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년 관련 총회 결의 뒤집은 실행위
보도자료와 회의록, 해석 충돌 보여
‘정년 논란’ 넘어 의사결정 구조 문제

대한예수교장로회 백석(대표총회장 장종현, 이하 예장백석)이 총회 본회의에서 만장일치로 결의한 ‘사실상 정년 폐지’를 불과 보름 만에 실행위원회가 ‘원인무효’로 뒤집었다. 장로교 정치에서 최고의결기구인 총회의 결정을 하위 집행기구가 무효화한 것이다.
예장백석은 지난 9월 30일 제48-1차 실행위원회를 열고 ‘75세 정년 유지’를 확정하며 제48차 정기총회에서 의결된 개정안을 무효로 처리했다고 1일 밝혔다. 실행위원회는 안건 상정과 표결 과정에서 총대들이 충분히 숙지하지 못한 절차적 하자가 있었고, 본래 취지와 달리 ‘정년제 폐지’로 확대 해석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고 밝혔다.
앞서 9월 15~17일 천안 백석대학교에서 열린 제48차 정기총회에서는 헌법정치 제27조와 시행세칙 제20조 개정안이 본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개정안은 담임목사의 경우 교회의 요청이 있으면 정년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는 단서조항을 신설했고, 세칙에서는 ‘미자립교회’에 한정된 정년 연장 규정을 ‘미자립교회 등’으로 넓혀 사실상 모든 교회에 적용될 수 있도록 했다.
이번 실행위원회에서는 해당 헌의안을 발의한 충남노회 소속 이승수 부총회장이 직접 나서 원인무효를 동의했다. 그는 “총대들이 충분히 숙지하지 못한 채 안건이 일괄 처리되었고, 매우 중요한 사안임에도 심도 깊은 토론이 없었다”며 절차적 하자를 인정했다. 이어 “헌의 당시 의도는 오지나 지방교회가 후임자를 구하기 어려운 현실을 돕기 위한 것이었으나, 법안이 확대 해석되면서 정년 폐지로 비춰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예장백석이 내놓은 보도자료와 실제 회의록은 표현에서 차이를 보인다. 보도자료는 “헌법 사항임에도 불구하고 표결 없이 총대들의 ‘허락’으로 통과됐다”고 밝히며 절차적 하자를 강조했지만, 회의록에는 “만장일치로 허락되다”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장로교 정치에서 ‘허락되다’는 의장이 가부를 물은 뒤 표결이 이루어진 것으로 해석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결국 사후 해명 과정에서 교단 스스로 해석의 충돌을 드러낸 셈이다. 더 나아가 헌법 제113조가 규정한 헌법 개정 절차(수개정위원회 상정, 총회 재석 3분의 2 결의, 노회 수의)가 이번 과정에서 이행되지 않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교단 지도부의 핵심 인사가 헌법 개정의 파급력을 전혀 몰랐을 리 없지 않느냐”는 시각도 있다. 단순한 해프닝으로 치부하기보다, 예장백석 총회가 중대한 안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검토와 토론이 충분했느냐는 문제 제기가 뒤따른다.
총회의 권위와 교단 운영의 신뢰도는 의사결정 과정의 정밀성과 책임성에서 나온다. 더구나 총회 본회의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된 결의 사항을 실행위원회가 무효로 결정한 전례는 교단 정치 구조와 절차적 정당성에 대한 새로운 논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결국 이번 사안은 단순히 ‘정년제 폐지냐 유지냐’의 선택을 넘어, 교단이 어떤 의사결정 구조를 갖추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지방·농어촌 교회의 후임난을 해결하려는 취지가 분명히 있었지만, “정년 완화”라는 수단이 자칫 교회 지도자의 장기 시무로 연결될 수 있다는 우려도 병존한다.
예장백석은 1만여 교회의 교세를 지닌 대형 교단이지만, 이번 논란은 교단의 정책 결정 과정에 혼선을 드러냈다. 교단 안팎에서는 “정년제 논의가 다시 불붙을 수 있다”며, 법적 타당성과 사회적 영향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교단의 미래를 위한 합리적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기독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