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볼선수 박조은
“하나님께 가장 이쁨받는 딸, 박조은입니다.”
얼마 전 마친 핸드볼코리아리그 여자부 방어율 1위(41.5%), 세이브 2위(288개)로 맹활약하며 팀을 정규리그 2위로 이끈 광주도시공사의 주전 골키퍼 박조은 선수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본인을 이렇게 소개했다. 5월 3일 재개되는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잠시 휴가를 얻은 박 선수와 그의 아버지 박승남 목사가 담임하는 후암교회에서 만났다.
실패와 방황, 그 속에서 깨달은 하나님의 계획
16세의 나이로 20세 이하 청소년대표팀에 발탁되는 등 연령별 대표를 역임한 박조은 선수는 201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2순위로 현 소속팀에 입단했다. 화려한 경력을 이어오던 그에게 성인 국가대표는 따 놓은 당상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그냥 당연하게 대표팀에 들어가다 보니 소중함을 몰랐죠. 20살이 되자마자 세계선수권대회 대표팀에 선발이 됐는데, 훈련 중 부상을 당해 나오게 됐어요. 그 이후로는 한 번도 대표팀에 못 들어갔어요. 남들보다 늦게 첫 실패를 맛보게 된 거죠.”
어려서부터 운동이라면 뭐든지 좋아하고 잘했던 박 선수에게 초등학교 6학년 때 시작한 핸드볼은 즐거워서 하는 일이었다. 그런데 이때부터는 스스로를 채찍질하며 압박을 줬다. 365일 단 하루도 운동을 쉰 적이 없었다. 오전 오후 팀 훈련을 마치면 야간에 혼자 남아 보충 훈련을 자처했고, 휴가 때도 어김없이 체육관을 찾았다.
“잘못된 생각을 가졌던 게 ‘운동을 많이 하면 이제 더 잘할 수 있다’ 싶어서 힘든데도 마치 운동에 중독된 사람처럼 하다 보니까 언제부턴가 더 이상 핸드볼이 즐겁지 않은 거예요. 번아웃이 와버린 거죠. 그래서 매일 하나님께 ‘저 진짜 핸드볼 하기 싫어요. 제발 그만두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던 것 같아요.”
부모님을 조르고 졸라 시작한 핸드볼이었던 만큼, 선뜻 그만둔다는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다. ‘운동하기 싫어요’라고 말하는 것이 어리광으로밖에 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미리 대체할 만한 일을 찾았다. 모델이었다. 그렇게 운동선수를 그만뒀지만 새로운 목표를 이루기 위해 또다시 혹독한 훈련이 시작됐다. 밥을 굶는 등 극단적인 다이어트로 단기간에 26kg을 빼 국내 최고의 모델 에이전시에 들어갔고, 화보와 광고 촬영 등 모델 활동을 했다. 그 사이 그와 함께했던 동료들은 도쿄올림픽을 뛰고 있었다.
“계속 핸드볼을 하고 있었으면 저도 올림픽에 갔을 거예요. 선배 언니들도 ‘왜 조은이가 없느냐’며 많이 아쉬워했었죠. 그사이 번아웃도 끝났고, 다시 코트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커졌습니다. 소속팀 감독님께 그만둔다고 말씀드렸을 때 ‘너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돌아오면 받아줄게’라고 하셨거든요. 찾아가 염치 불고하고 ‘선생님, 저 이제는 다 한 것 같습니다’라고 했더니 감사하게도 바로 ‘나는 오케이다’ 하셨죠.”
9개월간의 방황을 마치고 돌아온 팀에는 그의 빈자리를 대체하기 위해 영입한 베테랑 선수가 자리를 잡고 있었다. 과거 올림픽 대표팀에도 선발됐던 이 선수는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마무리하기 위해 입단했는데, 박 선수는 오히려 그것이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이었다고 믿는다.
