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December 22, 2024

[손성호 박사 칼럼] 생명의 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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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성호 박사

생명의 떡

우리는 예수님은 과연 누구이신지를 보여주는 다섯 번째 표적인 5,000명을 먹이신 사건을 살펴보자. 이 4 복음서 모두에 기록되어 있는 유일한 사건으로 눈을 돌리자. 모든 복음서 저자들은 이 사건을 예수님이 행하신 최고의 사건으로 취급하고 있다. 여기에 복음의 핵심이 숨겨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Dr. R. C, Sproul(제 Reformed 신학교 교수였던)은 요한복음에서 가장 중요한 chapter라고 말한다.

요한복음 6장에 기록된 5,000명 먹이신 사건은 몇 가지 특징을 보여준다. 이 사건은 유월절이 다가올 때 일어났다. 유월절은 유대인 3대 절기 중에 가장 중요한 절기로서, 본 장의 역사적 배경을 보여준다. 유월절을 지키면서,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메시야를 보내어 해방을 주실 것이라는 기대와 그 메시야는 모세처럼 하늘로부터 만나를 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미드라쉬). 이런 배경 때문에 배불리 먹은 유대인들은 왜 열광적으로 예수님을 임금[메시야]으로 삼으려 했는지를 알 수 있다.

본 장에는 요한복음에서만 보여주는 Εγω ειμι[에고에미라고 읽음)라는 7개 중 첫 번째 경우가 나온다. 곧 ‘생명의 떡’(35절, 48절) Ἐγώ (“I) εἰμι (am) ὁ (the) ἄρτος (bread) τῆς (of) ζωῆς (life)이다. Εγω ειμι는 하나님의 이름인 ‘여호와’와 같은 표현이다(출 3:25). ‘여호와’란 뜻은 ‘나는 나다’ I am who I am으로 그 뜻은 나는 너희 선조, 아브라함에게 언약했던 과거의 신이 아니고, 현재도 변함없이 그 언약을 지키는 신이라는 뜻이 있을 뿐 아니라, 유대인 랍비, Rasi는 I shall be where I shall be (나는 있어야 할 곳에 있는 신)을 의미하는 것으로 고통당하는 이스라엘과 함께하실 신으로 말씀하신 것이라고 말한다.

풍랑을 만나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예수님은 겁에 질린 제자들에게 오셔서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실 때도 Εγω ειμι 라고 하셨다. 사실 헬라어 동사는 인칭을 포함하고 있어서 ειμι 만으로 ‘나다’라는 뜻을 가지나 ‘나는’Εγω를 첨가하면 주어를 더욱 강조해서 ‘나라니까, 왜 두려워하나?’는 뜻이 된다. 요한복음에서는 7번의 Εγω ειμι 이외에 16번이 더 쓰이고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20절)이다. 예수님은 ‘나야 나’라는 일인칭 주어를 강조하기 위해서 Εγω ειμι 라는 형식을 사용하셨을까? 아니라고 본다.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신 것은 자신의 피로 언약한 자신의 제자들에게 나는 언약의 하나님이고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는 신으로 너희와 함께 하는 신이니,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뜻이다. 여기서도 요한은 신적인 예수님을 보여주고 있다.

예수님은 ‘생명의 떡’을 여러 가지로 다른 표현을 통하여 더 자세하게 표현하신다.

(1) 참떡(32절) τὸν ἄρτον (bread) …τὸν ἀληθινόν (true). 모세가 내려준(사실은 하나님이 주신) 만나는 썩을 양식이다(27절). 그러나 예수님은 진짜 ‘결코 주리지 아니할’ 떡이시다. 반복해서 먹을 필요가 없다. 마치 수가성 여인에게 ‘다시 목마르지 않은 생수’처럼.

(2) 하나님의 떡(33절), ἄρτος (bread) τοῦ (of) Θεο. 이 떡은 하나님이 직접 주시는 떡이다. 만나는 모세라는 중개자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하나님의 떡은 하나님이 직접 예수님을 떡으로 주시는 것이다.

(3) 하늘에서 내려오는 떡(50절). ὁ (the) ἄρτος (bread) ὁ ἐκ (out) τοῦ (of) οὐρανοῦ (heaven)

καταβαίνων (coming down). 이 떡의 출처는 ‘하늘에서’ 혹은 ‘하늘로부터’이다(32, 33, 38, 41, 51, 58). 여기서 주목할 것은 요한의 ‘생명의 양식’의 출처에 대단히 관심을 가지고 있다. 예수님의 존재 근원지가 하늘이라는 것이다. 요 1:1에서 밝혔듯이, 태초로부터 존재하신 분, 하나님과 함께하신 분, 그리고 하나님이신 분이시다.

(4) 살아있는 떡(51절), (the) ἄρτος (bread) ὁ ζῶν (living,). 음식에도 죽은 음식이 있고, 살아있는 음식이 있다. 살아있는 떡이기 때문에 영생을 주는 떡이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어있는 떡이 아니라, 부활하여 살아있는 떡으로서 그를 믿는 자에게도 죽음에서 일으켜(부활시켜) 영원히 살게 하시는 떡이다.

위에서 말한 떡이라면 누가 마다하겠는가? 우리는 이런 귀한 떡을 받아먹은 것이다. 아멘!!!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무리의 반응은 무엇인가? 두 가지 불신이다. 첫째는 떡의 출처에 관한 불신이고, 어떻게 이 떡(그의 몸)을 먹느냐에 대한 불신이다.

[요 6:42] 이르되 이는 요셉의 아들 예수가 아니냐 그 부모를 우리가 아는데 자기가 지금 어찌하여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느냐

[요 6:52]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서로 다투어 이르되 이 사람이 어찌 능히 자기 살을 우리에게 주어 먹게 하겠느냐

‘나의 살을 먹는다’는 것은 그를 믿는 것이라고 누누이 말씀하셨다(29, 36, 40, 47). 그러나 그들을 믿지 않았다. 예수님께서 제대로 한[one] 말씀 하셨다가 15,000명(여자, 어린이 포함)의 ‘제자들’을 잃고 말았다.

[요 6:66]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아뿔싸, 예수님의 사역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나? 아니다. 예수님은 인간의 마음을 아시고 계셨고, 누가 자기의 양 떼 임을 아셨다.

[요 6: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요 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요한복음 10장에서도 더 상세히 말씀하신다. [요 10:14-15]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내] (핀자의 첨가)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유대인 중에서뿐 아니라, 이방인 중에서도 내 양들이 몰려와 같은 무리가 될 것을 말씀하신다.

[요 10: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그리하여 우리 같은 이방인들에게도 이런 특권이 주어졌다. 할렐루야!!!

[벧전 2:9]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 필자 손성호 박사는 총신대학 종교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총신신학대학원(M. Div), 리폼드신학대학원(MRE), 사우스웨스턴침례신학대학원에서 기독교교육학석사(MRE)및 철학박사(기독교 교육 전공)를 취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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