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December 23, 2024

[정준모 목사 시편강해(3)] “시편 2편(1)”

인기 칼럼

정준모 목사의 시편 강해(3) 시편 2편(1) – 의인의 길과 악인의 길

시편 2편은 “제왕시”이면서 “메시아 예언시” 혹은 “찬양시”이다. 시편 1편과 더불어 작자가 미상 시이다. 1편은 복으로 시작되고 2편에서는 복으로 끝마친다. 그래서 한 쌍의 시로 보는 학자도 있다.

시편 전체를 왕궁으로 비유할 경우, 시편 1편을 그 출입구라고 한다면 시편 2편은 그 왕궁의 보좌에 앉으신 메시야를 만나게 된다.

이방 나라들이 다윗 왕국에 대한 음모와 반약으로 통치를 거절하는 것을 비웃으시는 하나님이시다. 언약의 주로 오신 그리스도의 왕국의 우주적 통치를 예언적으로 노래하며 그 분을 경외하며 섬기기를 요청하고 있다.

본 시는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 두 왕국의 종국을 보며 준다. 또한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신분과 영적 싸움의 현장과 삶의 원칙과 우선순위에 대하여 교훈하고 있다.

A. 이방 나라들의 음모와 하나님의 비웃음(1-6절)

1. 반역한 나라들에 대한 탄식(1-3절)

“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3.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표준 새 번역은 “1. 어찌하여 뭇 나라가 a) 공모하며, 어찌하여 뭇 민족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a.70인 역에는 격노하며) 2. 어찌하여 세상의 임금들이 나서고, 어찌하여 통치자들이 음모를 꾸며 주를 거역하고, 기름 부음 받은 분을 거역하면서 이르기를 3. 이 족쇄를 벗어 던지자. 동여맨 이 사슬을 끊어 버리자 하는가?”이다.

1절에 시인은 ‘어찌하여’라고 수사 의문을 통하여 놀람, 의분, 격정을 표출하고 있다. 히브리어 원문에는 “어찌하여”가 일석이조(一夕二鳥, double-duty) 기법으로 1절, 2절에 각각 2번씩 총 4개의 동사에 각각 적용할 만큼 강조하고 있다. 이것은 이방 나라(뭇 나라, 열방, 민족들, 나라들 등으로 다양하게 번역됨)의 이스라엘에 왕에 대한 반역에 대한 통탄과 의문을 제기하는 말이다. ‘어찌하여’는 좌절감을 나타내는 의문사가 아니라 이방 나라들의 반역적 행위에 대해 놀라움과 조소를 나타내는 수사 의문사이다(D. Kidner).

이스라엘 역사를 회고해 볼 때, 뭇 나라들(이방 나라, 민족들, 열방들)이 그동안 예루살렘 왕의 통치를 받으며 그에게 복종하였다. 그러나 새 왕이 등극하면서 여러 속국의 왕들이 음모와 반역을 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하여 ‘어찌하여’ 어리석고 허무한 짓들을 하고 있는가 하며 수사 의문으로 놀라움을 나타내고 있다.

로저손과 맥카이(Rogerson & Mckay)는 “본문에서 언급된 열방은 직접적으로는 이스라엘 지배하에 있었던 이방 나라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보다 넓은 의미에서 볼 때, 이는 하나님의 우주적인 통치에 도전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협하는 모든 종류의 세상 사람들을 가리킨다” 라고 했다.

이 세상의 왕들과 관원들은 서로 꾀하여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을 대적하며 하나님의 통치를 속박으로 여기며 그에게서 벗어나기를 원했다. 악인들은 당을 지어 악을 행하며(롬 2:8),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을 하지만, 그들의 모든 계획은 헛될 것이다.

여기서 ‘기름 부음 받은 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메쉬야’는 ‘하나님께 기름 부음 받은 자’란 의미로 여기서는 이스라엘 왕을 가리킨다. 이스라엘의 왕들(특히, 다윗 계열의 왕들)은 대관식 때 기름 부음을 받았다(왕상 1:45). 이 기름 부음은 하나님의 왕직을 대리하기 위하여 그 자신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구별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를 나타낸다(출 28:41; 3:3; 삼상 10:1; 16:3).

당시 이방 나라들은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의 통치와 체제를 벗어나기 위해 음모를 꾸미고 반역을 꾀하였다. 이것은 종말론적으로 만왕의 왕 되시고 하나님 나라의 통치자이신 메시야에 대한 다스림을 거부하는 세상 나라의 통치자인 악한 권력자, 악한 제도, 악한 영, 악한 무리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본 시는 일차적으로 다윗 왕가의 정통성에 대한 제왕시(royl psalm)이나 긍극적으로는 장차 오실 영광의 왕이신 메시야 예언시(messianic psalm)이다.

