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December 3, 2024

[정준모 목사 시편강해] “시편 1편”

인기 칼럼

정준모 목사의 시편 강해(1) 시편 1편 –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

서론)

시편의 정문 시편 1편

시편은 이스라엘 공동체의 찬양, 기도, 축제의 신앙 시 모음집이다. 시편은 이스라엘 국가 형성기로부터 바벨론 포로 시대 이후까지의 작품들이다. 시편은 이스라엘 민족과 하나님과 약 800년의 역사적 기간을 포괄하고 있다.

히브리 성경 원문에서 시편은 ‘테힐림’(Tehillim)으로 불린다. 이는 히브리어 동사 ‘빛을 발하다, ‘환호하다’, ‘기뻐하다’의 뜻을 가진 ‘할랄’(hallal)에서 유래되었다.

영어에서 ‘시편’(Psalms)은 라틴어 번역본인 벨게잇의 시편 제목인 ‘Liber Psalmorum’에서 유래되었다. 또한 라틴어 역본의 시편 명칭은 헬라어 역본의 시편 제목인 ‘살모이’(Psalmoi)에서 유래되었다. 이 뜻은 “현악기에 맞추어 불리는 노래”라는 의미이다.

유대인들은 구약성경을 율법(토라), 선지서(느비임), 성문서(케투빔) 등으로 삼분하고, 시편을 ‘케푸빔’의 범주에 포함시켰다.

칼빈은 시편을 ‘영혼의 모든 부분들의 해부학’(An anatomy of all the parts of the soul)이라고 일컬었다. 그 이유는 시편에 거울처럼 인간의 모든 지정의 요소들이 다 담겨있기 때문이다. 시편에 인생의 모든 사랑, 기쁨, 소망, 미움, 고통, 슬픔, 근심, 두려움 등이 다 표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시편 1편은 시편 전체의 서론이다. 건축물의 정문에 해당된다. 시편 1편의 정문을 통해 시편이란 전체의 구조물에 입장하게 된다. 구약 성전을 구조물이라고 할 때, 시편 1편의 정문을 통하여 성전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성전에 들어간 성도들은 탄식, 찬양, 기도 등으로 하나님께 나아간다. 성전 문지기는 의인과 악인을 구별하여 성전 안으로 들어가게 할 것이다. 오직 의인들만 성전에 들어와 감사, 찬양, 간구, 탄식으로 하나님께 경배하고 신령한 교제를 나누게 될 것이다.

시편 1편의 구조는 1-3에서는 의인의 모습, 4-5절에서는 악인의 모습, 6절에서는 의인과 악인의 결말로 구성되어 있다.

시편 1편 6절을 가리켜 ‘시편 1편을 이해하는 열쇠’라고 한다.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이 시편에는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을 대조시키고 있다.

1. 의인의 길

1.1. 소극적 측면에서 의인: 행하지 않는 자

1절에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라고 했다.

히브리어 원문에 1절을 직역하면, “복되도다. 그 사람이여!”라고 되어 있다. 히브리어 “에셰르”(esher)는 여기에서 ‘행복’이나 ‘만족’의 의미를 지닌 복으로 번역되어 있다. “에셰르”(Esher)는 히브리어 아샤르(ashar)에서 파생되었다. 그 어근은 “똑바르다” 또는 “옳다”를 의미이다. 의인은 하나님 앞에 “옳고”, “올바른” 삶을 사는 자이다. 그렇게 의로운 삶을 사는 사람은 “복된 사람, 행복한 사람”이라고 밝히고 있다. “악인의 꾀를 쫓아 걷지 않는 그 사람,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않는 그 사람, 조소꾼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 그 사람이 복되도다”라고 직역할 수 있다.

복되도다(아쉬레)!라는 말은 구약에서 총 44회 나온다. 그중에 26회가 시편에, 8회가 잠언에 나오고, 욥기와 전도서에 각각 1회씩 나온다. 여기서 말하는 복은 동양적, 물질적, 현상적 복과는 전혀 다르다. 이 말은 하나님과의 인격적 교제 안에서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신약 팔복에 나오는 복(마카리오스)는 하나님의 통치에 참여하는 자들의 복된 상태를 의미한다.

영어에서 말하는 “Blessed”는 “최고의 행복” 또는 “궁극적 성취”를 의미한다. 히브리어에서 이 단어는 실제로 복수형으로 되어 있다. 보이스(Bois)는 이것은 축복의 다양성이나 강조성을 의미한다”라고 설명하였다.

스펄전(Spurgeon)은 “본문에서 ‘왕도 복이 있고, 학자도 복이 있고, 부자도 복이 있다’라고 언급하지 않고 그저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복이 역사에 이름이 오르고 명성의 나팔을 울리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가난한 자들, 잊혀진 자들, 무명인들이 얻을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복된 사람 즉, 의인은 세 가지를 “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걷지도 않고 서지도 않고 앉지 않는다”고 했다. 즉 복된 사람은 가서는 안 될 길, 서서는 안 될 곳, 앉아서는 안 될 자리 등이 있다.

