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을 묵상하다보면, 다윗은 아침, 저녁에 기도를 드린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시편 5편을 시편 4편의 밤중에 드린 기도에 이어서 아침에 드린 기도문으로 여겨진다.
시편 5편은 애가 시로, 간청의 시, 무죄 천명의 시, 보호의 시, 확신의 시, 피고소인의 기도 시 등으로 불리운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반란이 있기 직전 자신에 대한 반역의 음모가 원수들에의해 꾸며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드린 기도이다.
이 시는 아침 희생 제사 전에 제사장들에 의해 낭독되었거나 개인 예배자들이 예배 시 입례송으로 불려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시편 5편의 일부를 인용해 보면 다음과 같다.
“여호와여 나의 말에 귀를 기울이사 나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내가 주께 기도하나이다 여호와여 아침에 주께서 나의 소리를 들으시리니 아침에 내가 주께 기도하고 바라리이다”(시편 5:1-3).
먼저 다윗은 자신의 “심정을 헤아려 주소서”라고 기도드리고 있다.
‘귀를 기울여 주소서’, ‘헤아려 주소서’, ‘들어주소서’ 등 세 개의 강조형 명령문을 사용하여 다급한 상황에 마치 황급히 주님이 계신 방을 노크하듯이 주님께 아뢰고 있다.
또한 다윗 기도의 긴박성은 물론 간절성, 끈기성을 보여주고 있다.
다윗이 거듭해서 3번씩이나 명령형을 사용하는 것은 그의 긴박한 상황에 대하여 주님께서 속히 개입하셔서 문제 해결을 해 주실 것에 대한 강렬한 요청이다.
특별히, 자신이 간구하는 ‘말들’(에메르), ‘심정’(하기그, 신음소리), ‘부르짖음(콜 쉐바, 부르짖는 외침) 등을 기울여 주시고, 헤아려 달라고 점점 더 간절하고 간곡하게 기도드리고 있다.
여호와, 즉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주님을 믿고, 그의 중얼거리고, 속삭이는 말, 더 나아가 그의 마음아리하는 속 심정, 더 강렬하게 울부짖는 목소리로 하나님께 탄원하며 기도드리고 있다.
다윗의 기도에서 기도 원리를 배울 수 있다. 기도 대상은 언약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인격자 되신 하나님께 아뢰는 것이다. 기도의 자세는 점진적으로 더 강렬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입술에서 나오는 말, 마음 깊은 곳에서 솟구치는 탄식과 신음, 그리고 울부짖음으로 기도 시간이 갈수록 더욱 강렬해 진다.
기도의 시간은 언제나 드릴 수 있지만, 하루가 시작되는 고요하고, 정숙한 이른 아침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
또한 다윗은 “부르짖음을 들어주소서”라고 기도드리고 있다.
다윗은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임에도 불구하고 우주 왕이시요, 진정한 이스라엘의 왕이신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다.
자신이 왕으로 세우신 분이 진정한 통치자가 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에 자신의 억울한 상황, 다급한 문제를 친히 재판관이 되셔서 올바르게 판단, 판결을 내려 달라는 간구이다.
여기서 ‘나의 왕,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짖는 것은 당시 최종 재판과 판결에게 있기에 다윗은 왕인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실 분은 진정한 왕이시고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판결하신 분이시기 때문이다.
세상에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잘못된 판결을 받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수십 년 후에 새로운 증거를 통해 무죄판결을 받은 경우도 허다하다. 이처럼 세상의 법과 세상의 재판으로 진실이 가리어져 억울한 누명을 쓸 때도 많이 있다.
이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한가지 밖에 없다. 진정한 재판관, 온전한 재판관, 정의의 재판관은 오직 우리의 왕 되신 주님뿐이시다.
3절에 ‘아침’이 두 번 나온다. 아침은 동녘이 밝아오는 시간, 곧 새벽을 가리킨다. 아침 혹은 새벽은 아침 제사 시간과 기도 시간과 연관이 있다(왕하 3:20; 16:15; 암4:4).
구약에서 아침 시간은 주님의 도우심이 임하는 시간으로 본다(시46:5). 아침에 큰 구원의 역사를 체험하였다(출14:24; 사37:36). 아침에 번제를 드렸다(겔46:13,14,15). 아침에 모세가 율법을 받았다(출19:16; 34:2). 아침에 제사를 드렸다(출29:38-42; 민 28:2-8). 아침에 여리고 성을 돌았고 아침에 무너졌다(수 6:12, 15).
맥케이(McKay)는 “새벽 시간은 하나님께서 도우시기 위해 오시는 시간, 하나님 자신께서 그의 사랑을 계시하는 시간, 하나님께서 새롭게 하시기 위해 오시는 시간이다”(시90:14; 애3:23; 습4:5 참조)라고 하였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새벽에 어두움을 물리치고 떠오르는 태양은 어둠의 세력을 물리치고 구원의 빛으로 오시는 하나님의 현현으로 보았다. 그들은 빛을 통하여 어두움이 물러가는 것을 악, 죽음, 두려움, 공포가 물러가고 선, 생명, 기쁨, 평화가 임하는 것으로 느끼고 의미를 부여하였다.
아침에 주님께 기도드리고 아침에 주님의 응답을 기다린다고 하였다.
그런데 여기서 기도로 번역된 ‘아라크’는 ‘제사를 준비하다’. ‘제물을 차리다’(레1:8-9; 12) 뜻이다. 그것은 기도가 곧 제사요 제물을 하나님께 드린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아라크’는 ‘말을 내다’, ‘진술하다’, ‘사정을 아뢰다’ 등의 뜻을 가지고 있다.
우리 주님께서도 온 종일 바삐 사역에 열중하셨지만 이튿날 이른 새벽에 한적한 곳에 나가셔서 기도하시고 다시 복음 전하시는 모습을 볼 수 있다(마가복음1장32~39절).
성경 여러 곳에 새벽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다.
“하나님이 그 성 중에 계시매 성이 흔들리지 아니할 것이라 새벽에 하나님이 도우시리로다” (시46:5)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시57:7-8)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내가 노래하며 나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리로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시108:1-2)
“새벽에 일어나 스마트폰 검색하거나 뉴스를 보면서 시작한 사람과 새벽기도를 하며 하나님과의 교제로 시작한 사람의 하루는 하늘과 땅 차이가 난다”는 어떤 목사님의 말이 생각난다. 새벽 묵상으로 아침을 열고 저녁 기도로 하루를 닫는 삶이 진귀하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다윗의 일상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살아갔다. 그가 늘 하나님의 나라 실현을 위해 애쓰고 힘썼던 영성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꼭, 반드시, 지금부터 되찾아야할 영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