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November 21, 2024

[정준모 박사 칼럼] 개혁주의 부활 신앙 회복을 통한 포스트 코로나 위기 신앙 대처

인기 칼럼

정준모 박사

◆개혁주의 부활 신앙 회복을 통한 포스트 코로나 위기 신앙 대처

서론) 코로나가 한창 대유행이던 끔찍했던 뉴스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개인 장례식을 치룰 수 없는 상황에서 집단으로 매장하는 뉴욕의 코로나 사태 그 현장을 볼 때, 인생의 연약함과 한계상황을 실감한다. 마치, 조류 독감이나 돼지 열병에 걸린 짐승들을 비닐봉지에 넣어 파묻듯이, 위기 상황 속에 인간의 마지막 모습이 비참하다.

여기에 생명의 주 부활이 없다면, 인생의 모습이 참으로 허무하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약속된 부활이 있기에 이 어려운 시기를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를 바로 보고 이 고난의 팬더믹 터널을 지나갈 수 있었다. 세상의 생명의 빛되신 주님의 은총이 온 누리에 비취길 소망한다.

개혁신학의 신학 토대를 이룬 존 칼빈의 신학, 특히 그의 부활론을 조명하고자 한다.

무엇보다도 포스트 코로나의 목회 전략과 방안에 대하여 무수한 세미나와 실천신학적 글들이 홍수를 이룬다. 변화무쌍한 시대에 모두 필요한 시대적 요청이요 방안들이다. 그러나 성경의 핵심이요, 개혁신학의 대 기본원리인 그리스도의 부활 신앙과 부활 교리를 늘 되새기고 확신시켜야 한다.

칼빈은 종말론을 구원론과 부활론 선상에서 소망의 신학을 세워나갔다. 부활 신앙에 근거하지 않는 종말론은 불가지론에 빠지거나 숙명론이나 비관론에 빠질 수 밖에 없다.

요즈음처럼 삶의 고난과 고통의 거센 파도 속에서 교회의 존재와 신앙생활의 뿌리가 흔들리는 세대에 칼빈의 신학과 부활론으로 거룩한 소망을 앙망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1. 칼빈과 개혁주의 신학

개혁주의는 곧 칼빈주의이다. 칼빈신학이 그 자체가 개혁주의 기초, 본질, 그리고 정수이기 때문이다. 개혁주의는 성경과 칼빈을 떠날 수 없다. 개혁주의는 칼빈 신학에 바탕을 두고 칼빈 신학을 전수하고 칼빈 신학을 발전시키는 신학 입장이다.

그러므로 개혁주의는 칼빈으로부터, 칼빈과 함께 칼빈 속에서 세워져야 한다. 칼빈의 신학과 성경을 뗄 수 없는 불가분리의 관계이다. 칼빈은 성경의 진리로써 자신의 신학을 정립한 신학자이다. 칼빈은 이성적 전제나 철학적 사변주의자가 아니라 말씀 자체를 근거한 성경강해자요, 성경을 주축한 신학원리를 주창한 성경신학자이기 때문이다.

칼빈 신학의 요체는 칼빈의 『기독교 강요』에 있다. 칼빈의 초기 작품의 특징은 기독론 중심이었다. 칼빈은 신구약 성경의 언약의 성취로서 기독론, 구원과 기독론의 기초로써 기독론이 중시되었다.

1533년 11월 1일 니콜라스 콥(Nicolas Cop)의 파리대학 취임 연설문에서 칼빈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중재하시는 유일하신 진신한 중보자, 생명의 열매를 맺게 하신 자신의 영으로 우리를 감화하시는 가장 위대하신 그리스도”를 위하여 우리의 진실한 믿음을 세워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천하에 구원을 얻는 길은 예수 밖에 없다”는 개혁신학의 기독론이요 구원론이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에서 다음과 같이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역설하였다, “그리스도께 구할 ‘목표’(scopus)는 ‘그분 자신 안에 있는 의(iustitia)와 해방(liberatio)과 생명(vita)과 구원(salus)’이다. 하나님의 진노를 ‘푸는 방식과 방법’(placandi modus ac ratio)으로서 주님의 ‘무름’(satisfactio)이 요구된다(기독교 강요, 2.16.1).

죄로 인하여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멀리 떠나 그분과 원수가 되어 있었다(롬 5:10; 갈 3:10, 13; 골 1:21~22).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서 ‘기꺼이 또 그저 베푸시는 자신의 관용’, 즉 ‘거저 베푸시는 호의로’ 우리의 구원이 역사한다.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부성적 사랑’을 받는 유일한 길은 오직 그리스도 한 분 밖에 없다

이러한 칼빈주의 혹은 개혁주의 입장에서 볼 때, 오늘날 거세게 한국 교회를 침투해 오고 있는 세속주의, 종교 다원주의, 각종 사이비 이단들의 현란한 물결들은 결국 성경의 기독론, 역사적, 정통적, 신앙적 기독론의 뿌리를 흔들고 있다.

