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December 22, 2024

[정준모 박사 칼럼] 나그네 영성으로 살아갑시다

인기 칼럼

정준모 박사

*다음 설교원문은 2016년 7월 31일 GSM(선한목자 선교회: 대표 황선규목사) 시애틀 시백 선교대회 국제 부대표로써 행한 “나그네 선교사의 영성”(벧전2:11-25)이란 제목으로 행한 개회 예배설교 전문입니다.

지난 30여년간 수많은 설교 중에 나 자신에게 또한 오늘날 교계 지도자들과 성도들에게 꼭 다시 전하고 싶은 말씀이기에 이곳에 지상 설교로 다시 증거하고자 합니다.

특히, 인생 중반을 넘은 나이에 중국 오지ㆍ말레이시아밀림 지역의 선교사로 헌신하는 중, 22.8.18. 말레지아 현지에서 목사안수를 받는 동생 정윤모 선교사에 기도와 마음을 담아 이 설교문을 나누고 싶어 원고를 다시 소개합니다.>

< 오늘 이 말씀을 듣는 날은 모두에게 특별한 날입니다>

오늘은 특별한 날입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며 영광 받으시는 날입니다. 2016년도 GSM 선교 대회가 시작되는 첫 날, 첫 시간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열방에 효과적으로 선포하기 위해 동역하는 GSM 전후방선교사들이 함께 축제로 모인 날입니다.

우리는 오늘 “선교”라는 숭고한 한 목적을 위해 전방선교사인 “두발 선교사님들”과 , “후방선교사인 무릎 선교사님” 들이 오대양 육대주에서 기도하며 기대하며 설레이는 마음으로 함께 모였습니다.

우리는 3박 4일 동안, 전방 선교사님들의 선교 격전지 현장과 선교 사역 현황, 선교 전략과 선교 열매, 선교 정보와 선교 비전, 선교 현장의 희비애락과 선교 기도 제목들을 함께 나누고, 함께 찬양, 간증, 기도의 향연을 피울 예정입니다.

또한 후방, 후원 선교사들의 삶의 간증과 기도 현장, 선교에 대한 열망과 헌신, 선교 후원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들을 나누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2016 GSM 선교대회를 통하여 선포되는 생명의 말씀, 생동감이 넘치는 선교사역 현장 스토리, 임마누엘의 하나님 은혜를 체험한 선교 간증 등등을 통하여, 서로 도전 받고 서로 위로 하며, 새로운 GSM의 선교 전략과 비전을 나누게 될 것입니다.

저는 오늘 황선규 대표자님의 부탁을 받고 사양도 했지만, 순종하는 마음으로 지난 7월 19일 아침 말씀을 묵상하는 가운데 본문 말씀 중심으로 “나그네 선교사 영성”이란 제목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남긴 유일한 서신로 은혜를 나눕니다>

본문은 사도 베드로가 남긴 유일한 서신입니다.

베드로 그는 누구입니까?

사람낚는 어부로 부르심을 받고, 3년간 주님의 멘토링 제자훈련을 받고,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 아들이라고 가이사랴 빌립보 고백을 할 만큼 수제자의 영광을 얻은 자가 아닌가요?

참하나님이시오 참사람이신 주님과의 인격적 만남을 체험한 놀라운 은총을 입은 자가 아닌가요?

메시야 되신 주님이 선포하시는 천국의 신령한 메시지들, 그분의 고요한 기도와 묵상의 영성, 수많은 기적을 손수 체험하고, 지상에서 직접 주님이 초대하신 성만찬식에 참여한 영광을 얻은 자가 아닌가요?

성만찬시 생명의 떡과 언약의 피로 첫 성찬을 받은 베드로, 주님을 배반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을 했던 베드로, 주님 체포당하시던 밤에 3번이나 주님을 부인했던 베드로, 심지어 주님을 저주까지 했던 베드로였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시고 부활의 능력으로 살아나셔서, 애환의 장소, 주님을 처음 만났던 첫 부르심의 바닷가에서, 지친 베드로에게 따뜻한 조반을 먹이시고,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사랑의 메아리로 새사명, 새능력, 새비전을 주셨던 주님의 만난 베드로, 그가 네로의 대 박해를 통해 순교 앞두고, 스데반 집사가 순교이래 를 당하는 AD68년 예루살렘 박해 이후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박해자들의 핍박을 피해 신앙의 지키기 위해 정든 고향을 떠나 이방 땅으로 흩어진 디아스포라들에게 쓴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입니다.

