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day, May 20, 2024

[역사기획/ 선물처럼 우리 겨레를 찾아온 이방인들] ②헐버트 선교사와 주시경 그리고 한글

인기 칼럼

사라질 뻔한 우리의 한글을 지켜내고 발전시킨 호머 헐버트와 주시경을 기리고자 마련된 종로의 주시경마당.

소중한 한글가치 지키며 민족긍지 일깨우다

한글날에 찾아가 올려다보는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은 평소와는 또 다른 느낌을 전한다. ‘훈민정음’ 창제는 우리 역사와 후손들에게 얼마나 귀한 선물이었던가. 그 묵직한 감동과 상념을 고스란히 이어가기 위해 광장을 떠나 세종문화회관 뒤편 골목길로 몇 걸음 옮겨가보자. 국민은행 광화문사옥 바로 옆에 작은 공원이 나타난다. 오늘의 목적지인 ‘주시경마당’이다.

헐버트와 주시경이 스승과 제자로 만난 배재학당 전경.

구세군회관과 새문안교회 주변에 조성된 ‘한글가온길’에는 대표적 한글학자인 주시경의 집터와 한글회관 그리고 주시경마당이 이어진다. 국권을 빼앗긴 겨레가 ‘국어’의 자격마저 일본어에 내어주자, 대신 ‘한글’이라는 기백 넘치는 이름을 창안하며 우리말과 글을 끝까지 지켜낸 주인공이 바로 주시경이다.

주시경마당에는 항상 책으로 가득한 보따리를 든 차림으로 나타나 ‘주보따리’로 불렸던 그의 생전모습을 본뜬 부조와, 한글 발전을 위해 공헌한 그의 생애와 업적에 관한 이야기들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주시경마당을 장식하는 또 하나의 주요 인물이 있다.

주시경의 스승이자 친구 혹은 동지로서 같은 시대를 살았던 호머 B. 헐버트라는 이름의 서양인이다. 한글의 우수성을 전 세계, 그 중에서도 특히 스스로 그 가치를 몰라 업신여기기까지 했던 우리 민족에게 열심히 가르쳐준 은인이자 보배 같은 존재이다.

두 사람이 함께 제작한 최초의 한글신문인 <독립신문>.

두 사람의 만남은 황해도 봉산 출신의 주시경이 서울로 올라와, 18세 나이에 신학문을 배우고자 선교사들이 세운 배재학당에 입학하면서 시작된다. 당시 헐버트는 감리교 선교사이자 배재학당 교사로 활동하는 중이었다.

미국 버몬트 태생의 헐버트는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학교인 육영공원 교사로 초빙되어 1886년 내한했다. 교사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우리 민족에게 중국 한자가 아닌 스스로 개발한 문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짜임새와 쓰임새가 대단히 뛰어나다는 사실을 발견하며 헐버트는 한글예찬론자가 되었다.

그리하여 열심히 공부해 터득한 우리말 실력으로 1891년에는 손수 세계 각국의 지리와 문화를 소개하는 <사민필지>라는 이름의 최초 한글교과서를 집필해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한글에 대해 헐버트가 놀란 세 가지 사실이 있다고 전해진다.

한글의 우수성을 우리 민족이 깨우치게 하고 전 세계에 널리 알리는데 앞장선 호머 헐버트 선교사.

첫째는 한글이 엄청나게 과학적인 글자라는 사실, 둘째는 누구나 쉽게 배울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마지막 셋째는 이렇게 훌륭한 글자를 우리 민족 스스로가 업신여기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사민필지> 머리말에는 이에 대한 안타까움이 숨김없이 표현되어있다.

“생각건대 중국 글자로는 모든 사람이 빨리 알며 널리 볼 수가 없고, 조선 언문은 본국 글일뿐더러 선비와 백성과 남녀가 널리 보고 알기 쉬우니 슬프다! 조선 언문이 중국 글자에 비하여 크게 요긴하건만 사람들이 요긴한 줄도 알지 아니하고 오히려 업신여기니 어찌 안타깝지 아니하리오.”