악한 거짓 진리와 세속신학자들은 개혁주의 신학을 종교적 배타주의로 몰아치고 자유주의와 인본주의를 추구하는 종교다원주의라는 양을 탈을 쓴 이리 떼들이 몰려오고 있다. 이것은 바로 슐라이엘마허의 내재신학을 추종하는 자들과 칼 바르트의 신정통주의에 물든 신학자들의 큰 범과이다. 이것은 바로 성경 계시와 교리의 적신호를 무시한 채 과속으로 세속화 낭떠러지로 달리고 있는 이성주의, 인본주의 신학적 고속 열차들이다.

2. 칼빈 신학의 요체인 부활론

1) 다양한 증거로 예수님의 부활을 증거 한다.

칼빈의 예수님 육체 부활의 역사성에 대해서 모든 교부들 및 개혁신학자들과 함께 확고하고 믿고 주장한다. 오히려 칼빈은 그 누구보다도 성경적 근거로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 부활의 역사를 믿고 주장하고 그의 신학의 근저로 삼는다.

칼빈은 다양한 증거를 인용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의 확실성과 정당성을 다음과 같이 논증한다(기독교 강요, III 25.3 참조).

첫째, 무덤을 지킨 무장한 로마 군인을 통하여 증거 한다.

둘째, 시체에 손을 댈 수 없는 유대인의 관습이 증거 한다.

셋째, 부활하신 주님이 여러번 제자들에게 출현한 사실이 증거 한다.

넷째, 제자들이 부활하신 주님의 몸을 만져 보았다는 사실이 증거 한다.

다섯째, 주님의 승천을 목격한 자들이 증거 한다.

여섯째, 스데반과 바울에게 나타나심이 증거 한다.

2) 부활을 믿지 못하면 불신앙, 부패함, 완악함의 증거이다.

칼빈은 위와 같은 역사적 사실인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면 “불신앙일 뿐만 아니라 부패하고 심지어는 제정신이 아닌 완악함이다”라고 했다.

또한 칼빈은 “(예수님의 부활) 조롱하는 자들은 복음서 저자들이 역사로 전한 것(복음서)를 동화로 취급하는것이다”라고 비판했다.

3) 부활의 영적 유익성을 바로 알고 믿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이 주는 5가지 유익을 바로 깨닫고 믿어야 한다고 역설하고 있다.

첫째, 죄와 죽음과 마귀가 정복되었다.

둘째, 신자들에게 완전한 의가 주어졌다.

셋째, 주님의 부활의 권능이 성도들 안에 들어난다.

넷째, 신자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의 영광 속으로 들어간다.

다섯째, 신자는 자신의 육체 부활과 불멸성을 확신하게 된다.

3. 반칼빈주의자들: 부활 진리들 부인하는 자들의 헛된 주장들

기독교 핵심 진리요, 구원의 근거되는 부활 진리를 거부하는 자들의 입장을 살펴보자 한다. 이성주의, 합리주의, 자연주의에 근거한 현대 과학자, 철학자, 역사가, 신학자, 목회자 중에 다수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거절하고 부인한다. 십자가와 부활의 신앙과 신학에 대한 심각한 반론과 도전을 제기한다. 이들의 주장을 개괄적으로 살펴보고 이에 대한 변증학적 비판을 하고자 한다.

1) 토머스 울스톤

“부활은 합리성이 없고 개연성이 없고 신뢰성이 전혀 없는 사기극이다”

2) 피터 아넷

“《예수 부활의 성찰》이란 책에서 그는 부활 기사는 신빙성이 없고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것이 아니다”

3) H.E.G 파울루스

“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은 것처럼 보이는 혼수상태였고 무덤의 냉기와 향수와 지진으로 의식이 회복되었다”

4) 슐라이어마허

“ 예수의 생애란 책에서 예수는 십자가에서 의식 불명 상태에 빠졌고 무덤의 냉기로 다시 의식이 회복되어 한동안 따르는 제자들과 함께 살았다”

5) 라이마루스

“ 예수와 제자들의 목표라는 책에서 예수님의 정치적 사명의 실패로 낙심한 제자들이 그의 시체를 훔친 것이다. 시체가 다 썩을 때가 50일을 기다렸다가 예수가 제자들에게 나타났다고 거짓으로 꾸몄다”

