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November 21, 2024

서구식 모델 벗어나…“현지인의, 현지인을 위한, 현지인에 의한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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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ala, 세계 기독교 시대의 도래 알리고 ‘성령의 일하심’ 강조

알게 모르게 선교는 ‘비싼’ 사역으로 인식돼왔다. 바다 건너에서 날아오는 선교 편지에는 예배당을 건축했다거나 선교 센터를 지어야 한다는 굵직한 소식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크게 이상함을 느끼지는 않았다. 100년 이상, 혹은 그에 근접한 역사를 자랑하는 우리나라의 교회와 학교, 기관들 역시 서양 선교사들의 손에 의해 세워졌기 때문이다.

지난 1~3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Coala 2차 모임에 참석한 선교 지도자들이 결의문에 서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제 사정이 달라졌다. 20세기까지 세계 선교를 주도했던 서구교회에서는 더 이상 새로운 선교사가 이전만큼 배출되지 않는다. 그 빈틈은 같은 기간 기독교인의 수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비서구권 교회의 헌신에 의해 채워졌다. 아프리카와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차이가 있다면 서구 국가들의 경제력에 미치지 못하는 ‘다수세계’(Majority World)의 선교사들은 예배당과 병원과 학교를 짓는, 이른바 ‘돈에 의한 선교 모델’을 따라할 수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돈이 없으니 우리는 선교를 할 수 없다며 손을 놓고 그저 방관하며 기다려야 할까. 결코 그럴 수 없다. 아니, 그래서도 안 된다. 애당초 선교는 ‘돈’으로 하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선교의 기초를 놓은 초대교회 성도들은 돈이 많지도, 권력을 쥐지도 않았다. 오히려 핍박과 멸시와 천대 가운데서도 담대히 복음의 진리를 나타냈다.

선교는 돈으로 하는 사역이 아님을 알았다지만 여전히 막연하다. ‘서구식 선교 모델’에 익숙해진 우리는 어떻게 재정이 넉넉지 않아도 선교할 수 있는지 방법을 아직 알지 못한다. 지난 1~3일 태국 방콕에서 모인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교회의 선교 운동 ‘Coala’(Christ of Asia, Africa & Latin America)는 바로 그 길을 찾기 위해 모였다. 2박 3일에 걸친 열띤 토론 끝에 탄생한 결의문에서 비서구권 교회가 걸어야 할 선교의 길을 엿볼 수 있었다.

세계선교의 무게중심은? : 비서구권 교회의 손에
“우리는 서구에서 파송되는 타문화 선교사의 수가 상대적으로 감소하는 것을 목격했으며 그 격차는 점점 더 다수세계에서 파송된 선교사들에 의해 채워지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과거 ‘선교지’였던 일부 국가들은 이제는 점점 ‘파송국가’로 인식이 전환되고 있습니다.”

결의문은 오늘날 세계 선교 실태에 대한 명확한 인식에서부터 출발한다. 현재 세계 기독교가 처한 상황을 찬찬히 들여다보자. 교회의 중심은 서구에서 비서구, 즉 다수세계로 옮겨졌다. 이제는 전 세계 기독교인의 3분의 2 이상이 다수세계에 거주한다.

선교사 파송 역시 마찬가지다. 교인이 줄어드는데 선교사 파송만 늘어날 리는 없다. 서구 선교사의 수는 점점 줄어들었고 그 빈자리는 ‘다수세계’가 파송한 선교사들에 의해 채워졌다. 상황이 역전돼 선교 대상국이었던 곳이 이제는 선교 파송국이 됐다. 우리가 속한 한국교회가 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가장 대표적인 예다.

이때 떠오른 키워드가 바로 ‘다중심적 선교’다. 다중심적 선교는 오는 9월 한국에서 열리는 제4차 로잔대회에 역시도 주목하고 있는 주제다. 낯선 용어지만 풀어보면 그리 어렵지 않다. 서구에서 비서구로 향하던 선교의 흐름이 ‘모든 곳에서 모든 곳으로’ 향하는 선교로 바뀌었다는 얘기다. 즉 서구 교회뿐만이 아닌 모든 세계 교회가 선교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곧 ‘다중심적 선교’다.

2. 선교는 무엇으로 하는가? : 성령의 능력으로 한다
“우리는 파송된 선교사들이 성령의 인도하심과 그분의 능력을 따라야 함을 확신합니다. 선교를 가능하게 하고 열매를 맺게 하는 것은 성령의 능력입니다.”

Coala 2차 모임에서 키노트 스피치를 맡은 화융 감독은 서구 교회가 이룬 선교적 성과에 존경과 감사를 표하면서도 서구식 선교가 낳은 부작용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라틴 아메리카의 신학자 사무엘 에스코바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20세기 서구교회의 선교는 한마디로 ‘경영학적 선교’다. 데이터를 기반으로 선교지 상황을 분석해 선교사를 철저히 훈련했고 계획을 세워 체계적으로 상황과 인력을 관리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문제 될 것이 전혀 없어 보인다. 다만 문제는 기술 과학적 접근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초자연적으로 섭리하시는 성령의 일하심을 간과해버렸다는 것이다.