이것은 의인들의 지향점, 생각 내용, 행동 사항, 삶의 목표 등에 대한 언급이다. 의인은 악인과 생각하는 것, 행하는 것, 소속 영역이 전혀 다르다는 것이다.

또한 여기서 죄의 점진성을 발견할 수 있다. “걷다가, 따르다가, 앉게 된다” 것이다. 이것은 죄의 진행 과정을 언급하는 것이다.

클라크(Clark)는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죄가 점진적이라는 것이다. 하나의 사악한 성향이나 행위는 다른 성향이나 행위로 이어진다. 나쁜 계획을 세우는 자는 머지않아 악한 행동을 하게 된다. 악한 일에 자신을 버리는 사람은 결국 하나님을 완전히 배도하는 삶을 마감하게 된다.”

의인이 하지 말아야 할 세 가지와
죄의 점진성 – 걷다, 따르다, 앉다

1.1.1. 의인은 악인들의 꾀를 좇지 아니한다.

악인들(레솨임)은 죄인, 오만한 자와 동의어이다. 이것은 5,6절에 나오는 의인(챠디킴)과 대조된다. 악인은 곧 불 경건한 자들이다. 이들은 악한 도모, 계획, 꼬임에 혈안이 되어 있다. 여기에 언급된 “꾀(에차)”는 악인들이 도모하는 책략이나 그들이 도모하는 모임을 말한다. 그러나 의인은 그러한 유혹을 받아 넘어가거나 그대로 따르지 아니한다. 의인이 깨어있다면 다양한 사람, 다양한 방법으로 악한 자의 유혹과 꾐을 분별할 수 있다. 성령님께서 말씀을 통하여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시고 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시고 단호히 거절할 수 있는 결단할 수 있는 용기와 의지를 주신다.

의인은 불경건한 자의 꾀를 분별할 줄 안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많은 경우, 자신에게 당면한 문제에 대하여 조언이나 설명을 듣고 “이것이 경건한 권고인가, 불경건한 권고인가?”라고 분별하지도 못하고 분별할 생각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의인은 불경건한 자의 계획이 얼마나 악한 것이며 그것에 유혹을 받아 자신에 미칠 엄청난 영적, 육적 손실을 분별할 수 있다.

또한, 의인은 분별력이 필요할 때, 그것이 어디에서 온전하고 경건한 권고를 찾을 수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시편에 “주의 증거는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모사니이다”(시 119:24).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우리 인생의 최고의 상담자가 되신다. 또한 경건한 교사, 리더, 상담가는 항상 연약한 자를 세워지고 도와주기 위해 하나님의 진리 말씀에서 그 원리를 찾게 된다.

1.1.2. 의인은 죄인의 길에 서지 않는다.

죄인들(하타임)은 하나님의 표적을 빗 맞히는 사람들이다. 죄인들의 길 곧, 죄인이 행하는 관습, 삶의 방식을 일컫는다. 의인은 죄인이 서 있는 그 길을 안다. 그래서 그 길에 결코 서지 않는다. 길은 방향을 말한다. 의인은 죄인과 같은 방향으로 여행하지 않는다. 의로운 사람은 사람이 적게 다니는 길을 택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길이 바로 축복과 행복, 영생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태복음 7:13-14)라고 말씀하셨다.

또한, 의인은 시편 16편 11절의 말씀에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께는 길이 있다. 그 길은 생명의 길이요 기쁨의 길이요 영원한 즐거움이 넘치는 길이다”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1.1.3. 의인은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한다.

“오만한 자”(레침)은 “비웃다”는 “루츠”에서 온 말로서 “신앙을 비웃는 거만하고 부패한 자들”을 의미한다. 오만한 자는 교만하고 방자하여 “하나님보다 높은 자리에 앉아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일을 비웃고, 비판하고, 비평하기를 일삼는 자이다”

오만한 자는 다른 사람들이 교회 지도자, 교회와 타인에 대하여 비판하고 평가하고 폄하할 때, 그 자리에서 함께 그들과 함께 말을 섞는 자가 되기 십상이다. 인간의 마음에 악한 죄성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자리에 함께 앉아 남의 허물이나 약점을 들추어내면서 노닥거리는 것은 바로 자신이 오만한 자리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기 때문이다.

스펄전(Spurgeon)은 상상 밖에 말을 언급하였다. “만약 어떤 자들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에 대하여 나쁜 말을 할 때에 용감하게 이렇게 외쳐라, 그 나쁜 말을 나에게 쏟아부으라, 여러분들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나는 그를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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