오늘 이 장소가 베드로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던 다베랴 바다가 되길 바랍니다. 이 시백 장소에서 베드로 사도가 기록한 말씀을 우리 모두가 겸손히 받고 우리의 선교 목적, 선교 방향, 선교 가치, 선교 영성에 새로운 도전과 비전이 열리길 축복하고 소망합니다.

1장에서는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죄인인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않는 하늘의 산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2장에서는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분의 소유된 백성음을 소개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우리를 어두운데서 불러 내시어 기이한 빛 가운데로 들어가게 하신 목적이 주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 곧 복음 전하는 일, 선교하는 일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 ” 거류민”, “나그네와 행인”, “육체의 정욕”, “행실”, “하나님 종”, “고난” 등에 초점을 맞춥니다.

저는 오늘 2장에 나타난 몇 가지 단어에 포커스를 맞추어 말씀을 증거하려 합니다.

11절에 나오는 거류민, 나그네와 행인, 육체의 정욕, 12절 행실, 16절 하나님 종, 21절 고난을 중심으로 “나그네 선교사 영성”이란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우리 모두는 전후방 선교사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야 합니다.

GSM 선교대회에 모인 우리는 누구인가? 대표님이 창안하신 특별한 선교용어인 전방선교사요 또한 후방선교사입니다. 또한 전방과 후방을 연결하는 중간 선교사입니다. 선교 일선 최전방에서 고군분투하는 전방선교사님들과 후방에서 탄환과 주먹밥을 공급하는 후방선교사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에서 베드로 사도는 전후방 선교사인 우리들이 누구라고 밝히고 있습니까? 우리가 누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정체성이 무엇이라고 밝히고 있습니까?

우리는 선교사라는 나의 사역, 나의 신분의 정체성 뿐만 아니라, 우리의 본연의 정체성이 무엇인가를 밝히고 있습니다.

11절에 우리는 “거류민”과 “나그네”입니다. 어떤 번역본에는 “나그네”와 “행인”입니다. “길손”이라는 뜻입니다. NIV 성경에는 “stranger”라고 했습니다. 낯선 사람, 이상한 사람, 본토인이 아닌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살면서, 세상 사람들과 차별된 사람, 곧 strangers, temporary Residents, foreiners, aliens, pilgrims들입니다.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삶의 가치, 삶의 원리, 삶의 목적이 전혀 다른, 이상한 사람들입니다.

손가락질 받는 사람, 수군수군 거림을 받는 사람, 예수에 미친 사람, 선교에 혼이 빠진 사람들로 스트렌져들입니다.

이 세상의 풍조를 쫓지 않고, 이 세상에 소망을 두지 않고, 이 세상에 목숨을 걸지 않고, 이 세상의 행보에 맞추지 않고 살아가는 복음 나그네선교 나그네, 십자가와 부활의 나그네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 우리는 전후방 선교사들입니다. 우리는 하늘 나라를 본향 삼고 사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목숨을 거는 자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신령한 것에 생명을 바치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거룩한 순례자의 길을 걷는 자입니다. 우리 전후방 선교사들은 나그네 영성, 나그네 인생철학을 가지고 사는 자들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생명, 우리의 물질, 우리의 가정, 우리의 직장, 우리의 시간 그 모두가 이 땅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 확장에 있습니다.

어떤 지혜자의 말처럼 “인생은 먼 다리를 건너가는 것”입니다. 천성을 향해 가는 먼 다리는 건너는 나그네 성도, 나그네 선교사는 결코 다리 위해 집을 짓지 않고, 다리를 건너갈 뿐입니다.

건너가면 그만인 다리 위에 인생의 집을 짓지 않을 겁니다. 무더지는 다리, 무너지는 모래 위에 우리의 인생을 투자하고 인생의 깃대를 꽂지 않을 겁니다.

