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December 22, 2024

[정준모 박사 칼럼] 장로교회의 정체성

인기 칼럼

정준모 박사

-장로교회의 정체성-

1. 예배원리

장로교회의 정체성은 교리, 정치, 예배 등의 특성에서 찾을 수 있다. 중세 교회의 타락의 주요인은 교리와 예배의 오염과 탈선이었다. 종교개혁의 두 축은 교리개혁과 예배개혁이다. 종교개혁의 초점은 바로 오염된 비성경적인 교리의 개혁과 탈선된 반성경적인 예배의 개혁이다.

장로교회는 장로교회로서 예배신학, 원리, 의식이 있다. 장로교회에서 인위적 목적 성취를 위하여 장로교 예배모범을 떠난 예배는 장로교의 정체성이 상실되는 큰 오류를 범한다.

본 글을 통하여 장로교회의 예배원리와 예배의식, 장로교회의 예배모범 변천 역사, 한국장로교회의 예배 정착 변천 과정과 예배 모범 채택, 그리고 한국장로교 예배 갱신과 개혁을 위한 제언을 하고자 한다.

장로교회의 예배원리와 예배의식 개혁교회와 장로교회의 예배원리와 예배의식은 신조와 신학에 근거한다. 개혁교회와 장로교회의 예배신학에 따라 예배원리와 예배의식이 결정된다.

장로교 신학의 기반을 세운 칼빈은 예배개혁에 전념한 신학자요 목회자이다. 그는 그의 신학의 정수를 담은 <기독교 강요>초판부터 예배신학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었다. 그는 예배의 기본 요소를 찬양, 설교, 기도, 성찬, 헌금이라고 하였다. 그는 예배와 성찬의 통일성, 설교와 성찬의 유기적 통합을 주창하였다.

칼빈은 목회자의 매주 행할 직무로 설교, 교육, 성찬집례 등을 강조하였다. 칼빈의 예배신학과 의식은 스트라스부르그 시절(1538-1541)에 부서(Bucer)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 칼빈은 1540년 스트라스브르그에서 작성된 예식서와 1542년 제네바에서 작성된 예식서를 만들어 예배의 지침서로 삼았다. 이 두 예식서에서 칼빈은 성경에 근거한 예배, 개혁신학에 맞는 예배, 교육적 목적이 담긴 예배, 삶의 변화를 주는 예배, 과장된 허식을 버린 단순한 예배를 강조하였다.

칼빈의 예배신학은 화란 개혁파 교회의 예배의식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16, 17세기를 거치면서 예배의식에 대하여 어떤 대회 혹은 총회에서도 강요, 결정되지 않았다. 다만 도르트 회의(Synod of Dort, 1574)에서 예배의식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나 어떤 고정된 예배 순서를 강요하지는 않았다.

존 낙스는 영국 국교회 예식서를 거부하고 칼빈의 예식서를 활용하였다. 1562년 에든버러 총회에서 <제네바 예식서>를 채택하였다. 그러나 이때 채택된 예식서는 세 가지 경우 즉 성례, 결혼, 장례를 위해서만 사용하도록 하였다. 또한 총회에서 채택된 예식서를 의무적으로 사용하도록 강요하지는 않았고, 목회자와 당회의 재량에 맡겨 사용토록 하였다.

1643년에 개최된 웨스트민스터 총회에서 영국 교회 개혁이 완성되었다. 이때부터 신앙, 예배, 교회정치 등이 로마 천주교로부터 완전히 개혁되었다.

특히, 1643년에서 1644년간 예배와 교회 정치에 대한 깊은 논의 후, 장로교 신학과 신앙의 전수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채택하게 되었다. 이때, 예배에 대한 지침서로 <공예배 지침서>가 마련되어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 영국 청교도들은 예배개혁이 바로 교회개혁의 지름길이라고 생각하고 <공예배 지침서>를 만들었다. 이것이 오늘의 미국 장로교회와 한국 장로교회의 예배모범의 모체가 되었다.

한국 장로교 예배갱신과 개혁을 위한 제언

칼빈은 예배회복은 곧 하나님 영광의 회복으로 보았다. 하나님 영광의 회복은 바로 예배 회복에서 출발되어야 한다고 인식하였다. 칼빈은 중세 기독교의 타락의 일차 원인을 오염된 예배로 보았다. 그는 종교 개혁의 일차 관심을 예배개혁과 회복에 맞추었다. 오늘의 한국교회 타락과 위기는 비성경적, 반교리적 예배에 있다.

