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번 죽는 조기
산다고 해서 다 사는 것이 아닙니다. 살았다는 이름을 가졌으나 실상은 죽은 인생이 있습니다. 삶의 의미도 없이 하루하루 살아갑니다. 어쩌면 사는 것이 아니라 살아지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은 속여도 자신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지금 사는 것이 참된 삶을 사는 것인지, 자신에게 정직해야 합니다.
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답게 사는 것입니다. 어느 고등학교 담임선생이 졸업생들에게 칠판 글씨로 “人人人人”, 사람 ‘인’(人)자를 네 개 적어놓고 훈시를 했습니다. “사람이면 다 사람이냐? 사람다워야 사람이지.” 이제 세상으로 나가는 사회 초년병들에게 먼저 사람이 되라고 당부한 것입니다.
사람답게 사는 것은 가치 있게 사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이 생존을 위해서만 산다면 하루살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오래 사느냐? 성공하느냐?”가 인생의 본질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남을 유익하게 하는 것이 사람의 본분입니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짧은 생입니다. 삶의 목적과 사명을 깨달아야 보람된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12장 24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사람답게 사는 길은 내가 죽는 길밖에 없습니다. 죽는다는 것은 주안에서 나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작가 공순해의 수필 ‘비굴한 굴비’라는 글에 보면, 조기가 굴비가 되려면 아홉 번 죽는다고 합니다. 그물에 걸려 죽고, 소금에 절여 죽고, 냉동되어 죽고, 끈에 졸려 죽고, 건조할 때 말라 죽고, 냉동실에 다시 들어가 죽고, 손질하는 칼 아래 죽고, 불 위에서 익어 죽고, 드디어 인간의 입속으로 사라져 장렬히(?) 전사(戰死)한다는 것입니다.
조기가 맛있는 굴비로 재탄생하기 위하여 아홉 번이나 죽는 것을 생각할 때 마음이 찡합니다. 사람답게 성도답게 살기 위하여 얼마나 많이 죽어야 할까요? 또 죽고 또 죽어야 합니다.
“형제들아 내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서 가진바 너희에 대한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하노니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린도전서1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