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명으로 재무장, 개혁신학 보수에 앞장서다
김주한 교수(총신대학교 신학과)
1. 들어가며
총신대학교(이재서 총장)는 1901년 본교의 전신(前身)인 평양 조선예수교장로회 신학교(초대교장 마포삼열 박사)가 ‘개혁신학, 개혁신앙, 개혁실천’이라는 건학이념을 토대로 설립된 이후, 이를 다섯 교훈, 즉 ‘신자가 되라’ ‘학자가 되라’ ‘성자가 되라’ ‘전도자가 되라’ ‘목자가 되라’로 구체화하여 목회자 및 기독교 지도자 양성에 주력해 오고 있다. 본 글은 제1회 졸업생으로 서경조 방기창 한석진 양전백 송인서 길선주 이기풍 등을 배출한 이래로 현재까지 그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총신대학교의 성장 연혁과 동문들에 대해 간단히 소개한다.
2. 학문의 요람
조선예수교장로회 신학교는 1901년 설립된 이후 1938~1948년까지 폐교를 경험했으나, 1948년 5월 서울 남산에서 재개교했다. 이후 1951년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는 제36회 총회결의로 총회신학교를 직영으로 지정(교장:감부열 목사)하고 학제를 예과 2년, 본과 3년, 별과 3년으로 조정했다.
1955년에는 대한예수교장로회 신학교 재단법인 인가를 받았고, 1961년에서는 새로운 교육환경에 맞춰 학제를 대학부 4년, 별예과 2년, 본별과 3년, 종교교육과 4년으로 개편했다. 1967년이 되어 예과 2년을 대학부 4년으로 개편하고, 같은 해 5월 문교부로부터 학교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신학원 설립인가를 받아 6월에 대학령에 준한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신학교 설립인가를 받았다.
그리고 제7대 교장으로 박형룡 박사가 취임한 1969년 12월에는 문교부로부터 4년제 정규 대학인 총회신학대학 설립인가를 받음으로 현재의 총신대학교의 모습을 갖췄다. 이후 1973년 종교교육과(이후 기독교교육과) 및 종교음악과(이후 교회음악과)가 신설되었고, 1975년에는 학교명을 현재의 대학 명칭에 준하는 약칭 교명 총신대학으로 변경했다. 1976년에는 정원이 120여 명에 이르게 되었고, 1978년에 대학원 설치인가를 받기도 했다. 1980년에는 역사교육과 영어교육과 및 보육과(이후 유아교육과)를 신설했고, 같은 해에 신학대학원은 100명의 정원을 인가받았다. 한편 1981년에는 신학과 정원이 100명으로 증원되고, 신학대학원에서는 신학석사과정(M.Div) 80명 및 대학원석사(M.A.) 10명이 증원되었다. 1983년 종교음악과대학원이 신설되었고, 신학대학원에는 선교학과가 증설되었다. 1987년에 신학과는 110명, 종교음악과는 50명으로 정원이 증원되고, 대학원에는 신학박사과정(Th.D)이 설치되었다.
1995년 대학 명칭이 총신대학교로 변경되고, 고(故) 김의환 박사가 제1대 총장(역대 15대)으로 취임했다. 이후로도 새로운 학과와 과정의 개설 및 폐지 그리고 정원 조정이 이루어져 2021년 현재에는 대학부 1610명, 대학원 2071명, 총 3681명이 재학 중이다.
3. 인재 양성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지난 120년간의 역사 가운데 총신대학교는 한결같이 목회자와 기독교 지도자 양성을 위한 사명을 충실히 감내해왔다. 특별히 총신대학교 대학부는 1969년 문교부로부터 4년제 정규 대학인 총회신학대학 설립인가를 받은 이래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측의 인준신학교(1951년 제36회 총회 결의)요, 기독교 대학으로서 중추적인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그 과정 중에 전체 약 1만여 명이 넘는 졸업생을 배출하기도 했다.
총신대학교 대학부 동문회 자료에 따르면(2016년까지의 자료) 신학과의 경우 1965년 입학생 고(故) 서병엽 문형철 박과옥 이제문 박원서 진운섭을 포함하여 약 3454명의 동문을, 기독교 교육과(구 종교교육과)의 경우 박병창 이영욱 오정호 이상원을 포함하여 약 964명의 동문을 배출했다.