장로교 예배는 장로교 신앙과 분리될 수 없다. 장로교회 목사는 장로교 예배신학과 정체성을 따라야 한다. 장로교 목사가 순복음식, 침례교식, 감리교식 예배를 따르는 일은 결코 용납될 수 없다. 그 이유는 장로교 예배 정체성에 대한 몰이해, 인기 영합, 인위적 목적 달성을 위한 예배로 전락될 뿐만 아니라 장로교의 정체성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장로교는 모든 예배 순서, 형식, 내용에 장로교 신학과 신앙에 내포되고 반영되어야 한다. 바른 장로교 예배 원리와 순서에 따라 바르게 말씀을 증거하고 바르게 신앙교육을 시킨다면 얼마든지 오늘의 위기 한국교회를 바르게 세울 수 있다.

한국 장로교의 예배개혁과 회복을 위한 제언은 다음과 같다.

첫째, 말씀 선포와 성찬예식의 회복이다. 말씀이 간증 혹은 프로그램 등에 우선순위를 빼앗겨서는 안 된다. 은혜 방편인 말씀을 성령의 감동으로 뜨겁게 증거하고 성찬에 대한 복음적 깊은 감동을 받도록 예배의 본질을 회복하여야 한다.

둘째, 예배의 사람 우상화, 기복화 및 세속화를 막아야 한다. 예배의 중심은 설교자 혹은 사람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뿐이시다. 예배시간에 설교자 만능주의의 신격화 현상이나 하나님의 영광을 설교자가 탈취하는 불행스런 일은 절대 개혁되어야 한다. 또한 온갖 예배를 드리면서 사람을 영웅화시키고 사람을 칭송, 칭찬하는 일은 절대 삼가야 한다. 하나님 영광보다 사람 인기 내지 편의를 탈피해야 한다.

셋째, 예배모범 및 예배예식서가 개정 혹은 발간되어 적절하게 사용되어야 한다. 탈예전적, 반예배모범적 예배는 교회사에 나타나는 극단적인 모습으로 재례세파가 범한 오류였다. 예배모범과 예배의식서를 따른 예배가 때론 기계적이며, 성령의 역사를 외면하고, 획일적인 예배가 되는 단점도 있다. 반면, 탈예전적, 반예배모범적 예배가 되면, 오히려 예배가 무질서하고 반성경적, 비교리적, 탈복음적인 예배로 전락할 수 있다.

특히, 오늘날 장로교 교단 내, 낮 예배를 비롯한 모든 예배뿐만 아니라, 청년, 청소년, 어린이 예배 등 각급 예배에 특별한 예배모범 내지 예배지침서가 없어 장로교 예배 신학과 정체성이 없는 예배진행으로 장로교 정체성을 심각하게 손상시키고 있다.

특히, 최근에 복음주의적 예배라는 명분하에 장로교 전통의 예배가 사라지고 있다. 장로교 안에서 빈야드, 직통계시, 관상기도, 열린예배 등 극단적 신비주의, 감정주의, 인본주의 등 비성경적, 반교리적 예배운동 물결로 장로교 예배 전통이 무너지고 있다. 장로교 예배 정체성 포기는 장로교 교단의 포기이다. 다음세대를 위한 장로교 예배 모범과 예식서가 교단 차원에서 속히 마련되어 장로교 예배 정체성을 세워 다음 세대에 성경적, 신학적, 역사적 전통을 전수하여야 한다.

넷째, 장로교회 예배 정체성을 더욱 견고하게 세워야 한다. 장로교 예배신학과 정체성에 따른 예배 회복 운동, 예배 전통 세우기 운동, 예배 문화 유산 물려주기 운동, 예배 문화 개혁 운동을 교단 정책을 세워 지속적으로 이끌어가야 한다. 교단 신학교에서 목회자 후보생들에게 장로교 예배 정체성을 가르쳐 목회현장에 보내야 한다. 또한 교단 산하 모든 목회자들이 장로교 예배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이해와 인식을 가지고 목회에 임해야 한다.

현실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 회중들에게 일시적 감동을 주고, 인위적 목적 성취를 위해 장로교 예배 신학과 정체성을 이탈한 예배는 절대 삼가야 한다. 특히 신학과 역사의식의 분별력이 없는 다음 세대들에게 장로교의 값진 예배 신학, 예배 전통과 문화를 굳건히 세워가야 하겠다.

2. 정치 사상

교단의 정체성은 신조에 의해 결정된다. 교단은 신조가 담긴 헌법에 의해 교단 신학과 정치원리를 결정짓는다. 장로교 신조와 정치는 성경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종교 암흑기 시대에 불행스럽게도 성경 원리를 따르는 교회의 정체성이 사라져버렸다.

종교 개혁 시대에 하나님의 사람인 존 칼빈에 의해 장로교 정체성을 싹틔우기 시작했다. 영연방 청교도에 의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중심으로 확고한 기틀을 마련했다. 미국 장로교에 의해 장로교 정체성과 정치원리를 꽃피우게 됐다.

