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October 16, 2024

[황현조 박사 칼럼] “인간화와 복음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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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조 박사 (IRUS 교수, 커네티컷비전교회 담임)

“10/40 창문(Window)”이라는 말이 있다. 이것은 기독교 선교가 가장 안된 지역을 미국의 선교 신학자이며 선교 전략가인 루이스 부시(Luis Bush)가 붙인 말이다. 북위 10도와 40도 사이에 위치한 북 아프리카로부터 중국에 이르는 광대한 지역이다. 아시아 국가들 대부분이 여기에 속해 있다.

필자는 수년 전 동남아 지역 태국 치앙마이에서 있은 세계선교컨퍼런스의 강사로 참석했을때 이곳 선교지역을 직접 둘러 본 적이 있는데, 이 곳의 특징은 국민 년소득 5백불 미만의 세계 최대의 극심한 빈곤 상태이다. 세계 인구의 2/3인 56억이 살고 있는 이 지역은 짧은 평균수명에 유아 사망률과 문맹률이 굉장히 높다. 이곳에 분포된 종교들은 주로 이슬람교, 힌두교, 불교, 자연숭배 토속종교, 무신론 등이다.  28개의 이슬람교 국가들(총 인구 18억), 2개의 힌두교 국가들 (13억), 8개의 불교 국가들 (5.3억)이 집결돼 있다.

가장 기독교 선교가 안된 미전도 종족 65개 국가들중 55개국이10/40 창문 지역에 위치해 있다. 미전도 종족의 95%가 집중돼 있고 복음화율은 5% 미만이다. 루이스 부시가 창문이라고 표현한 것은 이 지역은 선교 기회의 창문이 열려 있다는 희망적 의미였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이 지역 국가들은 기독교에 대해 아주 배타적이고 신앙에 대한 규제가 심하다. 그래서 세계선교 기도정보를 제공하는 책 “Operation World”의 저자인 패트릭 존스톤(Patrick Johnstone)은 이 지역을 “저항지대”(Resistant Belt)라고 불렀다.

선교학에 “두 측면 분석”(Two Dimensions Analysis)이라는 이론이 있다. 이것은 기독교 복음을 받아들인 지역과 배척한 지역을 비교분석 해 본 결과, 기독교를 배척한 지역의 90퍼센트 이상이 빈곤과 재난을 훨씬 더 많이 겪고 있음을 통계학적으로 밝힌 이론이다. 이 이론을 반대하는 일부 자유주의적 선교학자도 있지만 그것은 그냥 흘려버릴 사실이 아니다.

기독교를 공격하는 사람들은 사랑의 하나님이 존재한다면 어떻게 하나님이 이 지역의 비참한 빈곤을 외면하고 방관하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들 주장의 근거로 삼는다. 물론 이것은 하나님의 여러 속성(Attributes)을 잘 모른 채 사랑만을 부각시키는 성경신학적 무지에서 오는 오해이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의 가장 정점에 있는 장엄한 속성은 거룩성(Holiness)이요 그 아래에 사랑(Love)과 공의(Justice)가 두 갈래로 펼쳐 있어서 하나님의 주요 속성의 삼각형을 이룬다. 그러므로 무신론자, 불신자,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기독교의 사랑에 대한 개념들은 성경신학적으로 교정되어져야 한다.

마태복음에 보면 한 바리새인이 “율법 중에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라고 예수님을 시험코자 질문했다. 예수님은 대답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마 22:34-40).

무신론자들은 이러한 예수님 계명의 순서를 자기들 임의대로 바꾼다. 그리고는 첫째 계명인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면서 둘째 계명인 이웃 사랑을 더 내세우며 비참한 이웃을 방관하는 하나님이 잘못되었다고 하나님을 함부로 비판한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사랑의 순서는 먼저 하나님이요 그 다음이 이웃이다.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없는 마음에, 진실한 이웃 사랑이 있을 수 없다.

계명(Commandment)은 명령이라는 뜻이다. 인간 생각이나 취향에 근거하여 하나님 존재를 논하지 말고 예수님의 명령에 근거하여 하나님을 최우선적으로 사랑하라는 것이 주님의 명령이다.

인간 생각이나 자기 논리로 보자면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고 불신할 이유들이 부지기수일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것을 넘어서서 하나님을 먼저 사랑하라고 명령한다. 이같이 기독교 신앙에는 무조건성과 절대성이 전제되어 있다.

인간이 임의로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의 순서를 바꾸면 사랑의 개념에 혼란이 온다. 하나님을 먼저 사랑할 때 진정한 이웃 사랑이 따를 수 있는데, 하나님 사랑을 제쳐놓고 이웃 사랑을 운운하면 소리나는 꽹과리가 될 뿐이다. 사실 세계 여러 종교가운데 가장 인도주의적 구제와 자선활동을 많이 해 온 것이 기독교이다.

인간에게 사랑을 가르치시는 하나님이 빈곤과 재난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왜 사랑하지 않느냐고 비평하기 전에 우리는 먼저 마음, 목숨,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만 한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인간만사를 어떻게 처리하시고 계시는지 그분의 심오한 뜻과 계획을 지켜 보아야 한다. 그리고 불행한 이웃들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실천해 나가야 한다. 이 순서가 바뀌어서는 안되고 언제나 바로 정립돼 있어야만 한다. WCC 계통의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이 순서를 바꾸는 선교적 접근을 한다. 그들은 항상 “인간화” (Humanization)를 앞세우고 “복음화”(Evangelization)를 뒷전에 두고 경시한다. 그것은 주님의 명령을 거슬리는 행위이다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한다는 것은 쉽게 지키기 어려운 계명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계명을 지킬 수 있도록 깊은 신앙을 가져야 한다. 열악한 환경의 이웃에게 영적 복음을 전하며 물질적 도움을 베풀라고 하신 선교명령을 지켜 나가야 한다. 이것은 어려운 계명이기에 인간 의지로는 불가능하다. 오직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고 받아야만 가능하다 (스가랴 4:6). 성령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항상 도와 주시는 보혜사(The Paraclete)이시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 인천 송도 컨벤션 센터에서 제4차 세계 로잔(Lausanne) 국제복음화 대회가 열리고 있다(9월 22-28일). “인간화”를 우선시하는 자유주의 신학에 물든 WCC 운동에 대응하여 시작된 이 로잔 대회가 진정한 성경적 복음화를 보다 명확히 선언하고 천명하는 대회가 되어지길 기대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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