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November 8, 2024

[역사기획/ 낙도로 간 선교사들] (5)완도의 뚜벅이 선교사 오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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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희 목사(낙도선교회 대표)

조선 사람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격의 없이 친구가 되어준 ‘오목사’

조약도에 들어갔다. 117년 된 교회가 눈앞에 들어왔다. 약산제일교회이다. 완도 조약도의 옛 이름은 약산도이다. 조약도의 산에서 나오는 129종의 풀들이 약초가 된다하여 약산도(藥山島)라 불렀고, 그 풀을 먹고 자란 흑염소가 보약이 된다고 하여 약산 흑염소는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완도 약산제일교회(옛 관산리교회)는 1904년 오웬 선교사(Clement Carrington Owen· 1867~1952)의 전도인 노학구에 의해 복음이 처음 전파되고, 1905년 오웬이 직접 섬에 들어가 돌보면서 정식교회로 세워졌다. 당시 당회 기록이 다음과 같이 남아 있다.

“1904년 10월 16일 본도인 정만일씨가 전도인 노학구씨를 청하여 처음으로 예수의 십자가를 전파하다. 1905년 6월 8일 미국 선교사 오목사(오웬)가 예수의 복음을 전하므로 믿기로 작정한 사람 사오명이 있어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지라.”(약산제일교회 교회력)

오웬 선교사가 사역한 완도의 선교루트를 표시한 지도.

100년 전 뿌린 씨앗 지금도 결실

오늘날 약산제일교회 옛 예배당 모습은 사라지고, 새로 지은 예배당 건물과 100주년 기념비가 남아 있다. 현재 약산제일교회를 담임하는 박형서 목사가 이런 말을 들려준다. “110년 전에 미국 선교사들이 이곳까지 와 복음을 전하고 섬교회 담임을 했다는 것이 이해가 됩니까? 사람들이 믿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가끔 칠십, 팔십 먹은 어른들이 예수 믿겠다고 교회로 옵니다. 그들은 자신이 60~70년 전에 주일학교를 다녔다는 고백을 합니다. 선교사들이 뿌린 복음이 여전히 지속적으로 열매 맺는다는 것을 노인들이 다시 교회 등록할 때마다 확인하게 됩니다.”

약산제일교회 100주년 기념비에는 낯익은 선교사들의 한국식 이름이 있다. 류서백, 맹현리, 조하파 등등. 오웬 이후에도 이 선교사들은 지속적으로 조약도를 중심으로 일대의 섬들에 배를 타고 찾아가 복음을 전했다.(조하파, ‘한국에서의 섬지역전도’, <더 미셔너리> 1922년 1월) 이후 약산제일교회는 꾸준히 성장해 고금도에 분리개척을 했고, 이웃의 금일도 생일도 등에도 복음을 전하여 교회가 생겨났다.

완도 일대 섬들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운 오웬 선교사.

오웬은 장흥에서 복음을 전하는 중에 약산도로 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강진 마량항에서 약산도로 건너가 복음을 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계속해서 1906년에는 다시 마량항에서 배를 타고 완도 원동항으로 이동해, 주변의 신학리에 복음을 전하여 신학교회를 설립했다. 신학교회 입구에는 작은 전시함이 있는데, 그 안에는 <생명록>이라 부르는 당시 교인들의 교적부가 전시되어 있다. 오웬이 뿌린 복음의 씨앗들이 작은 섬교회 명부 안에 적혀있는 것이다

‘나를 오목사로 부르시오’

오웬은 1897년 조선 선교사로 임명받고, 1898년 11월 5일에 입국했다. 목포에서 선교를 하다 병환이 심해져 미국으로 갔다가, 1904년 다시 조선으로 들어와 광주에서 사역했다. 그의 선교지역은 화순, 보성, 장흥, 순천 등 13개 군이었다. 진도, 완도, 해남 등의 섬으로도 들어갔다.

광주 양림동 선교사묘역에 마련된 오웬 선교사의 묘소. 묘비명이 ‘오목사’로 되어있다.

오웬의 순례선교는 한 번 나가면 보통 한 달씩이나 걸렸다. 그래서 그의 자녀들은 오웬이 순례선교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누군지 몰라보기도 했다고 전한다. 때로는 말을 타고, 때로는 배를 타고, 때로는 뚜벅이처럼 걸어서 전남 일대를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순례전도를 통해 오웬 선교사는 200명 넘는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고, 430명에게 학습(교리교육)을 실시했다. 그의 순례전도는 전남 일대의 복음화를 가속시켰다.

그러던 중 1909년 3월~4월 초에 광주에서 남쪽으로 280리 떨어진 장흥지역에서 순례전도를 하다가 급성 폐렴에 걸렸다. 급히 광주로 옮겼으나 결국 순교하였다. 그의 나이 마흔 둘이었다. 아내의 복중에는 한 달 뒤에 태어날 아이가 있었다.

