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화 시대 영성을 극복할 개혁주의 영성 신학과 삶의 원리
1. 개혁주의 영성 신학 정립의 필요성
21세기의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도래를 앞두고 정신적이고 영적인 가치보다 물질적 가치를 더욱 선호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 조류가 인간의 영혼이 더욱 갈증을 느끼게 하고 정신적 고갈이 더욱 심화되어 가고 있다.
교회 내에서도 한편으로는 물질 지향적 혹은 기복적 형태의 신앙생활을 추구함으로 교회가 추구할 영성을 잃어버린 시대가 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불건전한 성령 운동이 영성의 본질을 오도하고 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종교개혁의 신학적 완성자라고 불리는 칼빈의 영성 이해를 새롭게 정립할 필요성이 요청되어진다.
특별히 칼빈주의 신학을 추구하는 개혁교회에서는 영성이란 용어 자체가 수도원적이고 로마 카톨릭적 유산으로 단정 지우고 무조건 거부하는 것이 보통 상례이다. 그러나 신학자 윌리암 부스마(William Bousama)는 『칼빈에 있어서 「영성」(Spirituality)은 낯선 용어이지만 그의 신학사상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용어는 바로 영성이다』는 말을 하였듯이 칼빈은 영성이란 신학적 개념을 사용하지 않았지만 「경건」이란 의미 속에서 영성을 깊이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칼빈이 정립한 『경건에 기초한 신학』 내면에는 깊은 영성 신학이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영성」 의미로서 「경건」 개념
칼빈은 그의 명저 「기독교 강요」 제1판에 저술 목적이 『경건의 훈련』임을 밝히고 있다. 칼빈은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는 일종의 경건의 실천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의 80장 중 경건을 다루기 위한 장을 특별히 할애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칼빈은 그 책의 전체를 경건에 할애하였음을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칼빈이 의도적으로 경건에 관하여 체계적이고 조직적으로 서술하려고 노력한 흔적은 찾아보기 힘드나 그의 경건에 생각이 매우 깊은 내면 속에서 신학적 큰 물줄기로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개혁주의 영성을 최근에 연구한 하워드 라이스(Howard L. Rice)는 『개혁주의 전통에서 「영성」을 의미하는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된 용어는 바로 「경건」이다』고 하였다. 이것은 칼빈의 경우에 특히 더욱 그러함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영성에 대한 칼빈의 이해는 그의 신학의 중심인 하나님을 아는 지식 곧 경건에 기초를 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칼빈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와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 아는 것에서 비롯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결합된 것을 「경건」이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여기에서 칼빈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하나님의 임재에 응답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요청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경건이며 이것이 또한 영성임을 알 수 있다.
3. 영성의 원천들
칼빈은 영성의 원천을 하나님을 아는 것과 자기 자신을 아는 것으로 보았다. 칼빈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자신에 대한 지식이 바로 경건이며 이것은 바로 신학의 과제라고 보았다. 칼빈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자신에 대한 지식 사이에는 상호 관련이 있고 올바른 가르침의 순서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다루고 그다음에 인간에 대한 지식을 다루는 것으로 보았다. 칼빈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경건 혹은 영성의 원천으로 보았다.
칼빈은 영성의 원천을 경건 즉 하나님에 대한 지식으로 보았고 그 영성을 얻기위한 방안으로 여섯 가지 정도를 제시하였다.
첫째로 하나님 경외함을 통한 영성이다. 칼빈은 참된 경건은 그 하나님의 이름에 대한 두려움, 그에 대한 신뢰, 거룩한 삶 등으로 설명하고 있다. 또한 칼빈은 불경건을 설명하기를 『마음으로부터 진지하게 나오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경외에 상반되는 모든 것이다』고 했다.
둘째로 말씀을 통한 영성이다. 칼빈은 하나님은 자연과 역사 속에서 자신을 계시하셨기에 자연과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에 대한 지식, 즉 경건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이 타락하여 자연과 역사를 통하여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하고 올바르게 경건에 이를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에 대한 바른 지식을 얻을 수 있고 바른 경건 즉 바른 영성을 회복할 수 있다고 보았다.
