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ursday, July 18, 2024

[황현조 박사 칼럼] “평강의 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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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조 목사(커네티컷비전교회 담임)

“평강의 새해”

새해 아침이 밝았다. 사도행전에 보면, 하나님은 연대를 정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새해를 맞이하는 축복을 주셨다(17:26). 우리가 무사히 건강하게 살면서 새해를 계속 맞이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소중한 축복이요 기적이다. 새해는 우리에게 무한한 신비와 가능성을 열어 주고 기대가 넘치게 한다. 희망의 2022년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개인, 가정, 사회, 국가 등 모든 분야에 평강이 임하는 해가 되길 하나님께 기도하며 올해를 출발해야 하겠다.

우리가 살고있는 세상 현실을 보면 진정한 평화가 결핍되어 있다. 테러, 전쟁, 폭력, 분쟁, 갈등이 끊일 날이 없다. 개인의 정신과 마음에도 평안의 상실이 심각하다. 코로나바이러스가 벌써 2년째 우리의 평강을 위협하고 있다. 한국이나 미국 정치계의 격렬한 투쟁과 대립도 국민들을 피곤하게 한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진정한 평화를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1902년 아르헨티나와 칠레는 극심한 국경분쟁에 휩싸였다. 사태는 점점 악화되어 일촉즉발의 전쟁위험에 처했다.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은 채 양국은 전군에 전투태세 명령을 내렸다. 이때 양국 기독교단체에서 전쟁을 피할 긴급방안을 제시하였다.

국경분쟁 지역 안데스 산맥 위에 해발 12,572피트의 거대한 예수님 동상을 세워서 분쟁을 평화적으로 해결하자는 방안이었다. 그 동상의 이름은 “안데스에 세워진 구원자 그리스도”(Christ the Redeemer of the Andes)로 하고 예수님이 왼손에 십자가를 높이 드신 채 양국을 내려다 보고 계시는 모습으로 하자고 제안했다.

양국 정부는 그 제안을 받아들여 전쟁상태가 극적으로 멈췄다. 동상이 건립되는 데 2년이 걸렸다. 드디어 1904년 3월 13일, 3천 명의 양국 국민들과 군인들이 높은 산정에 올라 예수님의 십자가 동상 아래서 평화의 축제를 개최했다. 예수님이 서 계신 발등상 바위에는 다음 구절이 새겨져 있었다. “이 산맥의 바위들이 부서져서 가루가 될 때까지 칠레와 아르헨티나는 결코 서로 다시 전쟁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다”(Sooner shall these mountain crags crumble to dust than Chile and Argentina shall go to war again with each other). 이 동상은 지금도 세계 “7대 불가사의”(Seven Wonders)의 하나로 남아있다.

전쟁 일보 직전의 양국이 왜 십자가를 높이 드신 예수님 동상을 거기에 세웠을까? 예수 그리스도가 인류의 구원자요 평화의 왕이심을 믿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에베소서에서 바울 사도가 선포하신 바로 그 말씀이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로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셨다”(2:14). 예수님의 탄생을 8백 년 전에 예언했던 구약의 이사야 선지자도 장차 오실 예수님을 “평강의 왕”이라고 하였다(9:6).

예수님은 이사야의 예언대로 “평강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셔서 말씀하셨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요 14:27).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평안은 구약에서는 샬롬(Shalom), 신약에서는 에이레네(Eirene)라고 표현한다. 신·구약 성경에서 2백 번 이상 강조하는 이 평화는 메시야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때 오는 신적인 평화(Divine Peace)이다. 그래서 어거스틴은 ‘고백록’에서 “주님 안에서 평안을 발견하기까지는 우리에게 안식이 없나이다”라고 했다. 지금 개인과 사회, 국가에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바로 예수님이 주시는 평강이다. 오직 예수님의 평강만이 세상의 분쟁과 갈등, 인생의 풍랑을 잔잔케 할 수 있다.

주후 1, 2세기에 최강대국 로마제국은 자기 국가의 힘으로 세계평화를 이루었다고 “로마의 평화” 팍스 로마나(PAX ROMANA)를 자랑하였다. 그러나 팍스 로마나는 형식적 껍데기에 불과했다. 당시 로마제국 압제하에서 유대나라를 비롯한 얼마나 많은 국가와 민족이 평화를 잃고 식민지 지배의 고통을 당하고 있었던가? 그러므로 예수님의 평화를 떠난 정치, 군사, 경제, 문화를 통해서 시도하는 모든 인간적 평화운동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우리가 새해를 맞으면서 오직 예수님이 주시는 평강을 굳게 붙들고 출발해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Shal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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