또한 영어교육과의 경우 이조영 이진규 이충기 이태수를 포함하여 약 834명의 동문을, 역사교육과의 경우 강현주 권순미 권태경 김상희를 포함하여 약 787명의 동문을, 유아교육과(구 보육과)는 하영진 강영남 고은영, 고혜명을 포함하여 약 1500명의 동문을, 교회음악과(구 종교음학과)의 경우 은진기 이기선 이수웅 정길봉을 포함하여 약 2000명의 동문을, 아동학과의 경우 김가영 김경란 김길라 김성희를 포함하여 약 186명의 동문을, 사회복지학과의 경우 김성욱 김도원을 포함하여 약 267명의 동문을 배출했다.
이 숫자는 2020년 졸업생까지 반영할 경우 더 늘어날 것이다. 또한 (신학)대학원 등에서 공부한 동문까지 고려하면 총신대학교를 통해 수많은 목회자와 기독교 지도자들이 배출되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4. 후진 양성
총신대학교 동문들은 목회자, 선교사, 교수, 기관장, 교사 등의 여러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필자는 이 중 모교로 돌아와 후학양성에 수고했거나 하고 있는 동문 교수들을 언급하고자 한다. 총신대학교 대학부 출신 동문 교수는 다음과 같다.
유재원(신67), 최명근(신67), 고(故) 김인환 전 총장(신67), 정일웅 전 총장(신70), 고(故) 정훈택 전 총장대행(신70), 문석호(신71), 박희석(신72), 김성태(신72), 신국원(신74), 이상원(신75), 서요한(신75) 채이석(신76), 김광열 전 총장대행(신77), 이재서 현 총장(신77), 주성준(신77), 김봉수(신77), 임창일(신77), 김지찬(신78), 김성욱(신78), 한천설(신79), 유상섭(신80), 양현표(신81), 정창욱(신82), 박희석(신84), 손병덕(신85), 이종민(신88), 윤영민(신89), 정원래(신91), 주종훈(신91), 함영주(신92), 김주한(신93), 조호형(신97), 박재은(신98), 오경환(신05), 정희영 전 총장 대행(기75), 한상진(기76), 유은희(기94), 권태경(역81), 윤종훈(역83), 허은철(역02), 강은주(유84), 신현정(유87), 허계형(유88), 조혜정(유89), 김정희(유89), 김성원(유89), 정희정(유92), 이기선(교74), 유상훈(교78), 하재송(교90) 등.
한편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출신의 동문 교수들도 역시 동일한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현직에 계신 동문 교수님을 전공별로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중복제외). 구약신학의 김희석 박철현 김대웅 김영욱, 신약학의 김상훈 박형대 이상일 이풍인, 조직신학의 문병호 강웅산 정승원 이상웅, 교회사의 박영실 김요섭 서창원, 실천신학의 김창훈 오태균 김준 박현신 김대혁 안은찬, 선교신학의 배춘섭. 또한 대학 신학부 소속의 장성민 안인섭 황선우 신현우 이희성 라영환 윤형철 류길선 및 대학원의 하광민 김규보 교수 등이 있다.
사실 신학대학원 및 대학 신학과 교수진의 경우 거의 모든 교수가 총신대 신학대학원 출신으로 이뤄져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120년 전 학교가 설립될 당시 외부의 손길을 빌어 신학교육을 진행해야 했던 시간이 지나고, 이제 개혁신학의 토대 위에서 연구한 동문 교수들이 후진을 양성하여 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세워나가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sola gratia)로 인한 것임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5. 나가며
총신 120년의 유구한 역사 가운데 기억하고 기념할만한 인재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각자의 소명대로 총신대학교에 나아와 주의 일을 감당한 모든 동문 각각이 기억되고 기념되어야 마땅한 사람들이다. 따라서 필자는 어떤 특정 인물을 부각하지 않고 총신대학교의 성장과정(연혁)과 더불어 교육받은 각 학과의 초창기 입학생 일부 및 현재 총신대학교에서 후진 양성을 위해 수고하는 교수들의 이름만 간단히 언급했다.
총신대학교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그 누구의 것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 사명 받은 모든 동문이 함께 세우고, 지키고, 나누는 개혁신학의 요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기독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