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이 뭐냐고 물으신다면 눈물이 씨앗이라고 말하겠어요.” 가수 나훈아의 ‘사랑은 눈물의 씨앗’이라는 트로트 가사 한 줄입니다. 제가 고등학생이던 시절에 유행했던 노래이지요. 철없던 그 시절에, 뭔지도 모르고 따라 부르곤 했습니다. 감성에 젖어 사랑과 이별의 아픔을 상상하며 불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유치한 것 같기도 한 가사 속에 새삼 발견되는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눈물이 없는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눈물로 시작되고, 눈물로 깊어집니다. 진심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면, 그 사람의 고통이 내 아픔이 되고, 그 사람의 슬픔 앞에 나도 울게 됩니다. 꼭 헤어져서 흘리는 눈물이 아니라, 안타까워서 잘 되기를 바라면서 우는 것입니다. 즐거워하는 자와 함께 기뻐하고, 우는 자와 함께 울 수 있는 자가 진정 사랑하는 자입니다.
자식을 사랑하는 어머니가 어찌 눈물 없이 자식을 키울 수가 있겠습니까? 불가능합니다. 어거스틴의 어머니 모니카(Monica)의 눈물은 방탕아를 성자로 만들었습니다. 어거스틴이 밀라노에 있을 때, 모니카는 암브로시우스 주교를 만나 아들을 위한 기도를 부탁드렸습니다. 이때 주교가 “눈물로 기도하는 어머니의 아들은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The child of so many tears shall never perish.)라고 위로 했습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위한 눈물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결코 사라지지 않습니다. 결국은 기쁨으로 열매를 거두게 됩니다.
조국을 사랑했던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였습니다. 눈물을 시내처럼 흘렸습니다. 하나님의 슬픔을 안고, 창자가 끊어지듯 아파하며 울었습니다. 눈물의 사도였던 바울은 에베소를 목회할 때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훈계했다고 했습니다. 로마감옥에서는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사람들 때문에 눈물을 흘렸습니다. 고린도후서는 눈물로 쓴 사랑의 편지였습니다.
예수님의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을 바라보며 우셨습니다. 육체로 계실 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셨습니다. 독자를 잃은 나인 성의 과부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며 ’울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사랑은 눈물의 씨앗입니다. 그러나, 그 눈물은 기쁨의 열매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십자가 사랑이 더욱 그렇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편 12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