셋째로 칼빈은 성례를 말씀과 함께 또 다른 영성의 원천으로 보았다. 칼빈은 『성례는 주께서 우리 신앙의 약함을 도와주기 위해 우리를 향한 그의 선의의 약속들을 우리 양심에 인치는 외적 표시』로 보았으며 『성찬은 주의 만찬을 믿음을 심화시키는 또 다른 기회로 보았으며 성례는 그리스도와 신비적 연합으로 보았다.』 이처럼 칼빈은 성례를 영성 형성의 방편으로 보았다.
넷째로 하나님의 일반 계시인 자연을 통한 영성이다. 칼빈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을 명상함으로써 하나님의 전지성과 전능성을 아는 지식 즉 경건, 즉 영성에 이를 수 있다고 보았다.
다섯째로 하나님의 섭리를 깊이 묵상하고 생각하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그의 위대하심에 대한 경건 즉 영성에 이르게 된다.
여섯째로 내세에 대한 명상이 또 하나의 영성의 원천이 된다. 칼빈은 『만약 죽음 후의 영원에 대한 희망이 없다면 … 인간은 야수보다 나을 것이 없다고 했다. 또한 『죽음의 날과 마지막 부활을 기쁘게 기다리지 않는 자는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진급하지 못한다』고 했다. 이러한 내세에 대한 명상은 바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지를 깨우쳐주는 영성이 된다.
4. 영성 생활 원리
칼빈이 경건을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삶과 사람들 사이에서 사랑하며 사는 삶을 불가분 관계로 보았다. 즉 칼빈에게 있어서 영성 곧 경건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전체에 관련된 문제로 보았다. 그는 디모데전서 4장 8절을 주석하면서 『경건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시작이요 삶의 중간이며 끝이다』고 하였다. 또한 칼빈은 또한 생활의 영성 원리인 경건이 바로 거룩(holiness) 개념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칼빈 신학의 구조 속에서 칼빈이 밝히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영성 삶의 원리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자기 부정의 삶이다. 칼빈에 따르면 그리스도의 죽음을 그리스도의 삶의 모형과 모범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자기를 부정하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을 의미한다.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 부인과 십자가 지시는 길을 모범으로 손수 보여 주셨기에 그 삶을 본받아 살아가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참다운 영성이 나타나는 삶이다. 이러한 자기 부정은 바로 인간의 힘으로 될 수 없고 성령의 사역임을 칼빈은 밝히고 있다. 성령께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성도의 자기 부정을 연합시키는 영성 사역을 감당하신다. 칼빈은 말하길 『본성적 정욕을 억제하고 무법한 욕정들을 꺾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죽음을 본받아 사람들이 자신들과 세상을 부인할 수 있게 한다』고 하였다.
둘째로 십자가 고난을 기꺼이 지는 삶이다. 자가 부정을 내면적 영성이라고 한다면 십자가를 지는 삶은 표면적으로 표출된 영성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전 생활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죽음을 본받기를 원하신다. 즉 마음의 내면적 태도뿐만 아니라 외형적 환경에서도 그리스도를 닮는 삶을 사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영성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내면적 자기 부정의 삶과 환경적으로 닥치는 고통과 환란도 극복할 수 있는 삶의 자세가 필요하다. 십자가를 인내의 태도로 짊어지고 그러한 십자가 짐의 삶을 통하여 성화의 과정에 이르게 되고 더욱 그리스도를 닮아가게 되는 것이다.
셋째로 기도의 삶이다. 칼빈은 기도를 하나님의 자녀들이 행하는 중요한 연습으로 보았다. 특별히 칼빈은 기도를 『신앙의 영속적 연습』이며 『살아있는 신앙의 표현』으로 보았다. 칼빈은 기도는 『하나님에 대한 심령의 표현』으로 보았다. 성령님은 성도들의 마음과 심령을 기도하도록 준비시키고 하나님을 열렬히 사모하게 만들며 우리의 요구와 감정들을 규제하신다. 양자의 영이신 성령님은 담대함과 확실한 희망을 가지고 성도가 하나님께 자녀로서 나아갈 수 있게 도우시고 보장하시는 장본인이시다. 성령님의 감화로 또한 성도가 효과적으로 기도를 드릴 수 있고 그러한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하며 성령의 은사를 체험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삶을 살 수 있는 영성을 간직하게 되고 그러한 영성이 회복되고 충전되어진다.