오웬 선교사의 무덤을 광주 양림동 호남신학교 경내의 외국인선교사 묘역에서 만났다. 묘비에는 한문으로 ‘오목사’라고 쓰여 있었다. 본래 오웬의 한국식 이름은 오기원(혹은 오원)이다.

그런데 오웬이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양반에게만 이름이 있고 평민이나 천민들에게는 이름이 없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웬은 평민들과 친구가 되고자 자신의 이름과 ‘님’이라는 존칭을 지우고 그냥 ‘오목사’라 부르게 하였다. 그리고 죽어서도 ‘오목사’로 불리기를 원했다. 그래서 묘비명이 ‘오목사’라고 적혀있는 것이다.

신학교회의 &lt;생명록&gt;을 살펴보면 오웬이 뿌린 복음의 씨앗들이 지금까지 열매 맺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선교사의 죽음 그리고 애양원

한편 오웬 선교사가 장흥에서 급성폐렴으로 광주로 옮겨지자, 동역자 윌슨 선교사(Robert M. Wilson)는 목포에 있는 의료선교사 포사이드(William H.Forsythe)에게 긴급히 도와줄 것을 요청했다.

전갈을 받은 포사이드는 나주까지 배를 타고 와서, 다시 말을 타고 광주로 향했다. 서둘러 가던 길에 포사이드는 한 여인이 길가에 엎드려져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말에서 내려 그 여인을 살펴보니 한센인(나병환자)이었다. 아직 숨이 붙어있는 것을 확인하고, 그는 여인을 말에 태운 채 자신은 걸어서 광주까지 간다. 그 사이 오웬 선교사는 죽음을 맞이한다.

포사이드는 광주제중원에 도착해 한센인 여성을 눕혀 치료하고자 하였으나, 조선인 환자들의 반대로 할 수 없이 그 여인을 다시 가마에 태워 봉선동으로 옮긴다. 생전에 한센인 치료에 많은 관심을 가졌던 오웬의 마음을 알고 있었기에, 그의 아내는 남편을 잃은 슬픔을 뒤로 한 채 한센인 여성을 위해 오웬의 침대까지 내어주며 치료를 돕는다.

오웬 선교사가 세운 약산제일교회의 100주년 기념비.

이 사건은 수많은 선교사들과 조선인들을 감동시킨다. 특히 오방 최흥종은 한센인 치료를 위해 자신의 땅을 기부했고, 이를 계기로 1911년 광주나병원이 문을 연다. 이 병원은 훗날 여수로 옮겨 애양원이 된다.

병상이 없자 나환자치료에 관심을 가진 오웬의 생전의 삶을 안 그의 부인은 남편을 잃은 슬픔을 뒤로 한 채 오웬의 침대를 내주며 그 여인을 치료하도록 했다. 포사이드의 나환자를 돌아본 사랑은 선교사들과 조선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오방 최흥종의 땅의 기부로 1911년 광주 나병원이 생긴다. 광주나병원은 나중에 여수로 옮겨 여수 애양원이 된다. 오웬의 마지막 순례여정을 하나님은 한센인들을 향한 새로운 복음순례의 출발점으로 삼으셨던 것이다.

오웬이 숨진 후 그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된 오웬기념각.

존경받을 그리스도인 가문

오웬의 소천 후 광주 양림동에는 1914년 오웬기념각이 세워졌다. 미국남장로교 광주선교부에서 사역하면서 오웬은 많은 사람들에게 성경을 가르칠 강당의 필요성을 느껴, 친척과 지인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편지를 보낸 바 있었다. 부고를 전해 듣고 나서 오웬의 할아버지와 그의 친척들이 생전에 오웬이 부탁했던 내용을 떠올리며 사재를 털었고, 그 결과 세워진 강당이 바로 오웬기념각이다.

기념각 정문 위에는 오웬 선교사의 할아버지인 윌리엄 L. 오웬과 오웬 선교사의 이름이 들어 있는 기념명패가 새겨져있다. 오웬은 일찍 아버지를 여의어, 할아버지로부터 신앙 지도를 받고 자랐다. 오웬의 할아버지는 손자의 무덤을 찾아 광주까지 방문하고, 그의 마지막 순례여행을 축복했다. 서서평(Elizabeth J. Shepping) 선교사가 오웬기념각에서 열었던 이일성경학교는 오늘날 한일장신대학교로 성장했다.

필자는 이 기념명패를 보면서 오웬이라는 손자를 땅 끝 한국에 보내고, 그 시신을 광주에 묻은 할아버지의 신앙과 사랑이 느껴졌다. 하나님께서 그 외아들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보내주신 것처럼, 오웬 가문도 귀한 손자를 한국에 선물로 내주었다.

비 내리는 오웬기념각 앞에 서서, 우리는 과연 존경할 만한 그리스도인 가문을 가졌는지 물었다. 존경할만한 그리스도인 가문이란 성공한 가문이 아니라, 땅끝을 향하여 끊임없이 순례하며 전도하는 가문이다. 땅끝을 품은 그리스도인 가문이 그립다. 명문가란 땅끝을 섬기는 가문이다.

기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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