 교우들이 아낌없는 협력과 헌신이 있었다고 말한다. 교회가 어떤 사역에 착수하거나, 극복해야 할 과제가 눈앞에 나타났을 때 방관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나서는 열심들이 교회의 오늘을 있게 했다는 것이다. 자신이 목회자이지만 교인들을 통해 배우는 것도 적지 않다는 것이 정 목사의 솔직한 고백이다.

“왜관교회에 부임하고 지난 3년 동안 제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이 있습니다. 아무리 바쁜 일이 생겨도 새벽제단부터 부지런히 지키며, 공예배를 거르는 법이 없는 중직자들의 모습입니다. 그 힘이 우리 교회의 수많은 고비들을 넘길 수 있게 했다고 믿습니다.”

이제 왜관교회는 해외선교지에 눈을 돌려 더 많은 이웃들을 섬기며 친구가 되어주는 중이다. 특히 태국에 단독선교사를 파송하고 교회와 선교센터를 세우며, 인도에는 학교를 건축하는 일등이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내년에 맞이할 설립 120주년이 왜관교회가 한계를 극복하고, 더 높은 사명을 향해 발돋움하는 동력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품습니다. 저 역시 왜관교회 사역을 마친 후, 남은 삶을 순회선교 사역에 바칠 결심을 하고 있습니다.”

그 열심을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것이며, 따라서 120주년 이후에도 왜관교회 역사책에는 더 놀랍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기록될 것이다.

기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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