다윗 왕가의 정통성을 말하는 제왕시이자

메시야 예언시인 시편 2편

유대의 종교지도자들과 헤롯 왕과 로마 총독 빌라도가 함께 연합하여 하나님의 보내신 메시아를 십자가에 죽게 하였다. 사도 베드로는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동하여 하나님의 기름 부으신 거룩한 종 예수를 거슬러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이 성에 모였나이다”라고 말하였다(행 4:27-28).

‘기름 받은 자’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뜻한다. 구약에서 왕, 선지자, 제사장이 기름 부음을 받았다. 기름 부음의 신학적 의미는 하나님의 선택받음, 직책 임명, 직분 수행에 필요한 성령님의 지혜와 덧입음을 뜻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 메시야로서 왕, 선지자, 제사장 등 3 중직을 수행하는 진정한 왕이요, 선지자요, 제사장이시다.

악한 자들은 하나님의 통치를 부정하고 그의 보내신 메시아를 대항하였지만, 그러나 그들의 계획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뭇 나라들이 하나님께 분노할 이유가 없다. 하나님께 분노하여도 유익이 절대 없다. 오히려 하나님께 대적하는 것은 헛된 일이 될 뿐이다.

이방, 세상 통치자들이 함께 은밀하게 도모하고 음모를 꾸민다. 바벨탑 사건 때부터 인간들은 계속해서 서로 뭉쳐서 하나님을 대적해 왔다. 그들은 두 명 이상의 사람이 연합하여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한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보다 더 낫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였다.

3절에 “우리가…하자”라고 스스로 격려 내지 권고하는 언급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이방 왕들의 음모를 꾸미기 위한 악한 결의를 말한다. 그들은 이스라엘 왕이 부과한 여호와의 율법이나 통치 체제를 “맨 것과 결박” 혹은 “족쇄”와 “사슬”로 보고 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그의 명령을 따르는 것을 자체를 때로는 족쇄와 사슬로 여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도전하는 자유방임적 생각이며 태도이다. 하나님 말씀 가운데 사는 것이 자신을 얽어매고 결박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은 이미 자신의 영혼이 병들었거나 은혜가 소진되어 버린 상태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현대 인본주의, 세속주의, 향락주의가 얼마나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깨뜨리고 성경적 윤리관을 파괴하는가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한다. 인간의 교만의 극치인 현대 자유주의 극치는 곧 인간 스스로 하나님이 되는 엄청난 죄를 범하는 것이다.

2. 하늘에서 비웃으시는 여호와 하나님(4-6절)

“4.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5. 그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표준 새 번역을 다음과 같다. “4. 하늘 보좌에 앉으신 분이 웃으신다. 내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신다. 5. 마침내 주께서 분을 내고, 진노하셔서, 그들에게 호령하시며, 이르시기를 6. 내가 거룩한 산 시온 위에 나의 왕을 세웠다 하신다.”

세상 나라와 민족들과 그들의 왕들과 제왕들의 음모와 반역에 대하여 하늘에 계신 주님께서 정서적, 감정적 반응(4-5절)과 행동적, 정치적 반응(6절)을 보여주고 있다.

4절의 ‘하늘에 계신 자’는 매우 높은 분에 대한 칭호이다. 위엄 가운데 계신 하나님의 초월성을 나타낸다(시123:1). 표준 새 번역에는 ‘하늘 보좌에 앉으신 분’, ‘공동번역에는 “하늘 옥좌에 앉으신 야훼”, 기타 번역에는 ‘하늘에 좌정하신 분’ 등으로 번역하였다.

하나님은 단순히 ‘하늘에 계신 자’(개역 개정) 혹은 ‘하늘에 앉으신 자’(RSV, NASB)가 아니라 ‘하늘 보좌에 좌정하신 자’(the One enthroned in heaven, NIV, NJB, NAB)이시다.

또한, 그분은 ‘주’가 되신다. ’주‘는 히브리어로 ‘아도나이’이다. 그것은 만물을 소유하신 분(8:1), 지극히 탁월하신 주, 만물 위의 주를 나타내는 말이다. 하늘 보좌에 좌정하신 분은 바로 우주의 왕, 만유의 주가 되신다. 이 우주의 왕께서 ‘지상의 왕들’의 악한 도모와 음흉한 음모를 비웃으신다.

“하늘에 계신 분이 웃으실 뿐 아니라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신다”고 하셨다. ‘하나님이 웃으신다’는 표현은 신인동형론적(神人同形論的, anthropomorphic) 표현으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반역 음모를 결국 이루지 못하게 하실 것이라는 의미를 암시하고 있다(37:13:59:8).

이처럼 하늘 보좌에 앉으셔서 전 우주를 통하시는 주권자가 되신 하나님께서 그분과 그분의 통치자들을 반역하는 자들에 대해 웃으실 뿐만 아니라 가소롭게 여기시고 비웃으신다라고 표현했다. 이것은 은연중에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 위에 뛰어나심을 나타내시는 것이다(Kraus).