한국장로교 정치사상 뿌리는 유럽의 개혁교회와 영연방국의 장로교회의 정치원리에 둔다. 이번 글에서는 장로교 역사적, 신학적, 정치적 전통을 살펴본다. 또한 장로교회 정치원리의 특징, 칼빈의 정치 3대 원리을 찾아본다. 더 나아가 한국장로교의 정치사상 정착과 역사적 변천을 정리해 본다.

끝으로 미래 한국 장로교회의 발전을 위한 한국장로교 교회정치의 현실과 개혁 방향을 제언한다. 장로교의 역사적, 신학적, 정치적 전통 장로교는 성경 역사와 교회사를 통하여 신학적 전통과 함께 정치적 전통을 발전, 정착시켜왔다. 수많은 논쟁과 싸움, 위협과 죽음 앞에서 장로교의 거룩하고 빛나는 3가지 전통을 지켜왔고, 보존되었고, 발전시키고 있다.

첫째, 장로교는 역사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

초대교회의 3대 핵심인 신앙고백과 교리 총체인 십계명, 주기도문, 사도신경 등으로 장로교 역사의 깊은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그 후 325년 니케아, 381년 콘스탄티노플, 431년 에베소, 451년 칼케돈 신조 등은 역사적 기독교 신학 형성의 큰 물줄기였다. 1054년 동서방 교회의 분열, 1530년 아우그스부르크 신앙고백서, 1541~1542년 제네바 신앙고백서 등 역사적 발전을 통하여 장로교의 원리를 싹틔우게 되었다. 유럽의 개혁교회와 영연방의 장로교회, 미국의 연합장로교회, 호주 장로교회 및 현재 한국장로교회 등에 이르기까지 장로교의 역사적 전통을 지키고 있다.

둘째, 장로교는 신학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 장로교는 초대교회의 사도적 신학, 즉 성경적 원리, 하나님의 절대주권, 언약 신학 등을 신학적 근저로 삼는다.

이러한 초대교회 신학적 전통이 종교개혁 시대에 이르러 오직 하나님 영광, 오직 그리스도, 오직 성경, 오직 믿음 등 4가지 개혁 명제를 설정하게 된다. 이것이 후대에 장로교 전통과 정체성의 중심이 되고, 이러한 신학적 전통이 모든 신앙고백과 신조에 깊이 담기게 된다.

셋째, 장로교는 정치적 전통을 가지고 있다.장로교회는 교회의 원리와 특징에 따라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교회정치도 함께 전통을 이어 발전시켜 왔다. 장로교의 교회정치 제도는 결코 역사적 전통을 무시하고 한 순간에 급조되어 생기게 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장로교는 역사, 신학, 교회정치에서 역사와 함께 발전, 보존, 전수된 성경적, 역사적, 신학적 바탕을 둔 교회와 교단임이 분명하다. 장로교회 교회정치 원리의 특징교회사에 등장한 교회정치 제도는 크게 3가지, 즉 감독정치(Episcopacy), 회중정치(Congregationalism), 장로정치(Presbyterianism) 등으로 대별할 수 있다. 감독정치는 교직의 직무,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별 강조로 계급성을 주장한다. 회중정치는 교직의 계급과 위계질서를 부정하고 개교회주의 표방한다. 장로정치는 교직의 평등을 주장하나 당회, 노회, 총회의 교회회의 위계성을 인정한다. 장로정치는 교회간 연합의 취약성을 가진 회중정치의 취약점과 교권주의로 교직의 평등성을 파괴하는 감독정치의 문제점 등 양쪽을 거부한다.

장로교회 정체성을 논할 때, 교회 정치 형태 중심으로만 보아야 한다는 입장(예, 스코틀랜드의 존 맥퍼슨 견해)과 정치 형태는 물론 교리와 예배 형태까지 내포해야 한다는 두 입장이 있다. 그러나 장로교 역사를 볼 때, 장로교회는 정치 형태뿐만 아니라 교리와 예배 형태까지 포함하여 규정짓는 것이 통념 된 입장이다. 칼빈의 개혁신학적 교회 정치사상은 제네바를 기점으로 온 유럽에까지 확산되었다.

칼빈이 세운 ‘그리스도의 완전한 학교’에서 배운 칼빈의 후예들에 의해 독일, 네덜란드, 영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프랑스, 폴란드, 헝가리 등과 심지어 반종교개혁이 강한 지역이었던 스페인, 이탈리아, 더 나아가 18세기 말에 장로교 선교사들에 의해 세워진 초기 한국교회에까지 칼빈의 정치사상이 확산되었다.

3. 칼빈의 교회정치의 3대 원리 칼빈의 교회정치 사상이 내포된 그의 대표적 주장은 다음과 같다. “성도는 교회에 의해 잉태되고 양육 받는다.” “성도는 죽을 몸에서 벗어날 때까지 교회의 돌봄과 다스림 가운데 보존 되어야 하며 생명으로 들어간다.