저는 21년간 목회 사역지를 떠나 새로운 사역을 준비하면서 많은 고심과 많은 고난을 시간을 보내면서, 이런 일, 저런 일 등으로 구상하면서, 한 가지 큰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아하, 내 계획에 미처 생각지도 못한 분명한 사실이 있구나. 결국은 하나님 앞에 서는 종말의 날이 나의 최종 정착지, 최종 목표이구나, 매우 당연한 생각이나, 그것을 늘 망각하고, 늘 놓치고 살아가곤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서는 것 나그네 인생길 마지막 종착역이라 종말의식, 신전의식으로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의 가치, 삶의 자세, 삶의 목표가 확연하게 달라질 것입니다.

단순해 질 것입니다. 세상 일에 욕심을 내지 않을 것입니다. 염려가 살아질 것입니다. 세상의 희비애락에 초연해 질 것입니다. 땅에 있는 것의 있음과 없음에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않을 것입니다.

영적인 일에 몰두할 것입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올인할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할 것입니다. 기도하게 될 것입니다. 거룩을 추구하게 될 것입니다. 작은 것에서 행복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내려놓고 더 내려놓게 될 것입니다.

이번 선교대회를 통해 우리 모두가 나의 정체성, 나는 나그네, 행인, 길손, 스트랜져라는 정체성을 확인하고 회복합시다. 그리고 나그네 인생길 지나가는 다리위에 인생의 집을 짓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2. 자기와 싸움이 선교 일보다 우선순위입니다.

선교보다 더 중요한 우선순위는 자기와 싸움입니다.

11절,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베드로 사도가 나그네는 먼저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권면합니다. 그 이유는 육체의 정욕이 영혼을 거리려 싸우기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육체의 정욕이 영혼을 방해하고, 영적인 큰 방해가되고 올무가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육체의 정욕은 여러 영어번역본 성경을 보면 worldly desires, fleshly lusts, sinful desires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나그네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우선순위의 질서를 생명같이 지켜야 합니다. 우선순위가 무너지거나 혼란이 오면 영적 생활에 실패자가 됩니다.

우선순위, 어떤 우선순위를 말합니까?

우리가 무엇을 하느냐보다 어떤 자가 되느냐가 중요합니다. 선교를 얼마나 많이, 크게 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어떤 사람으로 선교를 하느냐가 더 중시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world christian이 되어야지 worldly christian이 되지 말하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world misssionary가 되어도 worldly misssionary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또한 우리가 선교한다고 하면서 worldly desires, fleshly lusts, sinful desires를 철저히 버려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나그네 사는 우리 전후방 선교사들의 삶의 우선 순위가 무엇입니까? 훌륭한 선교 업적, 뉴스거리가 되는 놀라운 사역, 자랑하고 싶은 선교 스팩들인가요?

물론 그런 놀라운 열매, 놀라운 현장, 놀라운 헌신도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중심을 보십니다. 주님은 본질을 보십니다. 주님은 거룩을 보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어떤 일을 했느냐 보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를 보십니다.

주님은 육신의 정욕을 제어하는 것이 어떤 사역을 하는 것보다 우선 순위요, 본질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육신의 정욕이란 무엇입니까?

육체의 악한 소욕에 일어나는 육욕, 식욕, 물욕, 명예욕, 권세욕 등등입니다. 이러한 소욕은 영혼을 거스립니다. 이러한 소욕은 성령을 거스립니다. 이러한 소욕은 성령을 근심케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일보다 거룩하길 원하십니다. 주님을 깨끗한 자를 사용하십니다. 주님은 거룩한 자를 귀하시 사용하시고 유용하게 사용하시고 오래도록 사용하십니다.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라는 말이 있습니다. 선교사도, 성도도, 사역자도 금그룻, 은그릇, 흙그릇 처럼, 위치, 은사, 능력, 분량, 역량이 다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더러운 금수저보더 깨끗한 흙수저를 사용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은 3가지에 만족해야 합니다. 우리의 위치, 소유, 환경에 대하여 주님의 주권 앞에서 만족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남과 비교해서 우월의식도 열등의식도 가져서는 안됩니다.

다만 우리 위치, 소유, 환경에서 감사하고 육신의 정욕을 제어하는 거룩한 삶을 살 때, 주님께서 더욱 귀한 주님의 도구로 사용하식실 축복합니다.

