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December 22, 2024

[손성호 박사 칼럼] 하나님, 함자(銜字)는 어떻게 되세요? (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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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호 박사

하나님, 함자(銜字)는 어떻게 되세요?  (전편)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당신의 부친의 성함을 아시나요?” 누가 물으면, “그게 무슨 말이예요? 우리가 믿는 아버지의 성함 석 자는 “하-나-님” 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지 모른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면 이 지상의 누구도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없다.   유대인 랍비도, 유명한 구약학자도 모른다. 그러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그분의 이름이 아니라는 말입니까?  “아닙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뭐예요?” 너무 성급해 하지 마시고, 이 문제를 차근히 풀어가 봅시다.         

 ‘하나님’은 한글 사전에 ‘개신교가 신봉하는 유일한 신’이라고 되어 있는데, 하나님은 ‘하나밖에 없으신 분’ 혹은 ‘하늘에 계신 분’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엘로힘( אֱלֹהִים) 이라고 하는데 복수형이다. 우리의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구약성경에서는 엘로힘이 복수형이라, 이것은 ‘신들’이라는 말인데 그렇다면 유대인들은 여러 신을 믿는다는 말이냐고 물으실 줄 모르는데 이것은 ‘authoritative WE’라고 하여 복수의 의미보다, 권위자이신 하나님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이해하거나, 삼위일체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해한다. 

[창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בְּצַלְמֵ֖נוּ)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כִּדְמוּתֵ֑נוּ)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נַֽעֲשֶׂ֥ה אָדָ֛ם)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여기에 3번이나 ‘우리’가 나온다.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우리의 형상, 우리의 모양대로. 여기의 복수형은 권위적 복수 혹은 삼위일체이신 엘로힘으로 해석할 수 있다. 하나님에 대한 호칭은 이외에도 많다. 전능하다, 강하다는 뜻을 가진 엘(אֵל)이 있다. 또한 엘 샤다이 (אֵל שַׁדַּי)가 있다.   샤다이(שַׁדַּי)는 ‘충분하다’는 뜻으로 우리 성경에는 ‘전능한 하나님’으로 번역되고,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으로 사용되는데 하나님과 언약을 맺으실 때 사용되는 명칭이다. 엘 오람 (אֵל עוֹלָם)은 ‘영생하시는 하나님’, ‘영원하신 하나님’을 강조한다. 엘 호라이 (אֵ֣ל רֳאִ֑י)은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나타낸다.  

이제까지 살펴본 대로 하나님에 대한 명칭들은 많으나 이것들은 실제 하나님의 이름은 아니다. 그러면 그분의 이름은 무엇인가? 하나님은 자신의 고유한 이름을 모세에게 가르쳐 주셨다.

[출3:14-15]

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15 하나님이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너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이는 나의 영원한 이름이요 대대로 기억할 나의 칭호니라

출애굽기 3:14 – 15

14. וַיֹּ֤אמֶר אֱלֹהִים֙ אֶל־ מֹשֶׁ֔ה אֶֽהְיֶ֖ה אֲשֶׁ֣ר אֶֽהְיֶ֑ה וַיֹּ֗אמֶר כֹּ֤ה תֹאמַר֙ לִבְנֵ֣י יִשְׂרָאֵ֔ל אֶֽהְיֶ֖ה שְׁלָחַ֥נִי אֲלֵיכֶֽם׃

15. וַיֹּאמֶר֩ ע֨וֹד אֱלֹהִ֜ים אֶל־ מֹשֶׁ֗ה כֹּֽה־ תֹאמַר֮ אֶל־ בְּנֵ֣י יִשְׂרָאֵל֒ יְהוָ֞ה אֱלֹהֵ֣י אֲבֹתֵיכֶ֗ם אֱלֹהֵ֨י אַבְרָהָ֜ם אֱלֹהֵ֥י יִצְחָ֛ק וֵאלֹהֵ֥י יַעֲקֹ֖ב שְׁלָחַ֣נִי אֲלֵיכֶ֑ם זֶה־ שְּׁמִ֣י לְעֹלָ֔ם וְזֶ֥ה זִכְרִ֖י לְדֹ֥ר דֹּֽר׃

[Exodus 3:14-15, KJV]

14 And God said unto Moses, I AM THAT I AM ( אֶֽהְיֶ֖ה אֲשֶׁ֣ר אֶֽהְיֶ֑ה) and he said, Thus shalt thou say unto the children of Israel, I AM (אֶֽהְיֶ֖ה) hath sent me unto you.

