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December 23, 2024

[황현조 박사 칼럼] “예수님의 유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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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조 목사(IRUS 교수, 커네티컷비전교회 담임)

“예수님의 유모어”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우셨다는 구절은 세번 나온다.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요 11:35), 멸망이 임박한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눅 19:24), 그리고 십자가 죽음 직전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심한 통곡과 눈물의 기도를 하셨다(히 5:7). 그러나 웃으셨다는 구절은 한번도 없다.

사실 인류의 죄를 짊어지신예수님의 십자가 고통의 이미지를 연상하면 예수님이 웃으시거나 유모어를 하시는 모습은 우리에게 익숙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예수님은 언제나 근엄하시고 진지하시며 유모어가 전혀 없는 분으로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쉬운 일이다. 사실 인류의 비참한 죄의 문제를 다루시는 예수님에게 무슨 웃으실 일이 있었겠는가?

그러나 진정한 유모어는 고통과 슬픔을 통과하면서 생성되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피상적이고 경박한 개그와는 구별된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 역설적인 유모어와 윗트가 넘쳐나고 있다. 예수님은 많은 경우에 비유와 역설법(Paradox)을 통해 진리를 가르치셨다. 제자들이 서로 누가 더 잘나고 위대한가를 놓고 다툴 때 예수님은 ‘너희 중에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고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종이 되어야 하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나, 또 스승으로서 제자들의 발을 손수 씻기신 행동은 참 우스광스러운 유모어였다.

그러나 그 속에는 역설적인 진리와 철학이 담겨있었다. 예수님을 비방하고 거부한 교만한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필요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고 하신 것은 위트와 아이러니가 가득한 교훈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유모어 감각이 뛰어난 민족으로 보통 유대인을 꼽는다. 그것은 그들이 안락하고 편안한 역사를 살아왔기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수천년동안 유대민족은 세계에서 가장 질시와 박해를 많이 받은 고통의 민족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혹독한 시련속에서도 하나님을 믿으며 고통을 극복해 왔다. 그들은 처참한 게토(Ghetto) 생활에서도 결코 유모어를 잃지 않았다. 그러므로 온갖 고통을 통과한 유대인의 유모어에는 깊은 인생의 진리와 철학이 담겨있다.

신앙의 세계에서 눈물과 유모어는 상호모순되는 개념이 아니라 양립되는 개념이다. 그래서 레슬리 웨더헤드는 “기쁨의 반대는 슬픔이 아니라 불신(Unbelief)”이라고 했다. 하나님을 불신하는 데서 인류의 슬픔이 생겨나고, 슬픔이 있어도 하나님을 신앙하는데서 기쁨과 유모어의 삶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죄로 인해 눈물과 고통의 짐을 지셨던 예수님이셨지만 이 세상에 계실 때 그저 기쁨없이 사셨던 것이 아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하시면서 인류에게 평화와 기쁨의 소식(복음)을 주시려 오셨던 ‘평강의 왕’ 예수님께서 슬픔과 낙망가운데 사셨을리가 만무하다. 예수님은 천국 기쁨과 즐거움의 소유자이셨고, 인류가 누릴 수 있는 기쁨의 원천이셨다.

그래서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고백했던 초대교회 성도들은 환난과 핍박이 많았지만 기쁨속에 살았다. 선교하다가 옥중에 갇힌 사도 바울도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빌 4:4)고 역설하였다. 기독교는 근본적으로 ‘기쁨의 종교’이다. 기독교가 기쁨의 종교인 것은 세상의 불의와 불공평을 몰라서가 아니라 최후의 재판장이시고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기 때문이다.

우리 한국속담에도 “웃으면 복이와요” “웃는 문으로 만복이 들어온다”(소문만복래 笑門萬福來), “한번 웃으면 한번 젊어지고 한번 노하면 한번 늙어진다”(일소일소 일노일노 一笑一少 一怒一老)라는 말이 있지 않는가?  유모어는 닫힌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다. “유모어가 없는 세상은 스프링없는 마차와 같다”는 서양속담도 있다. 유모어가 없으면 길에 움푹파인 여러 굴곡과 돌들때문에 인생이 삐꺽거릴 것이다.

성경은 말한다. “선함과 치료를 가져오는 혀는 생명나무이고 나쁜 혀는 마음을 상하게 하느니라”(잠 15:4). 각박한 이민생활 가운데서 삶을 윤택하게 하고 기쁘게 하는 것은 선한 마음에서 우러나는 유모어이다. 그것은 상대방을 깍아내리는 냉소적인 언어보다 훨씬 상대방과 이웃을 따뜻하게 해주는 윤활유가 될 것이다.

이 세상에 비록 고통과 슬픔이 많지만 유모어를 잃지않고 사는 비결은, 고난가운데서도 해학과 유모어로 교훈하시며 우리에게 진정한 기쁨을 주신 예수님을 따라 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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