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캘리포니아에 살았을 때 주변 사람들이 먼저 물어보던, 그 유난히 단맛으로 유명했던 뒷마당의 단감나무, 가을이 깊어가는 계절에 단감을 떠올리시는 성도님의 마음을 이해합니다. 단감은 단순한 과일이 아니라, 기다림과 성숙, 그리고 나눔의 기쁨을 상징하는 영적인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신앙생활도 이 단감의 숙성 과정과 같습니다. 우리가 주님 안에서 ‘잘 익은 단감’과 같은 신앙인이 된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모든 감이 처음부터 단맛을 품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풋감은 혀를 마비시킬 듯한 떫은 맛, 곧 ‘탄닌(Tannin)’ 성분을 가득 안고 있습니다. 이 떫은 맛은 감이 자신을 보호하려는 생존의 방식과도 같습니다. 오직 충분한 시간과 햇볕, 그리고 때로는 인위적인 숙성 과정을 거쳐야만 이 떫은 맛은 사라지고 달콤한 과당으로 변합니다.
우리의 신앙에도 이 ‘떫은 맛’이 있습니다. 이 떫은 맛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햇살’ 아래서만 사라집니다. 우리는 고난의 과정을 통해 자신의 떫은 맛이 얼마나 강했는지 깨닫고, 주님의 은혜를 통해 그 쓴 맛을 사랑과 용서의 단맛으로 바꿔나갈 용기를 얻습니다. 은혜 안에서 진정으로 익은 신앙은 타인에 대한 정죄의 칼날을 내려놓고, 그저 넉넉한 인내와 용서의 향기를 풍깁니다.
성도님의 뒷마당 단감나무 열매가 유난히 유명했던 것은, 그 단맛이 주변 이웃들에게 ‘증명’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품종의 감이라도 혼자만 따 먹으면 그 열매의 존재 가치는 한정됩니다. 진정한 단맛은 나누어 줄 때 비로소 그 진가를 발휘하고 공동체를 풍요롭게 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성령의 열매를 맺을 때, 그 달콤함은 필연적으로 밖으로 드러난다고 가르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갈 5:22-23)
우리가 잘 익은 단감과 같은 신앙인이 된다면, 우리의 삶은 자연스럽게 이웃에게 ‘물음’을 던지게 합니다.
“저 사람에게는 어떤 특별한 ‘단맛’이 있기에, 저런 어려운 상황에서도 저렇게 평온할까?”
“저 사람의 말에는 어떤 ‘향기’가 있기에, 듣는 사람의 마음이 저렇게 부드러워질까?”
잘 익은 단감 신앙은 억지로 전도지를 나누어 주는 것이 아니라, 나의 삶의 태도와 인격 자체가 복음의 단맛이 되어 주변 사람들을 초청하는 강력한 복음 전도의 증거가 됩니다. 우리의 삶 자체가 단감나무가 되어, 믿지 않는 이웃들이 먼저 다가와 그 달콤함을 나누어 달라고 요청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단감은 수확 시기가 매우 중요합니다. 너무 일찍 따면 떫고, 너무 늦게 따면 무르거나 상하여 상품성을 잃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잘 익은 신앙’ 역시 하나님의 시간표에 맞춰 최적의 단맛을 내는 상태입니다. 우리는 조급하게 ‘결과’를 내려고 하거나, 스스로를 완성하려 애쓰기보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오늘 하루하루를 성실하게 숙성시키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성숙은 결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매일 그리스도의 햇살(말씀과 은혜)을 쬐고, 때로는 비, 바람 맞으면 모두가 되시길 바라며 올 가을, 우리 모두가 뒷마당의 단감나무처럼 유난히 단맛으로 유명하여, 주변 이웃에게 복음의 향기를 나누어주는 ‘잘 익은 신앙인’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