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November 7, 2024

[황현조 박사 칼럼] “포스트모던 시대의 개혁주의 교회와 신앙”

인기 칼럼

 

황현조 박사 (IRUS 교수, 세계예수교장로회총회장)

1815년 6월에 워터루(Waterloo) 전쟁이 일어났다. 벨기에 동남부 워터루에서 막강한 프랑스의 나폴레옹 군대에 대항하여 영국, 네델란드, 프로이센 연합군이 싸운 큰 전쟁이었다. 이 전쟁에서 나폴레옹군은 패하고 연합군이 승리했다. 프랑스 제1공화국 황제였던 나폴레옹은 18년동안 유럽 대륙을 휩쓸며 수많은 전쟁에서 이겨왔지만 워터루 전쟁의 패배를 통해 최후의 쓴잔을 마셔야 했다. 전범으로 체포된 그는 수만리 떨어진 남대서양의 고도 세인트 헬레나 섬으로 유배돼 쓸쓸하게 죽었다.

역사 신학자들은 오늘날 보수 개혁주의가 세속 자유주의와 싸우고 있는 싸움을 영적인 워터루 전쟁(Waterloo of religious conservatism) 이라고 부른다. 워터루 전쟁이 당시 유럽의 운명을 좌우하는 전쟁이었듯이, 현재 보수 정통 개혁주의가 세속 자유주의와 싸우고 있는 전쟁은 기독교의 장래를 좌우하는 중대한 영적 전쟁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현대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의 신적 권위와 기독교의 근본 교리들을 부정하며 생겨났다. 자유주의 신학은 그동안 정통적 기독교 신앙과 교회를 전방위적으로 침공해 왔다. 특히 21세기에 들어와서는 마치 태풍이 촛불을 위협하듯 보수 정통 개혁주의 교회와 신앙을 공격하고 있다. 그러기에 역사 신학자들은 이 시대의 기독교가 5세기 로마제국의 멸망 이후 가장 심각한 공격과 도전에 처해 있다고 할 정도이다.

원래 자유주의 신학은 18세기 철학 계몽주의를 신봉한 독일 합리주의 신학자 슐라이마허에 의해 시작되었다. 계몽주의란 기도교 신앙 대신에 이성(Reason)을 신봉하는 철학이었다. 이의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 신학은 여러가지 형태의 유사신학을 파생시켰다. 이신론(Deism), 사신신학, 과정신학, 희망신학, 해방신학, 흑인신학, 민중신학, 페미니즘신학, 신정통주의신학, 포스트모던신학, 종교다원주의신학, 퀴어신학, 젠더신학 등이 그것이다.

계몽주의 이전의 정통 신학자들은 거룩하시고 초월적인 하나님과 유한한 죄인 사이의 근본적인 간격과 분리를 강조했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하나님과 원수되어 분리된 죄인을 하나님과 화목시키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구원사건으로 믿고 받아들였다 . 반대로, 계몽주의 이후 시작된 자유주의 신학은 인간을 이성적인 능력을 가진 존재로 간주하고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근본적인 분리가 아닌, 연속성이 있다는 인본적인 주장을 하였다. 인간은 자기 구원을 위해 하나님과 협력하든지 아니면 독자적으로 성취할 수 있는 능력자라고 보았다. 한마디로  성경에  계시된 “인간의 전적부패”(시 14:1-3; 롬 3:10-11,23; 엡 2:1-2) 교리를 전적으로 배척한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 예수는 구원자로 이 세상에 성육신할 필요가 없는 존재였고, 한갖 모범적 인간일 뿐이었다.

이러한 유럽의 자유주의 신학이 20세기 초 미국 신학교를 침투하자 이에 대항하여 싸운 대표적 선봉자가 그레샴 메이첸(Gresham Machen) 교수였다. 그는 그의 명저 “기독교와 자유주의”(Christianity and Liberalism)에서 자유주의 신학의 본질을 다음과 같이 지적하였다. “자유주의 신학은 기독교란 이름을 가졌으나 실상은 전혀 다른 뿌리에서 생겨난 별개의 종교(A different religion from Christianity)이며, 정통적 기독교와는 물과 기름처럼 결코 어울릴 수 없는 본질을 갖고 있다.” 한마디로 자유주의 신학은 성경적 기독교 신학이 아니라고 꿰뜷어 본 것이다.