15 And God said moreover unto Moses, Thus shalt thou say unto the children of Israel, the LORD (יְהוָ֞ה) God of your fathers, the God of Abraham, the God of Isaac, and the God of Jacob, hath sent me unto you: this is my name for ever, and this is my memorial unto all generations.

하나님의 영원한 이름, 우리가 대대로 부를 그분의 호칭은 무엇일까?  히브리어 원어 성경은 세 가지를 말한다. 이것을 한글 성경보다는 영어 성경이 잘 보여준다. I AM THAT I AM ( אֶֽהְיֶ֖ה אֲשֶׁ֣ר אֶֽהְיֶ֑ה), I AM (אֶֽהְיֶ֖ה), LORD  (יְהוָ֞ה) [ 한글 성경은 첫째와 둘째를 똑같이 ‘스스로 있는 자’로 번역했다 ].  여기에 세 가지는 히브리어 be 동사인 ‘이다’ 혹은 ‘있다’는 חַיָּה [하야]에서 왔다. 세 가지 중에 마지막 야웨(여호와)가 하나님 이름이고, 다른 두 가지는 여호와를 설명하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면 앞의 두 가지는 여호와를 어떻게 묘사하고 있나? 먼저 스스로 있는 자라고 설명한다.   여기에 대한 영어 번역은 다양하다.  ‘I AM WHO I AM’. 혹은 I AM THAT I AM[ 나는 나다, 나는 과거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었던 것처럼 현재도 동일한 하나님이다는 어감을 전달 ]. ‘ I WILL BE WHO I WILL BE’ [ 앞으로도 현재처럼 동일한 나일 것이라는 어감].  ‘I WILL BE WHO I AM’, [현재처럼 미래에도 동일한 나다는 어감], 등등.

히브리서 기자도 이렇게 말하고 있다.

[히13:8]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스스로 있는 자’는 여호와의 속성을 잘 나타내 준다. 여호와는 스스로 계시는 분이다. 자존(自存)하시는 분이다. 하나님만이 스스로 계시는 분이시다. 그리하여 여호와는 유일하신 분이다는 것을 보여준다. 어떤 학자는 사역형 히필 동사로 생각하여 ‘존재하게 하시는 자’ 즉 여호와는 창조주이심을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리고 처음에 언급한대로 ‘스스로 있는 자’는 아브라함, 이삭, 야곱 뿐 아니라 400년 후에 학대 당하는 애굽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여전히 동일하신 분이시고, 모세 이후 우리에게 조차 동일한 분이시다. 여호와는 아브라함에게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나 오늘 우리와 후대 사람들에게  동일한 분으로 자신의 언약을 지키시는 분이다. 이런 여호와께 우리는 전폭적인 신뢰를 드릴 수 있다. 세월을 막아 설 자가 없다. 세월 앞에 모든 것이 변한다. 산천도 변하고, 인심도 변하고, 사랑이나 약속도 변한다. 그러나 여호와는 변화하지 않으시는 분이다. 아멘!!! [이 정도에서는 할렐루야가 나와야지요]. 

여호와를 묘사하는 두 번째 명칭은 I AM (אֶֽהְיֶ֖ה)이다.  ‘스스로 있는 자’와는 어떻게 다를까?  ‘I WILL BE AS I Will BE’로 항상 함께 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대인들이 쓰는 영어 성경에는 ‘I SHALL BE’ [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겠다]는 학대 당하는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하시겠다는 것을 보여준다. 

위에서 언급한데로 세 가지 명칭은 히브리어 be 동사에서 왔다고 했다. be 동사는 ‘이다’ [영어로 말하자면 I am a boy]와 ‘있다’ [I am at home]가 있다. ‘스스로 있는 자’는 ‘이다’로 존재의 본질을 표현하고 있다면 I AM (אֶֽהְיֶ֖ה)은 ‘있다’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함께 하겠다는 동(動)적인 표현이다. 아무리 여호와가 ‘스스로 있는 자’로 자존자요, 창조자요, 언약의 하나님이라고 한들 나의 고통 가운데 함께 하시는 행동하시는 여호와가 아니시라면 우리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나?  아쉽게도 개정 번역은 두 번째 명칭도 ‘스스로 있는 자’라고 번역하여 동적인 여호와의 동행을 보여 주지 못하고 있다.  

아직 언급해야 할 것이 남아 있다. 하나님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없다고 했는데 필자는 여호와(야웨)라고 말하고 있질 않나? 이 문제는 다음 편에서 알아보자. 

/ 필자 손성호 박사는 총신대학 종교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총신신학대학원(M. Div), 리폼드신학대학원(MRE), 사우스웨스턴침례신학대학원에서 기독교교육학석사(MRE)및 철학박사(기독교 교육 전공)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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