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톨 프랑스의 “타이스“
그리스 알렉산더 대왕시대에 출중한 미모를 갖춘 고급 무녀 타이스가 있었습니다. 그녀는 알렉산더 대왕 동방원정에 함께하면서 알렉산더 대왕에게도 많은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알렉산더 시대의 에집트 역사가인 클레이타르코스(Cleirtarchus)는 알렉산더 대왕이 동방원정 중에 페르시아의 도시 페르세폴리스에 방화와 모든 거주민들의 학살은 타이스의 꼬임에 알렉산더가 넘어간 결과라 기록합니다. 알렉산더의 시대가 끝나자 타이스는 이집트로 넘어가 당시 이집트 소테르 왕의 왕후가 됩니다. 왕과 이혼 후에도 타이스는 멤피스의 여왕이란 지위를 유지하면서 신임받는 왕의 친구로 왕궁에서 살았답니다. 타이스는 악함도 능력도 대단한 여인이었습니다.
그 후, 실상보다 부풀려진 타이스는 많은 소설과 저서에서 악녀 혹은 타락한 여자의 대명사로 등장하고 있습니다. 이런 작품들 중에서도 유명한 것이 Dante의 “신곡 (the Divine Comedy)”과 1890년 아나톨 프랑스 (Anatole France)가 쓴 소설 “무희 타이스”입니다. 이런 작품들에서 등장하는 타이스는 타락과 악의 화신입니다.
아나톨 프랑스의 소설 ‘무희 타이스’ 배경은 6세기경, 중세입니다. 당시 나일강 양쪽 강변에는 속세를 등지고 수도(修道)하는 수도사들이 많았습니다. 수도자 중에 빠후뉘스 신부가 유명했습니다. 빠후뉘스는 금욕과 도덕적 신앙생활로 명성이 자자한 모범 수도사였습니다. 당시로서는 아주 드물게 24명의 제자를 거느리는 영향력 있고, 유명한 수도사였었습니다.
그런데 빠후뉘스는 수도원에 입원하기 전인 15세에 알렉산드리아 한 극장에서 타이스라는 여인을 만났습니다. 그녀는, 남자의 정욕을 자극시키는 음탕한 춤을 추는 무희였습니다. 소년 빠후뉘스는 불타는 정욕을 참지 못하여, 타이스의 집 앞까지 갔다가, 돈도 용기도 없어서 돌아섰습니다.
세월이 흘러 빠후뉘스는 신부가 되고 수도사로 헌신하여 수도원에서 후배들을 이끌고 있었습니다. 그가 경건한 수도자로 큰 명성을 얻어 갈 무렵 타이스도 알렉산드리아에서 춤추는 매춘부로 유명해졌습니다. 그녀는 이교도였고, 육체를 통해 부와 명성을 누리는 세속의 여인이었습니다.
빠후뉘스는 스스로의 영성과 수양의 실력을 믿고 타이스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제는 타이스의 미모가 자신을 절대로 미혹시킬 수 없다고 굳게 믿습니다. 빠후니스 신부는 타이스를 찾아, 회개시켜서, 하나님의 은총을 감사할 줄 아는 깨끗한 여인으로 만들어 주겠다고 결심하고 타이스가 활동하고 있던 알렉산드리아로 그녀를 찾아갔습니다.
첫 만남에서 타이스는 빠후뉘스를 유혹합니다. 알몸에 가운을 걸치고, 침대 위에서 빠후니스 신부를 맞으며 유혹합니다. 그러나 수도자 빠후늬스 신부는 유혹을 물리치고, 하나님과 구세주, 그리고 천당에 대해 설명합니다. 이 땅 위에서의 모든 일들은 다 무가치한 것이며, 육체의 아름다움보다 마음속에 더 큰 아름다움을 모르고 있다고 그녀를 설득합니다.
