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필수 과제물”
저명한 기독교 사상가인 C.S.루이스 전 케임브리지대학 교수는 그의 저서 “순전한 기독교” (Mere Christianity)에서 “예수는 정신나간 거짓교사이든지 만인의 구주이든지 둘 중의 하나다. 만약 당신이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주로 믿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를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주라고 가르쳤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한 유대인 청년이 예수님을 찾아왔다. 그는 불신자였고 고위 관료로서 상당한 부를 축적한 사람이었다. 그는 예수님 앞에 무릎 꿇고 질문했다.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막 10:17). 누구에게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가 높은 지위와 체면을 내려놓고 예수님께 무릎을 꿇은 것은 겸손하고 좋은 일이었다.
그가 그렇게 한 것은 자신을 평생토록 짓누르고 있는 가장 필수적인 인생의 과제가 부와 권력에 관한 것이 아니라 영원한 삶에 관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예수님이 그 과제에 대한 해답을 갖고 있다고 여겼다. 적어도 그는 영생 진리에 대한 구도자였다는 점에서 훌륭한 청년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제일 중요한 필수 과제에 대해 무관심하며 살아가고 있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그 청년에게 몇가지 부족한 점이 있었다. 첫째, 그는 예수님을 찾아왔으나 단지 선한 선생인 줄로만 알았다. 예수님이 영생을 주실 구주라는 인식을 갖지 못했다. 세상에는 이런 예수관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않다.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는 그저 좋은 교훈을 주는 세계 4대 성인중의 하나일 뿐이다. 이슬람교에서는 예수를 인정하되 여러 선지자들 중의 하나이고 그들이 믿는 최고 선지자 마호멧보다도 예수가 열등한 선지자라고 가르친다. 주후 4세기 이단자 아리우스(Arius)는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첫 피조물이라고 주장하다가 니케아 공의회(Council of Nicaea)에 의해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그러나 아리우스주의(Arianism)는 사라지지 않고 수세기 동안 계속되어 오늘날에도 여호와의 증인이나 몰몬교가 현대판 아리우스파로 잔존하고 있다. 아이러니칼하게도, 몰몬교의 본명인 “말일성도 예수 그리스도교”에 자기들이 신성을 부인하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넣고 기독교로 위장하여 사람들을 미혹하고 있다.
둘째, 이 청년은 자신의 노력으로 영생구원이 가능할 줄로 생각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라고 했다. 소위 자력구원론이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이 자기 노력으로 구원을 얻을 수 없음을 명백히 가르친다. “율법을 다 지키는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고”(롬 3:20),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완전한 표준)에 이르지 못한다”(롬 3:23)고 했다. 기독교는 자력구원이 아니라 은혜구원을 가르친다. 선행을 해야 하되 그 선행이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의 결과이다. 은혜로 구원받은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선행을 하는 결과와 열매가 나타나는 것이다.
생각해 보라. 타락한 죄인이 무슨 힘으로 자신의 구원을 이룰 수 있을까? 깊은 물에 빠진 사람이 자기 머리카락을 아무리 위로 잡아 당긴다고 해서 스스로 물 밖으로 떠 오를 수 없다. 그래서 영어 금언에도 “당신의 구두 끈을 아무리 위로 잡아 당겨도 당신 몸을 위로 떠 오르게 할 수 없다”(You cannot pull yourself up by your own bootstraps)란 말이 있다.
이와같이 인간의 전적부패와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통한 구원만을 가르치는 것이 성경적인 칼빈주의(Calvinism) 신학이요 개혁신앙(Reformed Faith)이다. 칼빈주의와 대조되는 알미니안주의(Arminianism)는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예수께로 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이보다 좀 완화된 감리교의 세마이-알미니안주의(Semi-Arminianism)은 인간은 전적부패한 것이 아니고 그 속에 하나님이 주신 “선재적 은혜”(Prevenient Grace)가 있기 때문에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예수께로 갈 수 있다는 신인합력설을 가르친다. 미국의 초기 기독교 역사를 볼 때도 제1차 대각성운동의 지도자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는 전자를 설교하는 전통적 칼빈주의 신학자였고, 제2차 대각성운동의 지도자 프란시스 에스베리(F. Asbury)나 찰스 피니(Charles Finney)는 후자를 가르치는 알미니안주의 설교가들이었다.
셋째, 이 청년은 인생의 필수과제 질문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에 직면했을 때 외면하고 예수님을 떠났다. 진리의 가르침에 대한 순종보다는 거부의 길을 택했다. 인생의 필수과제인 영생에 관한 진리를 찾아왔던 그였지만 예수님의 교훈을 따르자니 자기의 옛 사람과 세상 욕심을 부인해야 하는데 그 선택이 쉽지 않았다. 결국 그는 고민과 슬픔 속에 세속의 길을 선택하고 예수님을 떠나고 말았다.
뉴욕 맨해튼 5가의 RCA빌딩에 희랍의 신 아틀라스(Atlas)의 동상이 있다. 아틀라스는 자기의 모든 근육과 힘을 다해 어깨 위에 세상을 올려놓고 힘들게 떠 받들고 있다. 그 건너편 성 패트릭 교회에는 8세쯤 되는 예수님이 한 손으로 힘들지 않게 세상을 들고 있는 조각이 있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1:29)이신 예수님을 묘사한 것이다. 구원과 영생은 모든 인생이 해결해야 할 필수과제물이다.
나는 내 인생의 필수과제물을 풀기 위해 어느 길을 갈 것인가? 부자 청년이 갔던 길을 갈 것인가? 아니면 영생의 구주이신 예수님을 따라 갈 것인가? 오직 주님 가신 길을 따라가는 자만이 인생의 필수 과제물을 해결하고 영원한 축복의 삶을 살 수 있는 것이 불변의 진리다.
“주님 가신 길을 따라 좁을 길로 가오리다 가기 좋은 넓은 길로 많은 사람 갈지라도… 주님 가신 영생의 길 좁은 길로 가오리다”(찬송 448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