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개혁하는 개혁 신앙

19세기 말 20세기 초 개혁신학의 대가로 칼빈주의의 부흥을 이끌며 종합적 신학 방법론을 추구한 헤르만 바빙크의 글을 모은 책이다.
제1장에서 자연과학의 한계를 제시하고 성경의 창조론을 역설하고, 제2장에서는 전쟁의 참혹함을 지적하며 성경적 전쟁관을 설명해 준다. 제3장에서는 1892년 8월 캐나다 토론토에서 개최된 ‘개혁교회연맹’ 제5차 총회에서 한 연설의 요약을 실었는데, 세상을 변화시키는 원동력으로서의 칼빈주의의 종교개혁을 특히 조명했다. 제4장에서는 네덜란드의 정치, 사회, 문화, 예술, 종교, 교육, 과학, 철학, 교회, 신학의 주요 인물들을 개관하며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교회의 역할을 제시한다. 이외에 부록으로 타락과 죽음, 네덜란드개혁교회 해방파, 신칼빈주의에 대해서도 논했다.
▲토브처치

왜 오늘날 많은 교회가 스캔들과 학대, 권력 남용의 중심이 되었는가? 교회는 예수의 복음의 한 부분으로서, 사람을 치유하고 품는 공동체가 아니었는가? 약자와 정의의 편에 서서 권력과 불의에 저항하는 사람들이 아니었는가?
≪토브처치≫는 이러한 물음에서 출발한다. 미국 복음주의권의 대표적인 신학자 스캇 맥나이트와 그의 딸 로라 배린저는, 자신이 오랜 시간 몸 담았던 교회의 스캔들을 마주하며, 교회 문화에 내재한 유해성과 그것이 어떻게 교회와 그 교회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을 망가뜨리는지를 고발하는 한편, 성경이 말하는 선한 문화, 곧 히브리어 “토브(טוֹב)” 문화의 회복을 진지하게 제안한다.
≪토브처치≫는 단순히 ‘교회론’을 말하는 책이 아니다. 그보다 권위주의적인 교회 문화의 유해성과 그로 말미암아 구조화된 악이 어떻게 교회를 병들게 하는지를 보여주는 한편, 이런 권위적인 유해한 문화에 맞서 ‘토브써클’, 곧 공감, 은혜, 사람 우선, 진실, 정의, 섬김, 그리고 그리스도 닮기를 키우는 문화로 전환할 것을 제안하고 안내하는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은 단순한 진단을 넘어서, 교회 문화의 근본적인 전환을 위한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저자들은 “모든 교회는 문화다”라는 인식 아래, 교회가 어떤 문화를 형성하고 유지하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구성원들의 행동과 신앙에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한다. 그리고 교회 문화를 바꾸기 위해서는 개혁적인 프로그램 몇 개로는 부족하며, 리더와 회중이 함께 토브의 가치를 내면화하고 실천할 때만 가능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단코드(CULT CODE)

포스트 코로나 세상은 ‘복음 전도’와 함께 ‘복음 분별’이 동시에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이단들은 전통적인 오프라인 환경과 코로나 이후 본격화한 온라인 공간을 넘나들며 하이브리드 이단으로 정착한 모양새이다.
교회 밖에서는, 노략질을 일삼는 가짜 이단이 진짜 교회처럼 양의 옷을 입은 선한 이웃으로 코스프레한 후, 자원봉사활동에 주력하며 사회적 인지도를 높이고 있고, 교회 안에서는, 신앙 연륜이 있는 교인들은 물론이고 나름 성경에 대한 지식과 관심이 많다고 하는 신앙인들마저 이단의 미혹에 빠지고 있다.
게다가 한국 이단들은 사회적 순기능을 노출하는 포교전략과 한류(K-Trend)로 무장한 채, 세계 곳곳으로 퍼져 나가고 있다. 가히 ‘한국 이단 팬데믹 시대’라고 부를 수 있는 형세이다.
이러한 때 이단의 핵심코드를 명확히 잡아내는 이 책은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이단을 진단하고 파악할 수 있는 명확한 눈을 갖게 해준다.
▲넷플릭스가 삼켜 버린 기독교 콘텐츠 중독 시대 교회는 무엇을 잃었는가

우리는 그 어느 시대보다 많은 양의 정보를 소비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아마 최근 등장한 생성형 인공지능으로 인해 정보 생산량은 더 급격히 증가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정보의 과잉은 지식의 불분명성을 더 증가시킬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의 신앙과 지식이 정박할 장소를 필요로 한다.
지은이는 그 정박할 장소가 상상력의 원천인 성경 안에 있다고 믿는다.
세상은 온갖 흥미롭고 재미있는 것들로 가득하다. 사람들은 잠자리에서 일어나 스마트폰을 들고 하루를 시작한다. 대부분의 시간을 스마트폰과 함께 생활하며, 스마트폰 속의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살아간다.
이 정도면 이미 스마트폰이 주인이고, 그 스마트폰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간이 노예처럼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간들은 스마트폰에게 전기를 제물로 바치기 위해 힘들게 노동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영화 〈매트릭스〉(The Matrix) 속의 빨간 알약이 필요하다. 스마트폰은 이미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유사-신’이며, ‘거짓-신’이다. 인간은 스마트폰에서 흘러나오는 노래와 영화, 드라마를 보면서 반성적 사유 능력을 잃어버린 채 스스로 노예인지도 모르는 노예 상태에 들어서 있다.
지은이는 기독교가 현대 문화의 절대적 영향력 아래 빠져들게 된 원인이 사유(思惟) 능력의 상실에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크리스천이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신자유주의의 질서 아래에서 ‘소비자’로서만 존재하고 있다. ‘선데이 크리스천’의 시대를 지나 일주일에 한 번씩 교회 의자를 엉덩이로 따뜻하게 데워 주는 ‘벤치 워머(bench warmer) 크리스천’으로 살아가고 있다. 상상력의 원천인 성경을 가지고서도 아무런 상상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세상이 넉넉히 감당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살아간다. 상상력이 제압된 크리스천은 하나님 나라를 꿈꾸지 못한다. 그저 세상이 부여하는 이미지와 정체성을 따라 껍데기만 크리스천인 삶을 살아갈 뿐이다.
이 책은 상상력을 잃어버린 교회에게 상상력을 되돌려 주고, 온갖 조롱과 멸시 속에 있는 십자가를 미디어의 영역에서 복권시키는 데 그 목적이 있다. 포스트모던적 무기력증과 허무주의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크리스천들의 상상력을 세상으로부터 해방하기 위해 이 책이 작은 해독제가 되길 기대해 본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 속에 빛나는 하나님에 대해 우리는 말해야 할 의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