타이스는 지옥(육체)에 흠뻑 젖어 살았지만, 빠후늬스는 천국(정신)으로서 그녀를 설득하여 회개를 하게 하였습니다. 타이스는 빠후뉘스의 설득과 전도에 감동을 받아 마침내 타락한 생활을 깨끗하게 청산합니다. 아름답고 화려한 금발의 머리를 자르고, 여자 수도사가 되어 수도원에 들어가 경건의 훈련을 합니다. 타이스는 다른 여자 수도사들보다도 더 신실하게 수련합니다. 수련의 시간을 마치고 전에 살던 리비아 사막으로 돌아와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완전히 새 삶을 삽니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그녀를 회개시킨 빠후뉘스 신부는 타이스의 미모에 반해 관능과 정욕의 노예가 되어버렸습니다. 사막으로 돌아온 빠후뉘스는 타이스 생각 때문에 기도에 집중할 수가 없습니다. 급기야 삐후뉘스는 타이스를 찾아가 유혹합니다. 하지만 타이스는 이미 수련과 회개의 삶으로 거룩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탐욕에 물들어 버린 빠후뉘스 신부가 타이스에게 다시 향락을 즐기자고 유혹하지만 타이스는 외면합니다. 오히려 빠후뉘스의 말을 악마의 미혹으로 듣고 빠후뉘스를 향해 ‘사탄아 물러가라!’고 외칩니다.
병들어 죽어가는 타이스의 머리맡에서 세속적 사랑에 미친 빠후뉘스는 절규합니다. “제발 죽지 말아요! 당신을 사랑하오! 내 사랑 타이스! 내 말을 들어봐요! 내가 당신을 속였어요. 하나님, 천당, 그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오. 참된 것은 땅 위의 생명과 인간들의 사랑뿐이오. 난 당신을 사랑하오. 당신은 너무 아름다워요. 나와 함께 도망갑시다. 내 팔에 당신을 안고서 멀리 떠나고 싶어요. 어서 와요. 우리 서로 사랑합시다.”
이미 타락하여 육욕의 불타는 빠후뉘스는 타이스를 지옥의 쾌락으로 유혹했지만, 타이스는 천국의 아름다움을 동경하며, 그 유혹을 뿌리치고 거룩한 모습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신앙도, 수련의 삶도, 성직자의 길도 버린 빠후뉘스는 뭇 제자들과 신앙인들의 조롱과 지탄의 대상이 됩니다.
이 작품은 당시 종교적 위선에 대한 통렬한 고발이었고 위선적 종교 도덕주의에 대한 신랄한 야유였습니다. 종교적 수련이나 직책이 거룩한 삶을 보장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종교적 성공이나 업적으로 인간의 죄성을 감추려 했던 당시 종교적 위선을 통렬하게 고발합니다. 아울러 이 작품은 비천함 속에 담긴 거룩함을, 거룩함 속에 담긴 비천함을 보여줍니다.
사실 알고 보면 성(聖)과 속(俗) 사이에 간격이 없습니다. 종교적 성공이 영성이나 거룩함이 아닙니다. 거룩함은 수련과 정진이나 자신감에 있지 않습니다. 거룩은 직분이나 직책 연륜 혹은 환경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직자의 가운이 거룩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거룩함은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알고 회개와 겸손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신앙 안에서 자신의 거룩함을 믿는 것이 무서운 교만이요 악의 근원입니다. 우리도 빠후뉘스처럼 자신에게 있는 타이틀과 직책, 그리고 자신의 환경으로 우리들의 거룩을 주장하는 허망함이 있습니다. 주님 능력에 힘입지 않는 수도와 훈련은 인간적 교만의 배양소가 될 따름입니다. 이런 교만이 우리를 타락시키고 악의 구렁텅이로 몰아갑니다. 거룩은 철저한 자기 부정에서 피어나는 은혜의 꽃입니다. 아울러 경건한 삶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자신을 버리는 사람들에게 은혜로 주시는 면류관입니다.
오늘도 여지없이 무너지는 빠후니스들이 많습니다. 직책과 타이틀을 자랑하지만 속으로는 썩어 있는 빠후니스가 되지 않도록 겸손과 신실함으로 하나님 앞에 서야 합니다. 아울러 하나님 은혜로 죄와 악을 과감하게 버리고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는 현대 타이스들의 거룩한 몸부림도 간과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