때문에 이번 결의문은 선교사라면 성령의 인도하심과 그분의 능력에 의존해야 함을 단호하게 선언한다. 특히 사도행전 속 사도들이 보여준 모범에 주목하면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지시에 따르라고 권고하고 있다. 이를 돈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성령의 능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고 오해한다면 곤란하다. 재정의 유무와 무관하게 원래 선교는 성령의 능력에 의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3. 어떤 선교사가 될 것인가? : 산모가 아닌 조산자

“선교사들은 항상 섬기는 마음과 태도로 나아가야 하며 지역 교회 지도자들과 원주민 동역자들을 향한 겸손과 존경심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 선교사는 그들 자신을 산모가 아닌 조산자(산파)로 여겨야 합니다.”

핵심은 주도권이다. 결의문에서는 다소 예민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선교사 본인이 주도하는 사역 모델을 철저히 경계한다. ‘서구식 선교’의 가장 큰 문제점과 그로 인한 부작용 중 하나가 ‘선교사에 의해 주도되는 사역’이라고 본 것이다.

결의문이 정의하는 선교의 목표는 ‘자치, 자립, 자전, 자신학이 가능한 토착 교회를 세우는 것’이다. 선교사 자신이나 파송하는 단체가 전면에 나서서는 현지 교회가 성장할 수 없다. 당장은 선교사와 파송교회의 자산에 의해 기둥이 튼튼해 보이겠지만 결국 선교사는 떠나야 할 이들이고 그곳에 남아 교회를 지켜야 하는 것은 현지인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의문은 가능한 현지의 기존 교단이나 교회의 일부가 되어 협력할 것을 권고한다. 이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동반자 선교’와도 맥이 닿아 있다. 가장 효과적인 선교 전략은 그곳의 문화와 언어를 가장 잘 이해하는 현지인과 현지 교회에 의한 선교이기에 현지 교회가 잘 성장하고 자리 잡도록 돕는 것이 결국 선교사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4. 어떻게 선교할 것인가? : 돈에 의한 선교를 지양한다

“우리는 선교사와 사역자들에게 현지 평균을 웃도는 생활 수준을 제공하거나, 지역 교회가 장기적으로 유지하기 어려운 값비싼 프로젝트를 시작하는 모델을 지양해야 합니다.”

돈은 양날의 검이다. 돈에 의한 선교를 지양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지만 돈이 아예 들지 않는 선교를 상상하기는 힘들다. 때로는 돈이 큰 축복을 가져올 수도 있다. 다만 돈에 의존한 사역의 부작용은 장기간에 걸쳐 현지 교회에 상흔을 남긴다. ‘돈에 의한 선교의 위험성’을 반복해서 경고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는 ‘현지 교회가 주도권을 갖는 선교’의 중요성과도 연결된다. 돈이 많이 드는 프로젝트는 선교사가 현지에 상주할 때만 유지될 뿐이다. 선교사가 철수하고 나면 프로젝트 유지의 부담은 오롯이 현지 교회에 전가된다. 그렇기에 선교 사역은 애당초 기획부터 현지 교회의 눈높이에 맞춰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이뤄져야 한다고 결의문은 강조한다.

5. 누구와 협력할 것인가? : 모든 교회, 모든 성도와

“다중심적 선교 시대에 우리는 모든 곳의 모든 교회, 서구와 다수세계, 다수세계와 모든 교회 사이에서 진정한 파트너십이 발전해야 한다고 확신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자원을 하나로 융합해 세계 선교를 위한 강력한 시너지 효과로 전환하는 것이 우리 앞에 놓인 과제입니다.”

Coala 모임과 이번 결의문의 의도를 서구 교회를 비난하고 배척하려는 것으로 생각한다면 이 역시 오해다. 지상명령의 성취라는 대업은 몇몇 지역의 크리스천들에게만 주어진 과제가 아니고 그렇게 이뤄질 수도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승천하시기 전 우리에게 분명한 선교 명령을 하달하신다. 그리고 이와 함께 하나님의 선교 사역을 발전시키기 위한 영적, 인간적, 재정적 자원도 허락하셨다. 이 자원이 우리 모두에게 주어졌다면 우리는 각자가 보유한 자원을 가능한 많이 공유해야 한다. 이런 교류와 협력은 지역 교회와 선교사 사이, 선교사 파송교회와 선교 대상국 사이, 선교 단체와 교회 사이 모든 관계에서 활발하게 일어나야 한다. 그 자원들을 공유해 시너지 효과를 내는 것이 바로 세계 기독교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결의문은 선언하고 있다.

[아이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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