엄청난 선교의 결과가 육체의 욕망이 되지 않도록 해야합니다. 선교라는 거룩한 목적에 우리의 육체적 소욕, 세상적 욕망, 인간적이 명예가 철저히 뿌리 뽑히는 영성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3. 선한 행실로 감동을 주는 선교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

선교의 감동은 선한 행실입니다. 선한 행실로 선교의 큰 열매를 맺게 됩니다. 선교에 돈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선교의 돈 보다 더 가치있는 것은 선한 행실입니다. 선한 행실이 빠진 선교는 결국 무익하고 무실, 열매없이 잎만무성한 선교가 됩니다.

12절 말씀은 세상에서, 선교지에서 나그네 삶을 사는 우리 전후방 선교사는 선한 행실로 살아야 가야 합니다. 우리의 선한 행실은 이방인들이, 불신자들이, 선교대상자들이 감동을 받을 것이며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선교는 말이 중요합니다. 말의 능력은 대단한 합니다. 그러나 립서비스로 끝날 수 있습니다. 선교는 돈도 더욱 중요합니다. 돈으로 놀라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돈으로 할 수 없는 한계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러나 선교에 있어서 말보다, 돈보다 더 놀랍고, 위대하고, 열매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선교의 행실, 선한 행실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불신자들에게, 이방인들에게 말보다, 돈보다 그리스도인들의, 선교사들의 선한 행실이 그들의 마음 속에 진한 감동, 잊을 수 없은 감화력으로 영원히 새겨지기 때문입니다.

선한 행실 없는 복음전도와 메시지와 선교지에 투자되는 물질은 때로는 마음과 가슴에 새겨지기 보다 부메랑이 될 수 있습니다.

선한 행실은 바로 선교지를 밝히는 빛이요, 선교지를 짜게 만들과 맛있게 만드는 소금이요, 생명을 살리는 영적 향기가 될 것입니다.

3. 선교의 위대한 발자국은 종으로서 삶입니다.

16절, 너의는 자유가 있으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는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위하고, 영혼을 위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4장 8절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나나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우리가 복음 만나기 전, 우리의 지난 BC는 죄와 율법과 마귀에게 종노릇하던 자였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으로 종노릇에서 해방되어 참 자유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있는 자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이제 악을 행하는 것에는 자유하지 않으나 선을 행하는 데는 자유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복음의 종으로, 선교의 종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우리 자신의 삶을 온전히 드려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13절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직 주님의 사랑으로 복음을 위해 서로 종노릇해야 합니다.

선교역사에 있어서 비판 받는 한가지 사실은 제국주의식 선교라는 역사적 비판과 평가가 있습니다. 때로는 선교 현장의 질서와 사역을 위해, 리더쉽이 필요하고 통제와 권위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역자의 마음 중심에는 항상 주인의식을 버리고 청지지기 의식, 하나님께서 맡긴 영혼을 섬기는 종의식을 가져야 위대한 선교지의 발자국, 선교지의 열매가 있습니다.

제가 총신대학원 Th.M의 학위 논문으로 제출된 <사무엘 무어 선교사 이야기>를 잠시 전하겠습니다. 그는 한말 북장로교 선교사로 내한하여 한국말이 서투른 상황 속에서 46세 젊은 나이로 양화진 외국인 묘소에 묻히기까지 하류층 조선인들의 영혼을 사랑하고 자신의 가족과 형제 이상으로 사랑했던 그분의 헌신과 열정이 그립습니다.

4. 현재의 고난은 주님 앞에 서는 날 선교사의 영원히 빛날 상급이 됩니다.

본문은 로마 시대의 제도적 종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령한 의미에서 있어서 우리는 모두 종입니다. 복음안에서 종의 대상이 달라졌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종,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습니다. 품삯정도의 종이 아니라 몸종, 철저한 종이 되었습니다.

종은 자신을 위해 사는 자가 아닙니다. 자신의 몸값은 산 주인을 위해 분신처럼 사는 자입니다.

19절 말씀처럼 종은 때로는 부당하게 고난을 받습니다. 인격적 대우를 전혀 받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20절 말씀처럼 종은 선을 행하였지만 고난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의 종, 선교의 종으로 살면서 부당하게, 애매하게, 억울하게, 선을 행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작게, 정신적으로 물리적으로,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억울함을 당하고, 인격적 모욕과 물질적 손상을 입을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럴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선교를 포기해야 합니까? 등을 돌려야 합니까? 앙심을 품고 때를 기다려야 합니까?

21절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선교사의 부름은 고난에로의 부름입니다. 주님 제자의 부름은 스승 주님의 본을 따라 가는 부름입니다. 그리스도의 부름은 그분의 자취를 따라 가는 부름입니다.

