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461장입니다.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주가 물어보실 때 죽기까지 따르오리. 성도 대답하였다.” 얼마나 가슴 벅찬 대답입니까?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죽음도 마다하지 않고 사명을 이루겠다는 것은 보통 특심이 아닙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지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쫓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눅 9:23) 십자가 보다 자기 부인이 먼저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향해 놀라운 신앙고백을 하였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러나, 자기를 부인하지 못했을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일보다 사람의 일을 생각하며 사단의 하수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길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습니다.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호언장담했지만, 대제사장의 여종 앞에서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자기 부인 없이 십자가를 질 수 없지만, 때로는 자기 부인 없이도 십자가를 지는 경우를 보게 됩니다. 십자가를 질 때, 고난도 희생도 감수합니다. 그러나, 늘 자기 생각을 앞세우며 십자가를 지기 때문에 자기 자랑을 합니다. 자기를 내려놓지 않고, 주님과 동행하지도 않으면서 일에만 몰두하기에, 사명의 십자가는 자기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전락해 버립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이 귀합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 끊임없는 자아 부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일상의 삶에서 날마다 내 십자가를 지고, 주를 따라갈 수 있습니다. 내가 죽어야 합니다. 아니면 내가 지는 십자가에서 사람 냄새가 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갈 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