지난 수세기동안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교회를 서서히 세속문화의 탁류에 혼합되도록 기여하였다. 그 결과 하나님 말씀(Word)과 세상(World)의 우선순위를 바꿔 버렸고, 성경 본문(Text)과 세상 정황(Context)의 위치를 주객 전도(Upside Down) 시켜 놓았다. 그리고 오랜동안 부흥해 왔던 유럽의 기독교를 현저히 쇠퇴시켰을 뿐만아니라, 북미주와 호주의 주류 교회들도 복음의 생명력을 잃고 유럽 교회의 전철을 밟아가게 했던 것이다. 사도 바울이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자로 가장하는 자”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고 의의 일군으로 가장 하는 자”(고후 11:13-15)라고 지칭한 자들이 누구이겠는가?

교회가 복음의 생명력을 상실할 때 세상의 세속화 속도는 가중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되면, 교회가 세상을 복음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세속화시키는 현상이 생겨난다. 오늘날 세상에서 동성애가 합법화되자, 교회 내에서 동성애자 성직 임명, 동성애 결혼 허용… 등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교회의 세속화와 함께 미국 교회는 많은 교인수의 감소를 겪고 있다. 특히 밀레니엄 세대(18-29세)는 미국 역사상 최고로 교회를 등지고 있다는 통계가 최근 발표됐다. 그들은 역사적 정통 개혁신앙에 대해 무지하다. 대신 그들은 급진적 개인주의와 세속적 물량주의에 물들어 있다.

이러한 포스트모던 시대에 개혁주의 교회들은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 역사적 개혁주의 교회는 세속 자유주의 신학과 타협없이 교회를 지킬 각오가 돼 있어야 한다. 수많은 도전이 오더라도 이에 대항할 힘을 길러야 한다. 적을 이기기 위해서는 적을 알아야 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철학적, 신학적 뿌리를 조사하고 맞서 나가야 한다.

세속화의 홍수를 막기 위해 조그만 모래 주머니를 쌓아서는 안될 것이다. 홍수를 막는 근본적인 대책은 홍수 자체와 싸우는 것이다. 구원의 방주를 노아처럼 짓는 것이다. 방주를 짓는 것은 교회를 튼튼히 세우는 것을 의미한다. 보수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으로 성도들을 건강하게 양육해야 한다. 명실공히 교회가 이 세상의 구원의 방주가 되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야만 교회와 성도가 살 수 있다.

1세기 초대교회는 로마제국의 서슬퍼른 박해와 파괴공작 가운데서도 살아났다. 그 후 멸망한 것은 교회가 아니라 교회를 위협하던 로마제국 이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 천국에 믿음과 소망의 닻을 내리고 승리했다. 당시 어거스틴은 “신국”(City of God)에서 로마제국의 박해를 하나님의 신비로운 뜻(God’s mysterious will)의 관점으로 설명하면서 성도들의 마음을 오직 멸망치 않는 하나님 나라에 둘 것을 강조했다.

이번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선은 일말의 희망을 갖게 한다. 동성결혼 불법화, 공립학교내 기도 재허용 및 종교활동  활성화, 남성과 여성만을 정부가 인정하는 유일한 성별로 설정, 트랜스젠더 남성의 여성 스포츠 참여 금지, 부모 동의없이 미성년자 성전환 수술시 중범죄로 처벌, 아동 대상 성범죄자 사형 구형, 공립학교내 LGBTQ 교육 프로그램 중단 등 성경적 원리와 가치에 부합한 정책들이 그의 35개 주요 정강 속에 들어있는 것은 상당히 정당하고 고무적인 일이다.

교회가 살 길은 오직 철저한 성경적 신앙과 개혁주의 신학이다. 교회의 창설자이신 주님께서는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 16:18)고 약속하셨다. 아무리 포스트모던 시대의 폭풍우가 밀려 올지라도 주님의 교회는 영원할 것이다. 굳건한 반석되신 주님의 약속이 있기에 우리는 결코 소망을 잃지 않는 것이다 (찬송 488장).

“이 몸의 소망 무엔가 우리 주 예수 뿐일세 우리 주 예수 밖에는 믿을 이 아주 없도다.

무섭게 바람 부는 밤 물결이 놓이 설렐 때 우리 주 크신 은혜에 소망의 닻을 주리라.

굳건한 반석이시니 그 위에 내가 서리라 그 위에 내가 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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