하나님은 인간들이 자기를 대적하여 음모하는 것을 보시고 웃으시고 비웃으신다. 하나님은 사람의 반대를 두려워하시거나 당황하거나 멈짓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다만 그들의 음모와 도모에 대하여 비웃으실 뿐이다.

하나님은 하늘에 앉아 계시는 분이시기에 웃으신다. 그분은 영광스러운 보좌에 위대한 왕으로 앉아 계신다. 그분의 우주의 통치자로 앉아 계신다. 그분은 인간들처럼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궁금해하면서 하늘 보좌 앞에서 이리저리 서성거리고 당황하고 계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그분의 주권 속에 세상을 통치하기에 완전한 평화와 확신 속에 앉아 계신다.

하나님은 하늘에 앉아 계시기 때문에 웃으신다. 그분의 통치 영역이 세상의 왕좌가 아니다. 그분은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지닌 하늘의 보좌에 앉아 계신다. 하늘에 앉아 통치하시는 하나님께서 이 땅을 두려워할 것이 무엇이겠는가?

보이스(Boise)는 “하나님은 떨지 아니하신다. 그는 광대한 하늘 성벽 뒤에 숨어 적의 수를 세시지 않는다. 그분은 자신의 왕국에 대하여 상대방 적수에 맞대응하기 위하여 충분한 군사력이 있는가 계산하지 않는다. 그는 당황하여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으신다. 그는 이 엄청난 지상의 바보들을 보고 그저 ‘웃기만 하신다’” 라고 적절히 비유적으로 말했다.

모건(Morgan)은 “하나님께서 비웃으시는 이 웃음은 의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의 위로가 된다. 그것은 거룩하신 하나님 능력의 웃음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하나님 사랑의 웃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죄를 지은 인간의 고난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그분의 뜻이 성취되는 것을 막으려는 사람들의 모든 교만한 자랑과 폭력을 비웃으신다”라고 하였다.

여호와께서 모든 역사의 현상에서 악인들의 대적을 비웃으실 것이다. 지난 수 세기에 걸쳐 많은 악인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그분의 왕국을 도전하고 핍박해왔다. 이 적들의 모든 일은 좌절되고 무너질 것이다.

역사적으로 한 예를 살펴볼 때, 기독교를 혹독하게 핍박했던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AD 284-305 재위)가 있었다. 그는 극심하게 기독교를 박해하였다. 그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무자비하게 박해했고 기독교를 말살하려고 계획을 세웠다. 그는 “기독교의 이름이 말살된다”는 문구가 적힌 메달을 만들어 매달라고 명령했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또한 그의 제국 국경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힌 두 개의 기념물을 세웠다.

“디오클레티아누스 조비아누스 막시미아누스 헤라클레우스 카이사르레스 아우구스티(Diocletian Jovian Maximian Herculeus Caesares Augusti)는 로마 제국을 동서로 확장하고 공화국을 파멸로 몰고 간 기독교인의 이름을 말살시킨 공로를 인정한다.”

그는 이처럼 자신의 신상을 만들고 전 지역에 세우고 강제 숭배를 하게 하고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모든 곳에서 금지시켰다.

그러나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죽어서 역사 페이지의 한구석에 달린 한낱 각주처럼 사라졌다. 반면에 그 악한 자가 그처럼 혹독하게 말살하고 박해했던 예수 그리스도의 명성과 영광이 온 땅에 왕성하게 퍼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것은 바로 우주의 왕, 역사의 왕께서 땅의 악한 왕들을 통치는 비웃으시는 것이 아니겠는가?

6절에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고 했다. 여기서 ‘내가’는 히브리 본문에서 강조 어법으로 사용되었다. 다윗 왕조의 왕을 세우신 이는 바로 하나님이심을 특별히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메시아를 거절하고 대적하는 세상의 왕들과 메시야를 세우시는 하나님의 자신과 대조시킨다.

또 ‘나의 왕’이라는 말은 사람들에 의해서나 사람들의 혈통에 따라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특별한 작정과 뜻에 따라 세움을 받은 왕이라는 뜻이다. 메시아는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일을 행하실 왕이시다.

‘내 거룩한 산 시온’은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예루살렘과 다윗 왕조를 모두 하나님께서 세우셨음을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세우신 그곳에 거하신다. 하나님께서 그의 왕 메시아를 그곳에 세우신다는 것은 메시아께서 그곳에 오실 것을 가리킨다. 이것은 신약시대의 메시야 도래와 그분의 통치를 예고하시는 말씀이다.

예수께서는 육체로 그곳에 오셨고 부활하심으로 자신을 주와 그리스도로 확증하셨고(행 2:36), 그의 복음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땅에 전파될 것이며 장차 재림하심으로 온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딤후 4:1).

다음 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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