5. 개혁주의 영성에 따른 현대 교회의 반성과 적용
첫째로 종교개혁자들은 은혜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신 선물을 강조한 나머지 인간의 노력을 암시하고 부여하는 어떠한 영적 실천 사항들을 전부 무시하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개혁주의 전통에서 볼 때 개인기도, 성경 묵상, 절제, 섬김의 삶 등 높이 평가하고 이러한 개인적 실천적 삶이 은혜의 공적 수단인 말씀, 성례, 기도 등과 같이 조화를 이루어야 된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는 개혁주의 신학에서도 구원에 대한 은혜 교리를 강조하고 또한 그 은혜를 지속하고 그 은혜를 누리는 삶이 개인적 실천적 삶 즉, 묵상, 기도, 절제, 섬김의 삶 속에 나타내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실천해야 한다.
둘째로 개혁주의 전통을 잘못 이해한 나머지 하나님과의 수직적이고 개인적 관계만 만족하고 수평적 차원의 제자도를 거부하는 편견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개혁주의 전통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는 한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을 강조하면서 또한 참된 경건이 전체 신앙 공동체 속에 실현되기를 요청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성도들이 한 의로운 개인만으로 아니라 한 공동체로서 구속받았음을 또한 강조한다. 이것은 공동체 의식이 결여된 한국 개혁주의 보수 신앙을 추구하는 교회가 자성해야 할 부분이다.
셋째로 개혁주의 전통을 잘못 이해한 나머지 지적 객관성만 강조하고 주관적 반응을 무시해 온 경향이 농후하다. 그러나 칼빈은 가슴으로 느껴지는 것이 없는 머리만의 지식은 하나님을 신뢰하기에 충분하지 못한 것으로 보았다. 신뢰는 믿음의 심장이다. 그러므로 감정은 믿음의 작용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의 감정적 경험들이 지식의 말씀에 의하여 점검되어져야 한다. 또한 가슴으로 느껴지는 개인적 경험이 없는 지식은 죽은 지식이다. 그러므로 개인의 감정과 체험을 도외시하고 무조건 오순절 주의로 몰아 내세우는 편견을 고쳐야 한다. 즉 지식과 경험은 서로 대비를 이루면서 온전한 믿음을 향한 필수적 요소들임을 알아야 한다.
넷째로 개혁주의 전통을 이원론으로 생각하는 잘못이 있다. 칼빈은 몸-마음의 이원론을 거부하였다.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이 주신 자연의 아름다움과 풍성함을 누릴 수 있음을 칼빈은 주장하였다. 또한 지나친 타계적 내세주의만을 고집하는 것이 개혁주의 종말관에 대한 영성이 아니다. 그러므로 개혁주의 영성은 이 세상에 대하여 건강한 태도를 가지고 있다. 개혁주의 영성의 훈련 목표는 세상에서 분리가 아니라 세상을 개혁하고 변화시키는 문화적 사명과 선교적 사명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수도원은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사는 삶을 거부함으로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삶을 영성을 추구한다면 칼빈은 세상 속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삶을 살 수 있도록 접목시키는 영성을 추구하였다. 칼빈은 수도원적 이원론적 사고를 공격하면서도 가족들과 함께 아침과 저녁 기도 시간을 통하여 작은 수도원으로서 가정이 되기를 요망하였다.
결론적으로 오늘날 교회가 주도 과제는 영성 회복이다. 개혁주의 신학 입장에서 칼빈의 경건에 바탕을 둔 신학 원리는 영성 신학의 기초와 원리가 된다. 살펴본 바와 같이 칼빈은 영성이란 용어 자체를 사용하지 않고 경건이란 신학적 개념 속에서 끊임없이 영성 추구한 신학자요 목회자요 교회 지도자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칼빈의 경건 속에 내포된 영성 신학과 원리를 개혁주의 신학 입장에서 이 시대에 적합한 영성 신학 확립과 영성 실천 목회 방법을 정립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