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라는 축복
사람들은 의외로 자신의 생존에 대하여 너무 감사할 줄을 모릅니다.
요한복음 6장에 이와 같은 현실이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메마른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으므로 사람들은 방황하고 있었습니다.
해는 지고 사람은 자그마치 1만 오천여 명 이상이 모여 굶주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을 걱정하는 제자들과 예수님의 생각은 전혀 달랐습니다.
제자들은 당장 먹을 것이 없는 것에 대한 불만과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항상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도와주심을 먼저 감사하셨습니다.
영국의 종교가 윌리엄(1686-1761)은 기도의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항상 감사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행복을 찾는 비결을 묻는 사람들에게 그는
말했습니다. “만족과 행복을 가장 빠르게 찾는 비결은 범사에 감사하는 데 있다.”라고
말입니다. 감사야말로 인간을 가장 쉽게 부자로 만드는 지름길입니다.
빵 한 조각을 받아들고 감사를 하는 이디오피아의 노인을 그린 그림을 보고 눈시울이
뜨거워진 일이 있습니다. 감사하는 마음이 곧 복을 받을 수 있는 마음입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오병이어. 즉 한 소년이 가진 작은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감사기도를 드렸더니 1만 오천여 명이 배불리 먹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은 기적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마음에 큰 것을 바라면 큰 것을 얻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독배를
마시러 떠나면서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는 이제 떠나야 할 때가 왔다. 나는
죽으러 가고 여러분은 살러 간다. 누가 더 행복한 것인가? 그것은 오직 신만이
안다.”라고 말입니다. 이는 그의 제자 플라톤이 쓴 “소크라테스의 변명”이라는 책의
마지막에 기록되어 있는 말입니다.
진정 행복하기를 원하십니까?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감사를 드리십시오.
행복은 인간 스스로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특별한 선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감사드리는 자들에게만 이와 같은 행복을 선물하시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감사와 하나님의 축복에 관한 소중한 진리를 기록으로 남겨 놓았는데
참으로 오늘 우리들에게 큰 감동과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시50:23)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고 말입니다.
여기에서 시인은 감사가 왜 축복인지, 그리고 그와 같은 감사가 만들어 내는 축복은
과연 무엇인지를 명확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감사가 축복인 것은 오직 감사로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그 인간들로 하여금 영광을 받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타락하여 버렸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인간이 하나님인 양 영광을 받으려고 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와 같은 인간들을 노아의 홍수와 소돔과 고모라의 무서운 심판으로 다 쓸어버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다시 조건 없는 사랑으로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섬기도록 구별하셨던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이 바로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감사를 드리는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친히 구원을 베풀어 주심으로 짧은 생애가 복되고 아름다울 수 있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구원이 필요한 존재들입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연약하고 세상은 너무나도 악하기 때문입니다. 눈에도 보이지 않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우리는 지금 3년째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 바이러스로 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만도 6,135,806명이 넘고 미국에서만도 1,002,259명이 사망하였습니다(2022년 3월 25일 현재).
인류 역사상 가장 사람들이 한꺼번에 많이 죽은 사건이 1차, 2차 세계대전이었는데
그때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눈에도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로 단시간에 이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죽어
나갔으니 세계대전보다 더 무서운 결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구원하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축복이 오직 감사로 제사를 드릴 때만 얻어지는 특별한 은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