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November 21, 2024

[황현조 박사 칼럼] “기독교적 구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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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조 목사(IRUS 교수, 커네티컷비전교회 담임)

“기독교적 구원론”

기독교 문명비평가인 드레허(Dreher)는 뉴욕타임즈 베스트셀러 리스트에 오른 그의 저서 “The Benedict Option”에서 지금 미국은 5세기 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가장 심각한 영적 혼돈에 처해 있다고 진단했다. 당시 초강대국이자 기독교 제국이었던 로마가 왜 멸망했는가? 그것은 무엇보다 영적, 정신적, 도덕적 타락에 기인하였다. 마찬가지로 20세기 초강대국이요 기독교 국가인 미국은 지금 세속주의(Secularism)와 자유주의(Liberalism)의 두개의 거센 바람 앞에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 건국 초기부터 미국사회를 지켜왔던 청교도적 정통 기독교 신앙의 근본이 퇴색되고 있는 지가 이미 오래다.

오늘날 미국 기독교 신자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의 본질에 대해 무지한채 자기중심적 신관을 소유하고 있다. 그들의 예배 대상은 하나님 아닌 자기행복과 물질적 만족이다. 드레허는 이러한 신앙을 “유사 기독교”(Pseudo-Christianity) 신앙이라고 부른다. 참 기독교적 “구원받는 신앙”(Saving Faith)과는 거리가 멀다. 구원받는 신앙은 구주 예수님에 대한 신앙과 회개, 진리를 위한 십자가의 고통 감수, 사랑, 희생, 겸손이 수반된다. 하지만 미국 신자 60퍼센트가 그런 신앙보다는 물질을 통한 행복을 최고의 가치로 숭상하고 있음이 최근 그의 조사 리서치 결과에서 드러났다. 과연 무엇이 참 기독교 신앙인가에 대한 심각한 질문이 요청되는 시대라고 그는 역설하고 있다.

2천년 전에 “구원받는 신앙”의 문제로 고민하던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왔다. 그는 바리새인으로 고위 관료였고 지성인이자 영적 구도자였다.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줄 아나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지 아니하면 당신의 행하시는 표적을 아무도 할 수 없나이다.” 니고데모의 중심을 통찰하신 예수님은 그에게 천국시민이 되는 구원론을 직접 가르치셨다(요 3:3-8).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니고데모는 “거듭남”이란 말의 영적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사람이 다시 모태에 들어갔다가 나와야 된다는 뜻입니까?”  “아니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로 들어 갈 수 없느니라.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

거듭남을 신학적 용어로 중생(Regeneration)이라고 한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후 모든 인류는 영적으로 죽었음을 신.구약 성경은 일관성있게 밝히고 있다(창 2:17, 시 14:3, 롬 3:23, 엡 2:1).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소요리문답 제17항은 이러한 인간의 상태를 “죄와 비참”(Sin and Misery)의 상태라는 두 단어로 정의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의 상태에 대해서 무지할 뿐만아니라, 구원의 필요성과 방법에 대해서도 무관심하다.

기독교적 인간론에 의하면, 인간은 원래 하나님과 “언약관계”(Covenant Relationship)에 있다. 인간은 하나님과의 언약적 교제를 위해 피조된 “종교적 존재”(Homo Religious)이다. 이것은 희랍적 이교사상에서 인간을 “이성적 존재”(Homo Sapiens)로 보는 것과 판이하다. 하나님을 떠나서 전적 타락(Total Depravity)한 인간은 결코 온전한 “호모 사피엔스”가 될 수 없다. 타락으로 말미암아 인간은 “죄 짓지 않을 수 있는 존재”(Pose Non Pecarre: Possible Not to Sin)로부터 “죄 지을 수 밖에 없는 존재”(Non Posse Non Peccare: Not Possible Not to Sin)로 전락됐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이성적으로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에 입각한 구원만이 가능하다. 그것은 곧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이다.

왜 교회에 나와 신자가 되는 것을 싫어하느냐고 물으면 보통 불신자들은 기독교에서 자기를 죄인이라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물론 자기를 죄인이라 하면 기분 좋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전혀 허물없고 깨끗한 사람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있을까? 만약 그렇게 말한다면 자기를 스스로 속이는 사람일 것이다. 설령 자기가 좀 착하게 산다고 해도 역시 별 수 없는 죄인일 뿐이다. 사람은 죄를 조금 덜 짓고, 더 짓는 차이지 모두 죄인인 것이다. 오므렛을 만들기 위해 열개의 달걀을 깨어 넣을때 그 중 한개라도 썩은 달걀이면 오믈렛 전체를 먹지 못하고 버릴 수 밖에 없는 이치와 같다.

니고데모는 결국 예수님의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찌 그러한 일이 있을 수 있나이까?” 이러한 그를 예수님은 안타깝게 질책하셨다.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으로서 이러한 것들을 알지 못하느냐?” 니고데모가 구원받아 천국시민이 될 수 없도록 한 세 가지 결정적 요인이 있었다. 그가 지켜온 오랜 관습, 자기식의 구원관, 예수님의 구원론에 대한 불순종이었다. 부활절을 앞둔 사순절 계절에, 지금 영적 혼돈에 처해있는 많은 사람들이 이 세가지 문제를 해결하여 구원받고 천국시민이 되는 축복을 누렸으면 좋겠다.
“여호와는…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시 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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