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November 21, 2024

[강태광의 기독교 문학 산책] 이청준의 “축제”

인기 칼럼

강태광 목사

이청준의 “축제“

소설가 이청준은 독특한 작가입니다. 전업 작가로, 기자로, 그리고 교수로 살아온 다채로운 이력이나 소설, 팩션, 우화 소설 그리고 동화에 이르기까지 그의 폭넓은 문학세계는 독특한 작가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습니다. 작가 이청준의 작품들은 구성이나 내용 전개에서 독자들의 시선을 끌 만한 수준있는 작품들입니다. 소설가 이청준은 드물게 기독교 신앙을 바탕으로 스토리를 구성하는 신앙 작가입니다.

이청준의 소설 ‘축제’는 가족의 화해를 다룹니다.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이루어지는 조금 늦은 화해를 그리고 있습니다. 부모님께 드리는 용돈보다도 부모님께 사드리는 맛 난 음식보다도 부모님을 더 흐뭇하게 하는 것이 형제간의 우애입니다. 갈등과 반목이 가족들을 갈라놓는 이 시대에 각 가정은 화해의 축제가 필요합니다. 부모님께서 살아 계신다면 부모님 앞에서 우애를 보여야 하고, 부모님께서 돌아가셨다면 부모님의 무언 명령을 쫓아 형제간 화해가 이루어져 참된 효도가 있기를 바랍니다.

이청준의 축제는 팩션입니다. 팩션은 사실(fact)과 허구(fiction)라는 두 단어의 합성어로 역사적 사실에 작가의 상상력을 보탠 작품을 말합니다. 미국 작가 트루먼 캐포티는 1965년 실제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소설 『냉혈』을 발표했는데 이때 ‘팩션’이라는 말이 처음으로 등장했습니다. 그는 살인사건에 관한 신문 기사를 보고, 많은 관련자를 취재해서 이 소설을 완성했습니다. 캐포티 이후 미국에서는 노만 메일러, E.L.닥터로우 같은 작가가 팩션의 맥을 이었고 이들 작품도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상당한 사실적 접근을 하는 것이 1970년대 후반 미국의 흑인작가 알렉스 헤일리가 6대에 걸친 자신의 가계를 추적해 완성한 뿌리는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졌습니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제작된 TV 시리즈 뿌리를 보고 눈물을 흘린 시청자도 많았답니다. 밤의 군대 사형집행인의 노래를 쓴 노먼 메일러도 대표적인 팩션 작가입니다.

얼마 전 온 국민에게 충격을 준 영화 ‘도가니’ 원작도 공지영의 동명 소설(faction)입니다. 한국 문학사에서 보기 드물게 성공적인 실화소설로 2000년부터 4년 동안 한 청각장애학교에서 일어난 일련의 성폭행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공지영은 이에 앞서 사형제도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은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많은 사형수와 인터뷰하고 2004년에 완성했습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라는 작품도 필자는 faction이라고 봅니다. 팩션은 문학이면서 시사적 사실 혹은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습니다.

이청준은 자기 삶의 이야기에다 작가적 기교를 덧입혔습니다. 이청준의 모친은 작가의 고향인 전남 장흥에서 1994년에 87세로 사망했습니다. 장편 ‘축제(1996)’는 작가가 노모의 장례를 치른 이야기를 토대로 한 실화소설입니다. 내용이 사실과 거의 일치하며, 등장인물들은 기자 장혜림, 이복조카 용순 같은 허구의 인물도 있지만 대부분 실제 인물입니다. 그들 이름은 실명도 있고 다소 변형되어 등장합니다. 예를 들어 작가 이청준 자신은 40대의 꽤 이름 있는 작가이자 노모의 죽음 앞에 연민 어린 시선과 회한으로 가득한 화자인 이준섭에 투영되어 있고, 그의 딸 이름은 그대로 은지입니다.

40대의 유명작가 이준섭은 시골에 계시는 노모가 돌아가셨다는 부음을 받습니다. 준섭이 시골집에 도착하자 장례가 시작됩니다. 상가에 하나둘 가족과 친척, 이웃들이 몰려드는데 각자의 관계와 사연 따라 말과 행동이 사뭇 다릅니다. 특히 시집와서 그때까지 어머님을 모셨던 준섭의 형수는 시어머니의 죽음 앞에서 심경이 복잡했습니다. 그동안 고생해온 자신의 설움과 이미 정들어 버린 시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으로 복받치는 설움을 느낍니다. 게다가 그 설움들 위에 얄망궂게 이젠 고생이 끝났다는 안도감도 똬리를 틀었습니다. 시어머니를 잃은 며느리의 복잡한 심경입니다.