“핸드볼이 아직 프로리그가 아니고, 비인기 종목이다 보니 현장이 열악해요. 10년 넘게 핸드볼을 했어도 골키퍼 기술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어요. 그냥 한두 살 차이 언니들이 하는 걸 보고 배운 게 전부이다 보니 기본기가 정말 없었는데, 그때부터 선배를 통해 하나하나 배우기 시작했어요. 지나고 보니 하나님께서 저를 그렇게 사용하시기 위해서 모델 하면서 조금만 있어 보라고 하신 게 아닌가 싶었어요. 하하.”
그렇게 한층 성장한 실력으로 리그 방어율 2위를 기록한 그는 오랜만에 대표팀 명단에 이름을 올렸으나 챔프전 마지막 날 부상을 입어 또다시 낙마하는 아픔을 겪었다. 눈앞에서 두 번이나 대표팀 입성을 놓친 데 대해 하나님을 원망도 했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하나님의 계획을 발견하는 계기가 됐다.
“작년 시즌은 모델 생활 후 복귀한 터라 시즌 전에 많은 훈련을 못 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부상 덕분에 시즌을 준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생겼고, 골키퍼 선배가 저만을 위한 특별훈련을 시켜줬어요. 대표팀에 갔으면 못 하는 거였죠.”
그 결과는 상술했듯 이번 시즌 방어율왕이라는 타이틀로 나타났다.
시합 전 찬양 루틴, 말씀으로 채워진 알고리즘
박조은 선수에게 올 시즌은 실력뿐만 아니라 신앙적으로도 성장한 한 해였다. 과거 어느 때보다 하나님을 많이 찾고, 고난이 와도 그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뜻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이 생겼다.
“스스로도 놀라워요. 이렇게 하나님과 가까이 지낼 수 있다는 게. 늘 하나님을 생각하다 보니 SNS 알고리즘도 전부 말씀으로 채워질 정도예요. 이제는 넘겨도 넘겨도 말씀만 나온답니다.”
시즌 중에는 주말에 대부분 경기가 진행되다 보니 교회에 가기가 어렵다. 때문에 경기가 있는 날 아침은 숙소 방에서 영상으로 예배하며 시합을 준비한다. 다행히 같은 방을 쓰는 후배 선수가 팀 내 유이한 크리스천이다 보니 두 사람은 자유롭게 마음껏 소리쳐 찬양하고 있다.
“시즌 중에는 비시즌보다 더 말씀을 의지하게 돼요. 이제는 경기 전 말씀 듣고 찬양 부르는 것이 저희 루틴이 됐죠. 그래야 제대로 준비하는 느낌이 들어요.”
이번 연도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한 그로서는 이제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때도 ‘하나님을 믿어서 잘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게끔 경기를 통해 증명하고 싶다는 새로운 소망이 생겼다.
“어릴 적 가장 듣기 싫은 말이 ‘너는 목사님 딸이니까’였어요. 삐뚠 마음으로 ‘목사님 딸이어도 절대 바르지 않다는 걸 보여주겠어’라는 악동 같은 생각을 하기도 했죠. 학교에서는 아빠를 회사원이라고 속이기도 했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핸드볼계에서 저희 아빠가 목사님인 걸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자랑하고 다녀요.”
남은 시즌 부상 없이 잘 마무리하기를 바란 그는 올여름 올림픽 아시아 예선과 가을 항저우 아시안게임을 위한 대표팀 선발도 기대하고 있다. 해외에 진출하는 것 역시 선수로서 목표 중 하나다. 그러나 무엇보다 모든 과정 가운데 지금처럼 말씀을 붙들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이 가장 큰 기도 제목이다. 팬들에게 ‘파이팅 좋은 선수’라는 평가를 듣는 박 선수는 앞으로도 ‘한국 핸드볼계에서 제일 파이팅이 좋은 선수’로 남고 싶다고 말한다.
“파이팅을 통해 같이 뛰는 선수들한테 힘을 불어넣는 거잖아요. 어떻게 보면 그것이 팀 전체에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러려면 지금의 신앙심을 계속 지켜나갈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야 할 텐데 꼭 지금의 신앙이 다시 무너지지 않게, 혹 무너지더라도 하나님 앞에 무너질 수 있도록 기도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행복을 전하는 선수가 되겠습니다.”
기독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