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왜 심령이 가난할까? 예수님의 최애 수석 제자요 예수 부활의 산 증인이요 또 예루살렘 교회의 대표인 베드로에게 면전에서 면박을 줄 정도로 대단했던 ¿거룩한? 바울마저도 이렇게 고백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누가 나를 이 사망의 몸에서 건져낼까?” (로마서7:24). 왜? 자신의 속에서 일어나는 다툼 때문에 매우 괴로웠다. 하나님을 따르려는 선과, 자신의 죄와 탐욕을 따르려는 악의 다툼이 항상 바울을 괴롭혔다. 바울은 자기처럼 율법을 열심히 지키면 영생과 평안을 얻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이 영혼의 곤고함이 심령의 가난함이다.
돈으로도 명예와 부로도, 술과 마약과 쾌락으로도 채울 수 없는 그곳이 우리 속에 있다.
원래 하나님이 계시던 자리. 왜냐하면 우리는 피조물 중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서 지음 받았기 때문에. 또 유일하게 하나님의 호흡을 받았기 때문에. 지금 비어있는 그 하나님의 방. 이 때문에 우리는 항상 곤고하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자로다. 나의 곤고한 심령을 어찌할꼬. 자신의 너덜너덜하고 심히 냄새나는 비참한 실상을 본 아브라함. 그도 심령이 가난한 자였다.
그래서 영광의 하나님 거룩한 하나님 홀로 진리이신 하나님을 따라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서, 오직 그것, 예수 그리스도를 얻기 위하여 비어있는 하나님의 방을 채우기 위하여 언제 끝날지, 어떻게 될지, 어디로 갈지 모른채 갔다.
그만한 가치가 있었으니까. 그 모든 것을 포기할 만큼 소중했으니까.
그 영광의 하나님이 지금 제자들 앞에서 말씀하신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베드로야 요한아 눈을 떠 나를 보라 내가 너희를 지은 하나님이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내게로 오면 영생과 평안을 얻을 것이라
너의 심령이 영원한 것을 사모하느냐? 잠시 있다가 없어질 땅의 것을 사모하느냐?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 눈이 열려 나를 볼 것이라.”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