이준섭은 노모를 모시지 못한 죄스러움으로 너무 슬픕니다. 그러나 주변 사람은 생각이 다릅니다. 5년이 넘게 노망을 앓아온 87세 할머니의 죽음을 소위 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상가에 온 사람들을 그리 슬퍼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노골적으로 호상이라고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을 두고 잘 죽었다는 호상이라는 표현이 달갑지 않은 표현이지만 문상객들이 대 놓고 사용합니다.

어머니의 죽음을 놓고 조금씩 나타나던 가족 간의 갈등은 13년 전 돈을 훔쳐 가출한 준섭의 이복조카 용순의 등장으로 심화됩니다. 수용하기 어려울 만치 요란하고 요사스러운 복장과 천연덕스러운 행동은 가족들과 많은 문상객의 눈살을 찌푸리게 합니다. 용순은 자신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 이복언니 형자와 대판 싸우고 장례식장에서 나갑니다.

모친상을 통해 준섭의 문학세계를 재조명하는 기사를 쓰려는 기자 장혜림은 용순에게 따라붙어 이런저런 질문으로 은근히 용순의 부아를 돋우어 얘기를 듣습니다. 장혜림 기자는 용순이 어릴 적 계모와 이복형제들의 틈바구니에서 마음고생을 할 때 자신을 사랑해 준 할머니에게 깊은 애정을 품고 있음을 알게 된다. 아울러 사회적으로 출세를 했으면서도 직접 어머니를 모시지 않은 삼촌 준섭에 대해 서운함을 넘은 날카로운 적의가 있음을 알아차립니다.

장례의 둘째 날, 가족들이 전통적인 상복을 입는 동안 용순은 장례식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복장입니다. 기자 장혜림은 전날 마신 술이 깨지 않은 몸으로 취재하느라 분주하고 준섭의 친구들은 바다로 나가 낚시를 즐기고 본격적으로 문상객들이 밀려듭니다. 밤이 되면서 노름판이 벌어지고 조의금을 슬쩍 해서 노름을 계속하는 사람, 윷놀이하다 싸우는 사람들. 갖가지 일들로 상가는 소란스럽고 곡하러 온 소리꾼마저 만취해서 실려 나갑니다.

밤이 깊어 갈수록 사람들은 술에 취하고 점점 노골적인 놀이판으로 변합니다. 장례식 발인 날, 상여를 메기로 한 사람들이 읍내 여관에서 늦어 또 한바탕의 소란을 피웁니다. 그래도 장례식은 진행되어 상여가 나가고 용순은 장혜림이 건네준 준섭의 작품을 읽습니다. 준섭을 작품을 읽으며 용순은 자신의 할머니를 향한 삼촌 준섭을 애틋한 마음을 읽습니다. 결국, 축제는 어머니의 죽음을 통해서 가족들이 만나고 서로 이해하게 되어 가족으로 탄생하는 것을 그리고 있습니다.

소설 ‘축제’는 돌아가신 부모님들로 쓸쓸한 오월을 보내는 사람들이 한 번쯤 권하고 싶은 작품입니다. 소설 ‘축제’는 장례식이 아픈 축제라는 메시지를 전합니다. 돌아가신 어머님께서 남기시는 선물이 남겨진 유족들의 화해와 용납입니다. 소설 축제가 던지는 메시지를 정리해 봅니다.

첫째로 소설 ‘축제’는 형제 우애 회복이 효도임을 가르쳐 줍니다. 아버지 시신을 두고 싸우는 형제들이 있습니다. 돌아가신 부모님께 누가 효도를 했느냐? 로 싸우는 형제들도 있습니다. 소설 축제는 장례식에서 서로를 감싸는 가족들의 모습을 통하여 참 효도의 길을 보여줍니다.

둘째로 축제는 다양한 효도의 방법과 부모를 향한 사랑이 있음을 가르쳐 줍니다. 장례식에 참석한 도회지로 나가 출세한 준섭은 어머니가 원하는 출세는 했을지 모르지만, 어머니의 구체적 삶의 현장에는 별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못마땅하고 원수 같았던 준섭의 형수가 치매 걸린 어머니를 봉양한 최고의 효도를 했습니다. 잘 자란 손자 손녀들보다 꾀죄죄하게 살아가는 조카 용순이가 할머니를 향한 애틋한 마음이 더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족은 모두 어머니의 소중한 자손들입니다.

- Advertisement -spot_img

관련 아티클

spot_img

최신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