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 교정”
세계지도를 보라. 서양사람들의 것과 동양사람들의 것이 서로 다르다. 서양사람들의 것은 대서양이 지도의 중앙에 있다. 왼쪽에 아메리카, 중앙에 대서양, 그 오른쪽에 유럽, 맨 오른쪽에 아시아가 있다. 그래서 서양 사람들은 한국이 위치한 동북아를 극동(Far East)이라고 불렀다. 반면에 동양 사람들의 세계지도는 태평양이 한 가운데 있다. 왼쪽에 유럽, 중심에 아시아, 그리고 태평양 건너 오른쪽에 아메리카가 있다.
그러나 오스트레일리아 사람들이 사용하는 세계지도는 전혀 다르다. 그 지도는 아주 특이하여 세계지도를 거꾸로 걸어 놓은 것과 같다. 그들은 자기 나라가 세계지도의 맨 밑바닥에 내려가 있으니 별로 기분이 안 좋다. 그래서 세계지도를 거꾸로 놓고 보았더니 오스트레일리아가 제일 위로 올라간다. 그리고 러시아, 북유럽, 캐나다가 맨 아래로 내려간다. 그들이 이런 지도를 선호하는 이유는“우리는 더 이상 밑바닥에 있지 않다”(We Are No Longer Down Under)는 그들나름의 자존심 때문이다.
사실 하나님께서 만드신 지구는 어느 나라가 위에 있고 어느 나라가 밑에 있지 않다. 광대한 우주 공간에 떠있는 둥근 지구를 사방에서 보면 나라의 상하개념이 있을 수 없다. 둥근 지구에 사는 사람들이 평면적인 세계지도를 그려놓다 보니 극동이란 말이 나오고 상하 개념이 있게 되는 것이다.
이와같이 서양사람, 동양사람, 오스트랠리아 사람들이 제각기 선호하는 세계지도는 모두 다 자기중심적이다. 인간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꼭 같은 사실도 어떤 시각에서 보느냐에 따라 제각기 생각과 평가가 달라진다. 거기에서 상대방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일어나게 된다.
지구는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아야 바른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우주의 창조자요 절대자이시다. 절대적인 기준이 없는 세상은 혼란과 갈등이 멈추지 않는다. 세상 사람들은 절대자 하나님을 거부하고 상대주의를 한껏 선호하며 내세워 보았지만, 역시 자기들의 “상대주의를 절대적으로 고집하는” 자아모순에 빠지고 말았다. 태양계의 중심은 태양이다. 태양을 중심으로 수많은 행성들이 질서있게 운행하기 때문에 행성간에 충돌이 없다. 인간 세계는 오직 유일하신 절대자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질서와 평화가 있다.
그래서 성경은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권면한다.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시 42:5).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시 121:1-2). “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찌어다 여호와께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구속이 있음이라”(시 130:7).
예수님께서는 삶의 질서와 평화를 주시려고 혼돈된 세상에 오셔서 절대적 선언을 하셨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요 14:6). 죄성을 가진 우리 인생들은 모두 자기중심적 존재가 되기 쉽다. 자기 눈으로 보는 각도에 따라 생각하고 판단한다. 자신의 잘못된 시각때문에 터무니없이 자만심이 높아져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하고, 아니면 자존감을 잃은채 부질없는 열등감 속에 허덕이기도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눈을 들어 절대자 하나님을 바라보며 그 분의 말씀을 통해 각자의 시각교정을 해 나가야 한다. 그럴때 우리는 그분의 말씀속에서 인생과 사물을 올바르게 관찰하고 자신과 이웃을 굴절없이 볼 수 있다.
어떤 부인이 이웃집 빨래줄에 널린 빨래들을 보며 그 빨래들은 늘 깨끗하지 않고 때가 묻어 있다고 비방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그 집 빨래들이 아주 깨끗하게 보였다. 곁에 있는 남편에게 “저 집 아줌마가 이제야 정신차렸나봐. 빨래들이 깨끗해졌어”라고 했다. 그때 남편이 말했다. “오늘 아침 내가 우리 집 유리창문을 깨끗이 닦았지…”
내 눈과 내 유리창문에 때가 묻어있지는 않은가? 우리는 하나님 말씀속에서 자문해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서 절망, 자포자기, 불평에 젖어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시각교정을 하라고 말씀하셨다 “네 눈을 들어 사방을 보라, Lift up your eyes and look around”(사 49:18).
우리의 시각교정은 눈을 들어 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볼 때 가능하다. 그리하면 우리는 사방의 현실을 “감사와 긍정과 희망”의 시각으로 볼 수 있는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