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une 14, 2024

[황현조 박사 칼럼]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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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조 박사 (IRUS 교수, 커네티컷비전교회 담임)

유대 민족은 주전 6세기경 국가적인 큰 낭패를 당했다. 당시 초강대국으로 군림하던 바벨론에게 나라가 함락되고 많은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갔다. 그로부터 70년간은 “바벨론 포로”(Babylonian Captivity)의 악몽 기간이었다. 다니엘서는 이때 기록된 책이다. 이 책에는 말둑(Marduk)이라는 우상을 숭배하며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혔던 바벨론의 강포함을 꺽으시는 하나님의 통치 권능이 나타난다. 역시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다니엘서는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원래 고대 바벨론 왕국은 주전 1830년에 함(Ham)의 손자 니므롯이 유프라데스 강가에 세운 도시 바벨론에서 시작됐다. 후에 아라비아 사막에서 몰려 온 아모리 족속이 바벨론 도시를 점령하여 수도로 삼고 세운 나라였다. 그로부터 1200년이 지난 후 ‘신 바벨론’(Neo-Babylonia)으로 일컬어지는 강대한 바벨론 제국으로 성장하여 주전 586년에 유대를 멸망시켰고, 다니엘과 세 친구들도 이때 붙잡혀 갔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포로들 중에 총명하고 인물 좋은 청년들을 뽑아서 왕궁에서 수종들게 했는데 다니엘과 세 친구인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도 거기에 포함됐다.

그 청년들은 이방 종교와 문화의 중심인 바벨론 왕궁 안에 살면서도 신앙을 굳게 지키고 우상숭배한 왕의 산해진미를 거절하였다. 레위기에 명령된 음식법과 규례를 지키려는 결단이었다. 그 결단은 자신들의 안위에 큰 위험을 가져왔다. 뿐만아니라, 느부갓네살 왕은 자기의 이상한 꿈을 해몽하지 않으면 즉각 사형에 처하겠다는 엄명까지 내렸다. 위기에 처한 그들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꿈을 해몽하는 은사와 지혜를 주셨다. 어려운 꿈을 해몽한 후에 다니엘은 왕의 신임을 받아 온 나라를 다스리는 총리가 되고 세 친구들도 높은 관직에 올랐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느부갓네살 왕은 90피트 높이의 금으로 된 거대한 우상을 만들어 놓고 모든 신하에게 엎드려 경배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우상에게 절하지 않는 것을 본 갈대아 사람들이 이를 왕에게 참소하였다. 격노한 왕은 그들을 끓는 풀무 불에 던지고 풀무 불을 평소보다 일곱 배나 뜨겁게 하라고 명령하였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이렇게 느부갓네살 왕의 포악성의 희생물이 되었다. 그들을 둘러 싼 환경은 반복적으로 극히 잔인하고 견디기 힘들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 잔인한 환경에 지배를 받고 굴복해야 할 것인가?

많은 사람들은 이 세상의 잔인한 환경을 만나면 그 환경의 지배를 받고 굴복하고 만다. 그들은 환경이 순조롭고 원하는대로 흘러가면 하나님을 믿겠다고 하거나, 재물이 많아지고 질병이 나으면 신앙생활을 하겠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그러나 그렇게 하는 사람은 실상 그다지 많지 않다.

참 믿음은 환경을 초월하는 것이다. 환경의 온도가 오르락 내리락 할지라도 거기에 흔들리지 않는다. 언제나 하나님을 신뢰하며 일관성있게 나아간다. 변화무쌍한 환경의 지배를 받아 굴복하고 산다면, 참 믿음이 아닌 것이다.

세 청년의 일관성있는 참 믿음은 다음 구절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왕이여 우리가 섬기는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극렬히 타는 풀무와 왕의 손에서 능히 건져 내시리이다. 그리 아니하실찌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 할 줄을 아옵소서” (단 3:17-18)

그들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였기에 이런 믿음의 용사들이 된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을 대상으로 놓고 옳은지 그른지를 테스트하는 것은 크게 잘못되고 참람된 행위이다. 하나님은 인간이 인정하든 안하든 하나님이시다. 인간이 갖가지 이론과 증거로 하나님의 존재를 논증했기 때문에 생겨진 존재가 하나님이 아니시다. 하나님은 인간의 논증과 증명 이전에 전제되어야 하는 분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I AM WHO I AM)  (출 3:14)라고 하시며 친히 자신의 자존성(Aseity)을 계시하셨다.

