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June 23, 2025

[황현조 박사 칼럼] “풍성한 사랑의 위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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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조 박사 (IRUS 교수, 세계예수교장로회 총회장)

독일의 시인 칼 부세는 “산 너머 저쪽”이라는 시에서, “모두들 거기에 행복이 있다기에 찾아 갔건만 눈물지으며 되돌아 왔네”라는 시를 썼었다. 오랜 인류 역사를 거쳐오는 동안 사람들은 부단히 행복을 찾아 헤메어 왔다. 그러나 산 너머 저쪽 하늘 멀리 행복이 있다고 해서 남을 따라 찾아 가 보았지만 허탕치고 실망하는 것이 인생들의 보편적인 모습이었다.

진정한 행복의 비결은 과연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오직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신다. 그래서 시편 제일 첫장 두 구절은 이렇게 선포한다. “복있는 사람은…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  행복의 비결이 하나님께서 가르치시는 말씀에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순종하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하고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는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행사가 형통하고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이 비결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은 일찌기 아리스토텔레스가 “행복은 인생의 목표”라고 말한 것을 따르듯이, 오직 행복을 인생의 목표로 삼고 추구해 왔다. 그러나 실패했다. 성경은 분명히 교훈한다. 인생의 목표는 행복이 아니고,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대로 사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되어야 하고, 그럴 때 그 부산물로서 행복이 찾아 오는 것이다. 그래서 영어에 있는 다음 격언이 아주 성경적이라고 할 수 있다. “Happiness is a by-product, not an end-product” (행복은 목표물이 아니고 부산물이다).

성경 중에 특히 빌립보서는 행복의 비결을 가르쳐 주는 책이다. 이 책에는 행복의 비결로서 여덟가지의 가치가 나온다– 믿음, 사랑, 찬양, 감사, 헌신, 겸손, 진실, 인내. 오늘은 여기서 행복의 두번째 비결인 사랑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본다. 사랑하며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인생의 행복은 사랑을 받는 것 보다 주는 데서 온다는 사실이다. 물론 우리가 타인으로부터 사랑을 받으면 행복하다. 그러나 사랑을 받는 사람보다  사랑을 주는 사람이 훨씬 더 행복한 인생을 산다는 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인 것이다.

빌립보서 1:9-11에는 빌립보 성도들을 향한 사도 바울의 짤막한 “원 센텐스 기도문”(One Sentence Prayer)이 나온다. 이것은 성도들의 영적 성장과 행복을 위한 기도문으로서 가장 아름다운 기도문 중의 하나이다. 이 기도문의 첫 단어가 사랑이다.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사도 바울이 성숙한 크리스찬의 조건으로서 빠뜨리지 않고 꼭 강조하는 요소가 사랑이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전 13:13)고 하였고,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 중에 제일 첫 번째로 꼽은 것이 사랑이다(갈 5:22). 성령충만한 성도가 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사랑이 있어야 하고, 그 사람에게 사랑이 있어야 다른 여덟가지 성령의 열매도 잘 역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학자  버나드 라스카스는 “우리가 사랑하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다”(If we do not love, we are nothing)라고까지 했다. 행복하고 성령충만한 삶을 살기 위해서 우리 속에 사랑이 풍성해 지는 것이 너무도 중요하고 필수적이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여기서 “너희 사랑을 …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라고 기도한 것이다.

인류 역사를 연구한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인간이 자기중심주의자가 될 때는 결코 행복해 질 수 없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래서 인간이 행복해 지기 위해서는 자기중심주의를 극복해야 하는데, 그 유일한 길이 영적인 파워이고 그것이 곧 사랑이라고 하였다.

물론 모든 사랑이 다 자기중심주의를 벗어난 사랑은 아니다. 이 세상에는 소위 Give and Take Love, 거래적인 사랑이 많다. 자신에게 어떤 보상이 있어야만 사랑하는 것이 그것이다.  “I love you, because I need you” (내가 필요해서 당신을 사랑한다). “You love me first and I will love you back!” (당신이 날 먼저 사랑하면 내가 당신을 사랑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다 조건적 사랑, 자기중심적 사랑들이다.

사도 바울이 말하는 사랑은 그런 사랑이 아니다. 그가 교훈하는 사랑은 아가페적 사랑, 조건없는 사랑, 자기 희생적 사랑이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드시면서 바로 이 사랑을 하라고 당부하셨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사도 요한은 이 말씀을 요1서 3:23에서 우리에게 다시 상기시켜 주었다.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우리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니라.”  “그가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요1서 3:16). 예수님께서 아가페적 사랑의 절정의 모습을 갈보리 십자가상에서 보여 주셨다. 이 사실을 사도 요한은 우리에게 재차 상기시키며 그러한 사랑의 실천을 촉구한 것이다.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받은 우리 모든 크리스찬들은 이러한 주님의 사랑의 명령에 순종하고 실천할 사명이 있다. 인류가 그토록 찾는 행복한 삶은 그럴 때 이루어진다. 성경이 교훈하는 “풍성한 사랑의 위대성”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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