”칼빈의 교회정치 사상의 기본 요소는 그리스도의 주권, 직무의 분배, 대의정치 사상으로 다음 주장에서 투영된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유일한 머리로 삼은 공동체 혹은 몸이며 모든 다른 지체들은 머리되시는 그리스도 아래에서 평등하다.” “직무는 은사에따라 다양한 직분이 주어진다.” “직분은 모든 교인에 의해 선출되어 교회의 대표가 된다.” “교회는 전 교인의 정당한 대표로 선택된 직분자들, 곧 목사와 장로에 의해 통제되며 감독된다.”

다시 정리하면, 칼빈의 3대 정치원리는 그리스도의 주권 아래서 모든 지체들이 평등성(equality), 자율성(autonomy), 연합성(unity) 등으로 요약된다. 먼저 칼빈은 성경이 교회와 교회, 목사와 목사 사이의 평등을 주장한다. 칼빈은 감독, 장로, 목사를 동의어로 본다. 칼빈은 교회의 모든 직분을 계급으로 보거나 계급적으로 만드는 모든 시도를 배척한다. 그는 교회 통치에 관련된 지배력, 혹은 지배권을 형성하는 자체를 매우 싫어하고 혐오감을 느낄 정도이다. 칼빈은 지역교회의 자율성을 주장한다.

목회자 청빙, 교회 재정 등에 관한 일체 권한이 교권을 가진 자가 아닌 지역 교회의 회중에게 전적 있다고 보았다. 그는 “회중에 의해, 회중의 합의에 따라 목사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다만 “회중이 경솔하거나 무질서해서 교인 총회가 잘못되지 않도록 다른 교회의 목회자가 투표 진행만 할 뿐이다”라고 하면서, 세속 통치자나 교권주의자들의 횡포와 전횡을 막고 지역교회의 자율성을 강조하였다.

칼빈은 연합성을 강조한다. 그는 평등과 자율성을 강조하면서 연합을 부정한 회중교회를 거절한다. 또한 그는 연합을 주장하면서 평등과 자율을 부정하는 감독정치를 배격한다. 그 이유는 감독정치의 허식과 횡포를, 회중정치의 대중의 무질서, 변덕 등이 교회 정치에서 볼 수 있는 극심한 부패 현상이며 부정적 자태이기 때문이다.

칼빈은 성경적 바른 기준에 의해 세워진 회중의 대표들에 의해 당회 중심의 장로 정치를 하나님이 주신 기본 교회 정치 제도로 보았다. 또한 교회와 교회가 연합한 노회나, 노회와 노회가 연합한 총회를 하나님 권위로 논쟁을 해결하기 위해 세우신 기관으로 보았으며 교회 간의 연합을 강조하였다.

한국장로교 정치의 역사적 변천, 현실 및 개혁을 위한 제언 100년의 장로교단 역사 속에서 장로교 정치 사상도 수난의 민족사, 교단 분열의 산고 끝에 오늘의 한국장로교회가 세워지고 있다. 한국장로교회는 장로교 역사는 물론 선교역사에서 그 유래를 볼 수 없을 만큼 부흥하고 성장해 왔다.

한국장로교 부흥과 성장은 장로교 정치원리가 한국토양에 적합했다고 볼 수 있다. 어떤 의미로 한국에 존재하는 모든 감독교회, 회중교회, 순복음교회까지도 장로제도 및 정치원리를 도입할 만큼 한국장로교 정치제도는 한국교회 정치의 흐름과 방향을 결정지었다. 한국장로교회는 장로교 정치원리에 따라 치리회를 다스려야 한다.

교회 내 정치원리를 성경적 원리와 헌법적 원리에 따라 신실하게 집행하고, 그 결과에 따라 절대 순복해야 한다. 교회정치와 재판의 결과가 세속사회 법정에서 판단 받은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당회, 노회, 총회의 삼심제도가 신율법칙에 따라 집행되어져야 한다. 직분의 계급화 현상, 정치집단의 만행, 금권에 따른 비윤리적 결정, 정치 권력 집중화 현상, 각 치리회의 교권 남용, 이단에 대한 무분별 포용 등으로 또다시 16세기 암흑기로 되돌아가는 불행스런 사태를 막아야 한다. 한국교회의 개혁은 한국장로교회의 개혁이다.

한국장로교회의 개혁은 한국장로교회 합동교단의 정치개혁이다. 한국장로교회의 정치개혁은 오직 “장로교 신앙과 신학에 온전히 충실한 사람이 정치를 할 때”만이 가능하다. 우리 모두 개혁 장로교회의 진정성 회복을 위해,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나 자신부터, 내가 섬기고 있는 교회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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