만약 인간의 논증과 증명 때문에 비로소 존재하는 하나님이라면 그것은 인간이 제조하고 인정한 하나님 일 뿐이다. 창세기 1:1에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고 선언한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하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존재는 인간의 논증 이전에 전제되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개혁주의 변증학과 조직신학에서 취하고 있는 전제주의적 신론(Presuppositional Theology)인 것이다.

칼빈 이후 가장 위대한 기독교 신학자요 변증학자로 평가받는 코넬리우스 반틸(Van Til) 전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교수는 “하나님은 성경에 계시된 자존적(Self-Existent), 자족적(Self-Sufficient) 하나님이시다. 이러한 하나님에 대한 ‘신 지식’(The Knowledge of God)이 잘못 되면 인간의 모든 지식이 잘못되며 신학적 교리도 잘못된다. 성경적 ‘신 지식’이 모든 지식의 근원이다. 인간 지식이 참된 지식이 되려면 성경에 계시된 삼위일체 하나님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한다”라고 역설하였다. 이와같이 반틸은 철저히 계시 의존적 신학자요 전제주의론적 변증학자였다. 성경 진리는 경험보다 선행되며, 경험은 반드시 성경에 의해 해석되어야 하는 것이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은 바로 이러한 신앙으로 잔인한 환경에 굴복하지 않고 환경을 지배하며 승리했다. 위에서 인용한 다니엘서 3:17-18은 그들이 “하나님을 하나님이시도록 하라!”(Let God Be God!)는 신앙적 선언을 그대로 실천한 투철한 신앙이었다. 펄펄 끓는 풀무 불과 느부갓네살이 잔인하게 위협하는 환경이 그들을 지배할 수 없었다. 불신자 느부갓네살이 왕일지라도 그 앞에서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담대히 나타냈다. 비록 육신적으로는 포로의 몸이었지만, 그들은 이방 땅에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외친 “영적 투사”요 “포로 선교사”들 이었던 것이다.

인생을 살아 가면서 우리도 때로는 풀무 불과 사자 굴 같은 잔인한 환경에 직면하게 된다. 그럴 때 우리에게 절실하게 요청되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다니엘과 세 친구들의 신앙이다. 어떠한 잔인한 환경에 처할지라도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담대한 신앙이 곧 우리가 가져야 할 신앙이다. 하나님은 세 청년들이 풀무 불 속에 있는 현장에 함께 하셨고 건져 주셨다. 그들의 몸과 머리털도 타지 아니하였고 불탄 냄새도 없었다. 느부갓네살 왕이 이를 보고 놀라서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스스로 고백하는 위대한 선교의 이적이 일어났던 것이다(단 3:25-30).

느브갓네살이 죽은 후 그의 아들 벨사살이 왕국의 마지막 왕으로 통치하다가 바벨론은 주전 539년에 메대-파사 왕국의 고레스 왕에게 멸망 당했다. 고레스 왕은 자기 삼촌인 다리오를 바벨론 지역의 분봉왕으로 임명하였다. 다니엘은 느브갓네살, 벨사살, 다리오, 고레스 등 4명의 왕들이 집권한 오랜 기간동안 총리로 봉직한 것이다.

다리오 왕은 그가 통치할 때 우상숭배만 허용하고 하나님을 못 섬기게 하는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다니엘은 단호히 불복했다. 그는 예루살렘을 향한 창문을 열어 놓고 하루 세번 씩 무릎 꿇고 기도했다. 그래서 사자 굴에 던져졌지만 하나님이 천사들을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고 그를 안전하게 지켜 주셨다. 이를 보고 깜짝 놀란 다리오 왕도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자신의 입으로 백성들에게 선언하는 이방선교의 이적이 또 다시 일어났던 것이다(단 6:24-28).

시편 기자는 이렇게 선포하였다.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찌어다 내가 열방과 세계 중에서 높임을 받으리라 하시도다” Know that I AM GOD! (시 46:10).

시편 기자의 말씀처럼, 우리 모두 “하나님께서 하나님 됨”을 알고 선포하도록 하자. 영원토록 하나님은 하나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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