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기철 박관준 백남조 믿음의 이름 캠퍼스 곳곳에 새겨…후배들도 선진들이 걸은 그 길 따르길 다짐
120년 유산 간직한 사당 교정서 한국교회 미래 일꾼 자란다
총신 120년의 가장 큰 자산이란 두말할 것 없이 오롯이 바른 신학, 바른 신앙의 길을 따라온 역사와 그 세월 동안 정성 바쳐 길러낸 하나님의 사람들이다. 하지만 사당동과 양지, 두 곳의 캠퍼스에 켜켜이 쌓인 유형의 자산들 또한 소중히 간직해야 할 유산들이다. 이번 호에서는 총신의 두 캠퍼스를 재학생들과 함께 탐방하며 총신의 과거와 현재가 어떻게 이어져 오는지를 살펴본다. <편집자 주>
서울 동작구 사당로 143. 이곳에 한국교회 미래를 짊어질 인재를 키우는 총신대 사당캠퍼스가 우뚝 서 있다.
총회신학원은 1960년 4·19혁명 이후 정부가 남산에 국회의사당을 짓기로 결정하면서 남산 교정을 뒤로하고 떠나야만 했다. 이후 대한신학교와 용산 건물을 전전하던 총회신학원은 1965년 3월 비로소 사당동 부지에 캠퍼스 조성을 위한 첫 삽을 떴다.
이어 1969년 12월 24일 총회신학대학으로 정식 인가를 받은 총신대학교는 지금껏 교단 목회자 양성의 터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아울러 개혁신학의 본산이기도 한 사당캠퍼스에는 믿음의 선진들이 남긴 유·무형의 유산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러한 사당캠퍼스 내 유산을 재학생들의 안내로 탐방했다. 신학과 4학년 김예형 백은빈, 교회음악과 1학년 김영주 최시온 학생과 동행했다.
▲백남조기념홀
학생들이 가장 먼저 안내한 곳은 ‘백남조기념홀’이다. 사당캠퍼스 종합관 1층에 자리한 백남조기념홀은 1150석 규모로 입학식과 졸업식 등 주요 행사가 열리고 전교생이 참여하는 채플이 진행되는 공간이다. 올해 5월 14일 총신대학교 개교 120주년 기념예배 및 기념행사도 여기에서 거행됐다.
백남조기념홀은 1998년 종합관 완공 이후 줄곧 대예배실이라는 명칭을 써왔으나, 총회결의를 거쳐 2019년 9월 3일 현판 제막식과 명명예배를 드리며 지금의 이름으로 제정됐다. 사당캠퍼스 부지 1만 8,000평을 헌납했고 초대부터 6대까지 21년간 재단이사장으로서 총신을 섬긴 고 백남조 장로의 올곧은 신앙과 삶을 기리기 위한 결정이었다.
은빈 씨는 “백남조 장로님의 헌신이 없었다면 저의 대학생활의 배경이 된 사당캠퍼스가 존재할 수 있었을까요? 정작 본인은 판잣집에 살면서 사당캠퍼스 조성과 발전에 기여한 백남조 장로님의 이름을 후대에 알리기 위해 ‘백남조기념홀’로 명명한 것은 탁월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다만 은빈 씨는 “전교생이 백남조기념홀에 모여 채플에 참여하는 것은 총신인들의 기쁨이자, 자랑거리였어요. 코로나19 확산 이후 동영상으로 채플을 하다 보니, 그런 기쁨을 더 이상 누리지 못하고 졸업을 하게 돼 아쉽기도 합니다”라고 덧붙였다.
▲주기철기념홀
이어 종합관 2층으로 이동해 ‘주기철기념홀’을 노크했다. 총신대는 올해 2월부터 5개월간의 설계 및 공사를 거쳐 구 세미나실을 다양한 학술 및 예배 행사를 치를 수 있는 주기철기념홀로 리모델링했다.
주기철기념홀은 국제 콘퍼런스홀 수준의 공간으로 재탄생했으며, 세련되고 감각적인 디자인이 돋보인다. 특히 소양이 순교 직전까지 담임목회를 했던 산정현교회(김관선 목사)의 2억원 기부로 주기철기념홀이 마련돼 그 의미가 더욱 크다.
