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향한 ‘빛과 소금’
연말연초 미 전역은 이상 기후로 몸살을 앓았다. 지난해 말 동부에 몰아닥친 겨울 폭풍은 기록적인 폭설과 한파로 많은 재산 피해는 물론 큰 인명피해를 남겼다. 그 당시 관계 당국은 미 전역에서 수십 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뉴욕주 버펄로는 폭설 피해가 가장 심각했다.
동부를 꽁꽁 얼어붙게 했던 겨울 한파는 그 여세를 몰아 새해 벽두부터 미 서부 지역에 물 폭탄 세례를 퍼부었다. 올 초 캘리포니아주를 덮친 폭우는 가히 살인적이었다.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캘리포니아주 비상대책본부 낸시 워드 국장에 따르면 이번 폭풍은 최근 5년간 캘리포니아주에 상륙한 폭풍 중 가장 영향력이 큰 것 중 하나라고 한다.
이처럼 미 전역이 이상 기후로 인한 혼란으로 뒤숭숭했다. 긴 시간 코로나 팬데믹에 지친 마음을 달래줄 희망찬 새해맞이의 설렘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노아방주 사건 아비규환의 현재진행형처럼 느껴진다(지금부터 칠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나의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 버리리라(창 7:4)).
이런 폭우가 오락가락하는 날씨 속에서 지난 16일(월) 미 전역 곳곳에서는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데이 퍼레이드가 진행됐다. 코로나 팬데믹 여파로 온라인으로 대체한 곳이 다수인 가운데 이곳 LA 지역에서는 3년 만에 처음으로 오프라인 퍼레이드가 진행됐다. 이날은 흑인들의 거리 축제의 날과도 같은 날이다.
매년 1월 셋째 주 월요일은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데이로 연방 공휴일이다. 1986년 레이건 대통령에 의해서 연방공휴일로 지정됐다. 흑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인종차별에 비폭력으로 대항한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의 정신을 계승하고 기리는 날이다.
지금으로부터 60여 년 전, 흑백 인종차별이 조금도 개선될 것 같지 않던 암흑기에 그래도 그는 ‘나에겐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고 외치며 후세를 위해 목숨마저 바쳤다.
지근에서 그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던 지인의 전언에 의하면 그의 소박한 꿈 중 하나는 다름아닌 흑인과 백인의 후손들이 차별없이 서로 한 테이블에서 다정하게 식사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그 당시 킹 목사가 꾼 꿈은 한 개인의 단순한 꿈이 아닌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이며 소명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꿈은 오늘날 현실이 됐다. 한 사람의 의인의 꿈은 세상을 향한 ‘빛과 소금'(너는 땅의 소금이로되…너희는 세상의 빛이니(마 5:13-14)이 돼 하나님 때에 세상을 변화시킨 밀알이 된 것이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도 하루 전인 15일, 아틀란타에 위치한 에벤에셀침례교회에서 열린 제54주기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목사 추모예배에 참석해 ‘그는 성경 속 모세와 요셉의 길’을 따른 신앙적 선배였음을 강조한 연설을 했다. 이 교회는 킹 목사가 1968년 암살되기 전까지 목회해온 역사적인 장소다.
앞서 13일은 한인들이 하와이에 처음 도착한 날로 미주한인이민 12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하와이를 비롯해 미 전역에서 한인들이 뜻깊은 행사 개최로 그 뜻을 기렸다.
전환의 시대에, 피부색이 아닌 인격에 따라 평가받는 자유와 평등이 보장받는 하나님의 땅, 미국에 대한 소망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꿈꾸며 끝내는 이뤄낸 킹 목사처럼, 우리 한인 이민자들도 그 소망과 꿈과 헌신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수평이동 받아 끝내는 이뤄내야 한다.
그것은 단순히 다민족 속 한 민족의 안위와 존립의 문제가 아닌 이방인에게 맡겨진 하나님께서 주신 소명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비전의 속내가 무엇인지, 그 역할에 한인 디아스포라의 선택된 민족의 깊은 뜻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깨달음이 나의 것, 우리 교회의 것, 우리 민족의 것이 될 때, 세상을 향한 ‘빛과 소금’의 역할이 제대로 힘을 받게 될 것이다. 다음세대를 향한 비전도 바로 이 깨달음이 선행될 때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