23절 우리 주님처럼 욕을 당하되 맞대어 욕하지 않는 선교사되어야 합니다.

23절에 우리가 주님처럼 고난을 당하되 상대를 위협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24절에 주님이 친히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해 주셨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도 24절 이미 우리는 그분의 채찍 맞음으로 나음을 영광을 얻은 자입니다.

“그리스도의 부르심은 죽음에로의 부르심이다”는 말을 남긴 독일 고백 교회 순교자, 본훼퍼 목사님의 일화입니다.

나치 앞에서도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천국을 소망하며 기꺼히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그의 담대함은 오늘날 목회와 선교현장에서 가져야할 영성이다. 기꺼히 죽음에로의 부르심을 갖는 선교사라면 어디에든 어떤 상황이든 복음을 위해 한알의 썩어져 많은 결실을 맺는 삶이 될 것입니다. “노블레스 오블리쥬, 노 크로스 노 크라운”의 십자가 영성을 살아가길 소망합니다.

리빙스톤 선교사의 일대기를 잘 아실 것입니다. 검은 대륙의 선교사로 일평생 헌신했던 그분의 마지막 죽어 있는 장면은 오늘 우리가 마지막 머물러야할 장소임을 고백합니다.

결론입니다.

우리는 모두 선교사입니다. 전후방, 중간 선교사입니다. 주님의 최고 계명은 사랑입니다. 주님의 최고 사명은 선교입니다. 우리는 선교를 위해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것이 인생의 본문입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한 선교가 우리의 본분입니다.

그러기 위해 나그네 선교사 영성을 가져야 합니다. 나그네 선교사 영성은 첫째로, 나그네 인생, 나그네 삶, 나그네 선교사라는 자기 정체 의식에 확고해야 합니다.

둘째, 선교 사역이전에 선교자로서 육체의 소욕과 싸우는 자기 싸움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셋째, 선교의 열매, 선교 발자국은 결국 선교사의 선한 행실입니다. 다양한 프로젝트, 수많은 선교비 투자도 중요하지만 선교지에 그리스도 밖에 사람들에게 영원히 감동을 줄 선한 행실로 선교해야 합니다.

넷째,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 가신 길, 종으로서 섬김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끝으로 언제나, 어디서나 예고 없이 닥치는 고난 속에서도 주님의 고난을 바라보고 큰 위로을 얻고 큰 소망 가운데 승리하시길 축복합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받을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존 칼빈은 엄청난 주변의 비난, 원수들의 맹공, 자신의 수많은 질병 속에서 이 말씀을 암송하면서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초라한 무덤, 비석도 단지 J,C 그러나 그의 생애는 종교개혁시대를 넘어, 지구촌 오대양 6대주를 넘어 오늘 여기 2016년 GSM시백 선교대회에서도 빛나고 있습니다.

몇일 전에 어떤 선교사님의 긴 메일의 마지막 부분을 소개합니다.

훼를 치며 새벽을 알리는 숫탉 울음소리에 잠을 깨면 들녘에선 뻐꾸기와 장끼가 노래 합니다. 이층 거실 동편 창으로 찬란한 아침 햇살이 퍼져 듭니다. 마을 젖소들이 줄지어 집으로 돌아가는 저녁 즈음엔 서편 창으로 드넓은 아씨노브카 평원을 핏빛으로 물들이며 저녁노을이 찬란하게 스러집니다.

밤이 되면 온 세상 가득찬 개구리 울음소리에 잠을 설치고, 중천에 즈믄달이 애처롭게 뜰라치면 두고온 고향의 어머니 그립습니다. 외롭고 눈물나는 밤이 있긴 하지만,그분이 계획하시고 내가 그 길을 순종하며 걸어간다는 기쁨으로 살아갑니다.

앞으로 전개되고 해야할 일들의 성과를 벌써 의식하기 시작 합니다. 결과보다 과정을,다른 사람들의 평가보단 하나님의 시선에 유의하는 선교사 부부가 되도록 기도하겠습니다. 건강하시고 하나님 은혜 충만하신 날들이 되시기 또한 기도 하겠습니다. – 오늘부터 시작되는 선교대회를 위해 선교의 주되신 주님 앞에 전심으로 진심으로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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