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December 21, 2024

[황현조 박사 칼럼] “은혜 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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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조 목사(커네티컷교협회장, 비전한인교회 담임)

“은혜 체험”

“은혜”라는 말을 기독교에서만큼 많이 사용하는 종교는 없다. 기독교는 은혜의 종교다. 예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그 은혜를 계속 사모하는 사람을 가리켜 기독교 신자라 부른다. 성경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분이 예수님이시고(요 1:14-17), 누구나 그 은혜를 받아들이는 믿음이 있을 때 구원받는다고 가르친다(엡 2:7).

은혜의 본질은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혜택을 베푸는 것이다. 허물과 죄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용서와 사랑을 받는 것이 은혜다. 물론, 은혜 체험을 위해서는 자신의 허물을 인정하는 겸손이 전제돼야 한다. 스스로 잘났다고 하는 교만한 마음에 어찌 은혜가 임하리요?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예수님의 은혜는 낮은 마음에 흐른다.

세상에는 훌륭하고 똑똑한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들도 하나님 앞에서는 다 허물이 있고 불완전하다. 그래서 사람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모두 다 주님의 은혜를 받아야 할 존재들이다. 성경에 나오는 은혜(Grace)라는 단어의 헬라어 어원은 “기쁨”이라는 뜻을 가진 “카리스”(Xaris)이다. 누구든지 주님의 은혜를 체험하면 기쁨이 수반된다는 깊은 뜻이 그 단어 속에 담겨있다. 그러므로 은혜 체험자는 자연적으로 기쁨이 충만하다.

매년 10월 31일은 종교개혁(Reformation) 기념일이다. 1517년 신학교 교수이자 수도사였던 마틴 루터는 “자신의 노력과 다른 성인들의 공로로 죄사함 받고 구원 얻을 수 있다”는 당시 교회의 가르침 때문에 부단히 고민했다. 그러나 그는 로마서를 정독하는 가운데 인간의 노력이나 공로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의 은혜로만 구원받을 수 있는 중요한 진리를 발견하였다. 그가 윗텐버그 성당 대문에다 95개조의 선언문을 붙이고 교회개혁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항거(Protest)한 것이 종교개혁과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개신교의 시작이었다.

종교개혁 95개조 선언문의 5대 핵심강령 중의 하나가 “오직 은혜”(Sola Gratia)였다. 예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믿음이 아니고서는 인간은 결코 죄의 속박과 심판에서 해방될 수 없음을 선언문은 밝혔다. 이 믿음은 이미 구약의 아브라함(창 15:6)으로부터 시작하여 하박국 선지자를 거쳐(합 2:4) 신약의 바울 사도가 로마서에서 밝힌 것이었다(롬 1:17). 이것은 일찍이 어거스틴의 신학에도 선명히 나타났고 칼빈의 개혁주의 신학에 그대로 전수되고 있다.

신약성경 첫 복음서의 저자 마태는 유대인이었으면서도 유대인의 원수였다. 그는 당시 유대나라를 식민지로 지배하고 있던 로마제국의 앞잡이 노릇하는 세무 공무원이었다. 동족들에게 고율의 세금을 부당하게 매겨 로마 정부에 납부하고 일부를 빼돌려 착복하는 나쁜 사람이었다. 세상에 도대체 이런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아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성경 복음서까지 기록할 수 있었다는 말인가? 인간 상식으로는 도저히 실현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가 오직 은혜로 구원받은 사실을 성경은 명백히 증거하고 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다가 세관에 앉은 마태를 긍휼히 보시고 “나를 좇으라” 부르셨다. 예수님께서 그를 긍휼히 보심은 곧 그를 향한 “은혜의 시선”이었다. 그런데 그다음 센텐스가 기가 막힌다.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일어나 좇으니라”(마 9:9).

그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거부하고 세상 물질축적을 향해 계속 좇아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예수님의 은혜의 부르심에 겸손한 순종으로 응답했다. 그리하여 그의 인생 판도가 영원히 바뀌어졌다. 동족을 저버린 악덕 세리로서 거저 세상의 돈을 좀 만지다가 역사에 흔적 없이 사라져 버렸을 오명(汚名)의 이름 ‘마태(Matthew)’가 세상 사람들이 모두 좋아하는 불후의 이름으로 바뀌어졌다. 그것은 정말 예수님의 ‘놀라운 은혜’(Amazing Grace)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주님은 지금도 긍휼과 은혜의 시선으로 우리를 보시며 초청하고 계신다. 우리는 그 부르심에 응답하며 은혜 체험의 자리를 향하여 항상 가고 있는가? 아니면, 그 부르심을 거부하고 ‘마이 웨이’로 가고 있는가? 주님의 은혜를 체험한 사람은 율법주의적, 비판적, 부정적 생각에 적은 시간과 에너지를 사용한다. 대신에 언제나 감사와 기쁨의 행복한 인생을 살아간다. 이 말씀을 늘 기억하자.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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