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트비피 판 베토벤(1770-1827)은 청력을 잃었음에도 주옥같은 음악을 작곡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청각 장애를 가졌기에 위대한 작품을 창작할 수 있었습니다. 귀가 안 들린 이후에 지은 피아노 소나타 비창, 월광, 운명, 교향곡 9번 합창 등은 지금도 가슴을 울립니다. 그 시절에는 컴퓨터도 없었고, 작업환경이 지금에 비하면 형편없었음에도 불후의 명곡을 많이 남겼습니다. 육신의 귀는 닫혀있었지만, 마음의 귀는 열려있었습니다. 귀로는 아무 소리를 못 들었지만, 온몸으로 들었던 것입니다.
복음서에 예수님이 계속 강조하는 것이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깨달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듣고 깨달으라”(마15:10, 막7:14), “듣고 행하라”(마7:24, 눅8:15,21),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마13:16, 눅11:28) 이렇게 말하는 것은 육신의 귀가 아니라, 마음의 귀로 듣고 깨달아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듣기만 하면, 악한 마귀가 와서 말씀의 씨앗을 빼앗아갑니다. 때로는 말씀이 걸림돌이 되어 실족하게 됩니다. 홍수 같은 환난이 오면 모래 위에 세운 집과 같아서 무너집니다. 중요한 것은 마음의 귀가 열리는 것입니다.
이번 신년 부흥회는 말씀 사경회였습니다. 귀를 간지럽히는 말 잔치가 아니라, 심령에 깊은 울림이 있는 말씀 집회였습니다. 평소에도 들었고, 익히 알고 있었지만,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하는 신선한 기름 부음이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나타나 성경을 풀어주실 때처럼, 마음이 뜨거웠습니다. 회복, 기도, 화해의 메시지는 듣는 이로 하여금 마음의 귀를 열기에 충분했습니다.
이제 받은 은혜의 말씀을 소쿠리가 아니라, 그릇에 담아야 합니다. 마이동풍(馬耳東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한 쪽 귀로 듣고, 다른 한 쪽 귀로 흘려보내서는 안 됩니다. 마음 판에 새겨 계속 묵상하여 말씀의 실제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삶의 현장에서 말씀대로 살아 반석 위에 굳게 서야 합니다. 베토벤이 마음의 귀가 열려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었듯이, 마음으로 듣고 깨달아 지키어 복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하시니라.”(눅1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