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전 4세기초 고대 희랍에는 에피큐리안 철학(Epicurean Philosophy)이 성행했다. 이 철학의 창시자 에피큐러스는 “쾌락”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며 “Eat, drink, and be merry… for tomorrow we die”를 주창했다. 이것은 옛날 한국에서도 흔히 불려졌던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늙어지면 못 노나니”라는 노래와, 또한 미국의 세속적 Hollywood Philosophy와도 일맥상통한다.
이보다 앞서, 3천년전 구약의 솔로몬 왕도 처음에는 이런 쾌락주의 철학을 추구했다. 그 시대의 생활 슬로건은 “해 아래서 인생을 즐기자!”였다. 솔로몬은 자기 소유를 다 동원하여 쾌락을 추구했다. 솔로몬은 자신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는 내 맘에 이르기를 내가 시험적으로 너를 즐겁게 하리니”(전 2:1). “무엇이든지 내 눈이 원하는 것을 내가 금하지 아니하며 무엇이든지 내 맘이 즐거워하는 것을 내가 막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나의 모든 수고를 내 맘이 기뻐하였음이라”(전 2:10).
그는 쾌락을 위하여 온갖 것들을 시도했다. 웃음, 술, 큰 사업 경영, 큰 저택 건축, 포도원과 과수원 경작, 동산과 연못 건설, 많은 노비들 고용, 소와 양떼 최다 소유, 수많은 금은 보화 축적, 노래하는 남녀 가수들 다수 초청 파티, 처와 첩들을 천명(왕상 11:3)이나 두었다. 그는 소위 세상 사람들이 선망하는 권력, 재물, 명예, 성공, 쾌락의 극치를 이루었다(전 2:2-8).
그러나 얼마 후 그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그 후에 본즉 내 손으로 한 모든 일과 수고한 모든 것이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며 해 아래서 무익한 것이로다”(전 2:11). 솔로몬은 이제 전도자의 입장에 서서 자기의 과거 인생을 뒤돌아 보니 자기가 행했던 모든 것들이 “해 아래서 다 헛되고 무익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의 과거는 오로지 “해 아래의 관점 (Under-the-Sun-Perspective)”에 얽매여 살았음을 후회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그는 첫 번째 가졌던 “해 아래의 관점”을 떠나서 두 번째 관점인 “해 위의 관점(Above-the-Sun-Perspective)”의 인생관으로 전환하게 된다. “해 아래 관점”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인간 중심(Anthropo-centric)의 인생관이라면, “해 위의 관점”은 하나님을 믿는 하나님 중심(Theo-centric)의 인생관을 뜻한다.
인생의 궁극적 기쁨과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권력, 돈, 명예로부터 오지 않는다. 오직 “해 위에” 계신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그러나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제외하고 “해 아래의” 행복과 기쁨을 추구해 왔다. 19세기말 독일의 무신론 철학자 니체는 “하나님이 죽었다”고 선언하며 인간에게 가장 의미있는 것은 “개인의 자유와 행복”이라고 주장했지만, 결국 허무주의에 빠져 정신병으로 죽었다. 18세기 프랑스의 인본적 계몽주의자 볼테르는 하나님을 부정하고 인생의 기쁨과 만족은 “문화 생활” “예술 활동” “화려한 파티”에 있다고 믿고 살았지만, 그가 죽을 때 “I wish I had never been born”(내가 차라리 태어나지 말았으면)이란 말을 남기고 “해 아래서” 허무하게 죽었다.
반면에 19세기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하이든은 “해 위의 관점”을 갖고 그 마음에 하나님을 모시고 살았던 사람이었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물었다. “당신의 음악은 왜 항상 그렇게 경쾌하고 Cheerful하게 기쁩니까?” 하이든은 대답했다. “나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내 맘은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내가 펜을 들고 작곡할 때 하나님이 예수님을 통해 주신 그 기쁨 때문에 나는 일어서 뛰며 춤추는 심정으로 작곡합니다.” 그가 시편 19:1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의 말씀을 읽고 너무 기쁘고 가슴이 벅차서 작곡한 곡이 곧 유명한 “천지 창조”였던 것이다.
성령의 영감을 받아서 솔로몬이 쓴 전도서의 결론적 교훈은 이렇다. “해 아래의 관점”으로 인생을 사는 사람은 허무한 인생으로 끝난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전 1:2-3). 그러나 “해 위의 관점”으로 인생을 사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의미있고 복된 인생이 보장된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전 12:13).
우리는 솔로몬의 두 가지 관점 중에 어느 것을 선택하며 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