6) 홀츠만

“요셉이 예수를 자신의 가족 묘지에 장사 지냄으로 곤경에 빠진 나머지 제자들 몰래 예수의 시체를 다른 무덤으로 옮겼다‘

7) D.F. 스트라우스

“마음이 불안한 제자들이 환각을 일으켜 죽은 자로부터 부활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착각 속에 보았다”

8) 에른스트 르낭

“예수의 생애라는 책에서 막달라 마리아의 심각한 정서적 혼란 상태에서 예수님을 본 것처럼 그분의 말을 들을 것처럼 착각했다,

9) 커소프 레이크

“빈부덤을 부활의 교리로 옹호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고 역사적으로 인정하기 불충분하다”

10) 하르낙

“신앙에서 부활 메시지는 영원히 포기해야 한다. 예수의 빈 무덤이나 예수출현은 역사적 증거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신약성경 저자들의 마음과 지성 속에 심겨진 인상 속에 기반을 두고 있다‘

11) 월터 라우센부시, 헨리 반 듀션

“예수에 관한 교리보다 예수의 종교에 초점을 둔 나머지 예수님을 마음 속에 하나님이 내주하는 사람이기에 육체적 부활이나 승천교리는 잘못된다”

12) 하트숀

“예수님의 부활은 객관적 불멸성이 아니고 주관적 불멸성이다. 예수님의 죽음 이후 의식있는 생명을 존재할 수 없다. 그러기에 무덤으로부터 부활은 인정할 수 없다”

13) C. E. 레싱

“신약 성경의 예수의 부활에 관한 이야기는 비록 믿을 만할찌라도 종교적인 절대적 진리에 유효한 기초가 제공하지 못한다”

14) 바르트

“예수님의 빈무덤, 개인적 출현 등의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비역사적 사건이다. 부활은 현대의 과학이나 역사적 탐구에 의해 정당화 될 수 없다. 예수의 죽음은 역사적 사건이나 부활은 역사적 사건이 될 수 없다”

15) 에밀 부르너

“부활은 초역사 또한 종말론적 역사로 더 이상 역사적 사건이 아니다”

16) 디트리히 본훼퍼

“ 부활을 믿는 신앙은 빈 무덤과 같은 역사적 사건과 상관없다. 만일 부활이 역사적으로 확증될 수 있다면 신앙 굳이 필요없다. 부활의 역사성을 확신 할 수 없다”

17) 불트만

“죽은 자로부터의 부활이 포함된 역사적 사실은 절대로 상상할 수 없다. 부활은 과거의 역사적 사건이 아니라 헬레니즘의 제의 신화가 신약 성경에 들어온 것이다. 예수의 부활은 예수에게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일어난 사건이다.”

18) 귄터 보른 캄

“복음서는 기독교 공동체의 신앙의 산물이다. 부활사건 자체가 역사적으로 실존한 것이 아니라 제자들의 부활 신앙에 근거한다”

19) 헤르베르트 브라운

“예수님의 신성과 부활이라는 것은 신약 성경에 사용되고 있는 문자적 의미일 뿐이다.”

20) 오그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인간의 진정한 실존에 대한 탐구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다”

21) 판넨베르크

“부활은 인간의 경험에 유일한 실재를 묘사하기 위한 비유이다”

22) WCC 문서

“종교다원주의, 혼합주의, 그리스도의 유일성 등 부정하는 그들의 사상 안에는 기독론에 대한 부정이 숨겨있다. 그것은 바로 십자가 진리와 부활의 진리를 거부하는 인본주의의 발상이다-필자 평가”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자유주의, 감정주의, 신정통주의, 비신화 신학자들은 성경을 부인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성 부인하거나 초기 기독교 공동체의 신앙적 산물로 매도한다. 지금 부활의 신학적 논쟁의 무의미 및 불필요성을 인지하는 분들이 많다. 왜냐하면 지금을 코로나 펜더믹으로 사느냐 죽느냐하는 극한 상황에 와 있기 때문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을 앞둔 지금 우리의 고민의 우선순위는 무엇일까? 나는 진정한 부활 신앙을 가지고 있는가? 혹여나 코로나 바이러스로 나의 영원한 소망, 부활의 소망, 영생의 소망을 외면하고 있지 않는가?

포스트 코로나 이후의 목회적 전략과 정책이 시대적 요청이며 현실이다. 그러나 기독교 기본진리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에 초석을 두지 않는 모든 기독교 신앙과 목회 현장은 헛되고 헛된 것이며, 사상누각임을 직시하고 기본 교리에 충실한 신앙생활과 목회 현장이 되어야 한다.

정준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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