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의 백합화를 보라”
긴 겨울이 지나고 드디어 꽃의 계절 봄이 왔다. 꽃 중에 백합화는 기독교에서 순결과 소망을 상징한다. 특히 부활절 교회 강단에 장식되는 부활의 꽃(Easter Lily)이기도 하다. 백합화가 부활절 꽃이 된 것은 그 모양이 나팔(Trumpet) 같아서이기도 하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온 사방에 나팔 불듯이 전파하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고 하신다. 이 말씀은 모든 신자들의 대헌장이라고 일컬어지는 산상보훈(The Sermon on the Mount) 속에 기록되어 있다. 마태복음 5~7장의 산상보훈은 복음서의 요약이요 인류 역사상 최고의 교훈으로서 읽는 이에게 감명을 주고 있다. 복된 삶의 비결이 거기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들의 백합화와 함께 공중의 새를 예로 드시면서 우리에게 하신 교훈의 핵심은 ‘먹고 입는 일에 너무 몰두하여 염려 속에 살지 말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느냐?”(마 6:25).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두 가지 선물을 주셨다. 목숨과 몸이다. 우리가 날마다 숨을 쉬면서 신체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으로부터 이렇게 중요한 두 가지 선물을 받은 우리가, 그것보다 덜 중요한 음식과 의복 때문에 늘 염려하고 사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온당치 못하다. 그렇게 사는 것은 ‘이방인’ 즉 불신자들의 생활 태도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마 6:32).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목숨과 몸을 주셨으면,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숨과 몸에 필요한 것들을 반드시 공급해 주실 것을 믿어야지 않겠는가? 그렇게 믿고 사는 것이 신앙인의 태도이다. 하나님은 공중의 새도 먹고살도록 해 주시고 들의 백합화도 솔로몬 왕의 옷보다 더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도록 해 주신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들을 안 먹이고 안 입히시겠느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지 말라”(마 6:30).
그렇다고 해서 아무 계획 없이 무위도식하며 살라는 뜻으로 예수님의 교훈의 의미를 오해해선 아니 된다. 공중의 새도 그냥 나무에 앉아 하나님이 그 입에 음식을 넣어 주시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들의 백합화도 그냥 땅 속에 씨앗으로 남아있지 않고 열심히 물과 태양 빛을 흡수하여 솟아나서 꽃을 피워 나간다.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다. 즉 천국을 바라보며 의로우신 구원자 예수님을 믿고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렇게 살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마 6:33). 문제는 삶의 우선순위를 잘 세우는 것이다. 신앙의 첫 단추를 잘 끼워야 인생이 바로 서게 된다.
염려는 모든 무신론적 불신앙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무신론이 무엇인가? “나는 하나님이 존재함을 믿지 않고, 나를 돌보고 인도해 준다는 것도 믿지 않는다. 하나님은 내 가정, 사업, 직장, 학교 생활과는 아무 상관없고 도움도 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모든 의식주 문제는 내 머리로 계획해야 하고 내 손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것이 곧 무신론적 생활 태도다. 바로 여기에서 모든 염려와 스트레스는 시작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와 같이 인간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치도 더 할 수 없다. 염려는 사람을 고갈시킬 뿐이다. 불안과 스트레스는 정신적, 육체적 질병을 유발한다. 미국에서 하루 소비되는 진통제(마약, 알코올 제외)가 20톤이라는 사실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경은 우리에게 권면한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6-7).
나는 지금 하나님께서 공중의 새와 들의 백합화를 어떻게 키우시는가를 생각해 보며 살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