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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한 몰골의 엄마와 함께 다니는 것을 끔찍이 싫어하는 십대 소녀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엄마가 소녀를 데리고 슈퍼마켓에 갔습니다. 물건을 들고 계산대 앞에서 돈을 내밀자 흉한 팔을 본 점원이 기겁을 했습니다. 나중에 소녀는 엄마 때문에 창피해 죽는 줄 알았다며 엉엉 울었습니다.
그 말에 상처를 받은 엄마는 한 시간쯤 기다렸다가 딸의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고는 여태껏 꺼내지 않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네가 아기였을 때 한 밤중에 우리 집에 불이 났단다. 특히 네 방은 완전히 지옥이었어. 나는 현관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지만, 혼자 사느니 차라리 너와 함께 죽기로 마음을 먹었지. 그래서 불길을 뚫고 들어가 너를 품에 안았어. 밖으로 나올 때는 두 팔의 고통이 극에 달했어. 하지만 상처하나 없이 멀쩡한 너를 본 순간, 모든 고통이 눈 녹듯 사라져 버렸어” 놀란 소녀는 새로운 눈으로 엄마를 보았습니다. 소녀는 부끄러움과 감사가 뒤섞인 눈물을 흘리며 엄마의 손과 팔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우리도 악과 고통의 문제를 새로운 눈으로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하나님이 수많은 인간의 탄식을 성경에 기록하신 것은 우리가 얼마든지 부르짖어도 좋다는 뜻입니다. 단, 언제라도 그 분의 응답에 귀를 기울일 자세는 되어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항상 기뻐하라”고 하십니다. 항상 좋은 일만 일어나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나요? 더구나 기쁘고 슬픈 게 내 마음대로 되는 문제도 아닌데 말입니다. 사도 바울이 바로 그러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빌립보 감옥에 갇혀있을 때에도 불평과 탄식이 아니라, 오히려 기쁨의 본을 보였습니다(행 16:19∼25). 보통사람 같으면 왜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감옥에 갇혀 이 고생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평하고 원망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바울은 불평이 아니라 감사로, 슬픔이 아니라 기쁨으로 감옥생활을 했습니다. 또한 바울이 감옥에 갇히자 빌립보 교인들은 박해의 위협에 대해 걱정했지만, 이에 대해 바울은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그것은 어떠한 상황에 처하든지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 상황을 통해서 역사하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감정조절을 잘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기쁨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하며 바라보라는 뜻입니다. 누구에게나 삶의 염려거리가 닥쳐옵니다. 그때마다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그 상황을 이기라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하나님께 내어맡기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주님을 바라볼 때 그리고 십자가를 바라볼 때 모든 인간적인 이해를 초월하여 훨씬 더 값지고 좋은 결과를 우리에게 가져다주십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