아울러 주기철기념홀 앞에는 주기철기념로가 조성돼 있다. 손자 주승중 목사(주안장로교회)가 기증한 주기철 목사의 얼굴 동판이 안내하는 기념로를 걷노라면 죽음 앞에서도 굽히지 않은 소양의 일사각오의 신앙을 되새김하게 된다.
예형 씨는 “주기철기념로에 서면 총칼 앞에서도 타협하지 않은 주기철 목사님의 신앙을 본받아 훗날 참된 목회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저 또한 선진들이 걸어온 길을 따라가야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새에덴교회(소강석 목사)의 기부로 리모델링한 학생 및 직원 식당과 주다산교회(권순웅 목사)의 기부로 마련된 북카페 ‘다독임’도 종합관의 자랑거리다. 여기에 종합관 1층 안쪽에는 ‘기도굴방’이 자리하고 있다.
기도굴방을 자주 찾는다는 은빈 씨는 “고민이 있을 때마다 특히 시험 기간에 자주 와 기도합니다. 기도실이 7개 있는데, 코로나19 확산 이전에는 꽉 차 있는 경우가 많고 기도 소리가 끊이지 않았어요”라고 말했다.
▲콘서트홀
종합관을 거쳐 신관으로 이동했다. 1976년 12월 27일 건립된 신관은 50~70대 총신 출신 목회자에게 학창시절의 추억을 소환하는 곳이다. 종합관 완공 전까지 신관 5층 대강당에서 신대원생과 학부생이 함께 모여 채플수업을 들었으며, 학교 주요 행사도 여기서 열렸다.
그런 임무를 백남조기념홀에 넘긴 신관 대강당은 2013년 5월 ‘콘서트홀’로 업그레이드됐다. 총신대는 당시 40년 이상의 긴 역사를 지닌 교회음악과가 있었음에도 전문 연주홀을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이에 따라 교회음악과 교수와 학생, 동문들은 10년 넘게 기도하고 기금을 모금하는 노력을 한 끝에 비로소 콘서트홀을 오픈했다. 453석 규모의 콘서트홀에서 교회음악과 학생들은 정기연주회, 졸업연주회, 교내 콩쿠르 등에 참여하며 실력을 뽐낸다. 교수들 또한 콘서트홀에서 틈틈이 연주회를 개최하곤 한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실기수업 차 학교에 자주 왔다는 영주 씨는 “콘서트홀은 총신 교회음악과의 자랑입니다. 재학생들은 콘서트홀에 자주 올라 연주회를 가져요. 덕분에 무대 경험을 쌓게 돼 다른 연주회에 나설 때도 큰 도움이 됩니다”라고 예찬을 늘어놓았다.
시온 씨도 “열정적으로 가르쳐주시는 우리 교수님들과 콘서트홀이라는 훌륭한 무대가 있어 보다 성장하는 것 같아요. 콘서트홀 건립에 후원을 아끼지 않은 전국 교회에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다.
▲에덴동산
사당캠퍼스 탐방의 마지막 행선지는 ‘에덴동산’이다. 봄이면 벚꽃이 만발하고 가을이면 울긋불긋 단풍이 물드는 에덴동산은 학생들의 야외 쉼터다. 코로나19 확산 이전에는 학생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기타를 치며 찬양 메들리를 울리곤 했다. 에덴동산 한편에는 신사참배 반대운동을 주도하다 옥중에서 순교한 고 박관준 장로 기념비도 세워져 있다.
때마침 에덴동산에 성탄 트리가 점등됐다. 자연스레 성탄트리 앞에 모여든 학생들은 다양한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고 에덴동산에서의 추억담을 나눴다. 특히 졸업을 앞둔 예형 씨와 은빈 씨의 감회는 남달랐다.
은빈 씨는 “학내 사태가 발생했을 때는 학교가 싫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캠퍼스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자녀들과 사당에서 생활할 수 있었던 건 정말 큰 은혜였어요”라고 말했다. 예형 씨는 “사당캠퍼스에는 믿음의 선배들이 걸어온 발자취가 있어요. 저도 선배들이 걸었던 길을 따르며 선배들이 사랑했던 하나님만을 바라보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은빈 예형 씨의 얘기처럼 믿음의 선진들이 세운 선지동산에서 한국교회를 개혁하는 일꾼들이 꾸준히 배출되길 기대한다.
기독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