이런 확신과 열성을 가지고 한국인 제자들을 가르치던 헐버트의 시선을 사로잡은 인물이 바로 배재학당의 신입생 주시경이었다. 언어학에 대한 그의 남다른 재능과 우리말에 대한 애착을 눈여겨 본 헐버트는 그에게 서양학문을 가르치고, 또 주시경으로부터는 풍부한 우리말을 배우면서 함께 한글문화를 꽃피워나갔다.

‘한글’이라는 우리말 이름을 창안하고, 국어문법을 체계화하는데 평생을 바친 주시경.

특히 경제상황이 좋지 못했던 주시경을 위해 헐버트는 자신이 운영하는 삼문출판사에 자리를 마련해, 공부와 돈벌이를 병행할 수 있도록 주선해주었다. 또한 미국에서 돌아온 서재필과 함께 최초의 한글신문인 <독립신문>을 창간할 때도 주시경을 제작에 참여시켜, 재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준 것도 헐버트였다.

주시경은 헐버트의 배려와 보살핌에 힘입어 훌륭한 한글학자 겸 교사로 성장했다. 민족정기를 말살하려는 일제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대한국어문법> 편찬, 국어강습소와 국문연구소 개설, 어린이들을 위한 <한글 초학> 발간, 한글맞춤법 통일안의 기초가 된 <국문연구> 작성, 조선어강습회 운영 등 주시경은 한글발전에 위대한 업적들을 이루어낸다.

헐버트 또한 한글의 존재와 함께 우리의 대표민요 ‘아리랑’을 채보해 학계에 소개하는 등 한민족의 문화적 우수성을 전 세계에 전파하는 데 앞장섰다.

주시경마당을 둘러본 후 우리의 발걸음은 다시 광화문으로 돌아가 훈민정음 창제의 스토리를 깊이 있게 들려주는 ‘세종이야기’ 전시관, 일제강점기 우리말을 수호하기 위해 생명을 건 한글학자들의 비화를 소개하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헐버트와 주시경이 함께 땀과 눈물을 바친 독립협회 옛 터 등으로 이어진다.

우리의 한글, 그 소중한 가치를 만들고 지켜낸 세종대왕과 주시경의 연결고리에 푸른 눈의 선교사 ‘헐벗’(헐버트가 생전에 사용한 자신의 한글식 이름 표기)이 존재했음을 575번째 한글날을 보내는 우리의 기억에 새겨야 한다.

헐버트가 말하는 한글의 우수성

“대중연설 언어로 영어보다 우수”

헐버트는 자신의 저서와 국내외 각종 매거진 등에 기고한 글들을 통해 한글의 우수성을 지치지 않고 반복적으로 설파했다. 심지어 중국에는 한자 대신 한글과 유사한 방식으로 문자를 새로 만들어 사용할 것을 제안하기도 했다. 헐버트의 글들을 모아 2016년 발간된 <헐버트 조선의 혼을 깨우다>(김동진 역·참좋은친구)에서는 그의 확신에 찬 어조를 생생히 느낄 수 있다.

호머 헐버트가 육영공원 교사로 재직하던 시절 저술한 최초의 한글교과서 &lt;사민필지&gt;의 표지.

▲…우리는 한글이 그 어떤 문자보다도 간단하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발명되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완벽한 문자란 최대한 단순하면서도 광범위한 표음 능력을 지닌 글자이기 때문이다. -<한국소식> 1892년 3월호 중 ‘한글(The Korean Alphabet)’

▲…다섯 가지 발명품(금속활자, 거북선, 현수교, 폭발탄, 한글)은 한국의 자랑거리인 동시에 불명예이기도 하다. 이러한 위대한 발명품들은 한국인들이 곤경에 처했을 때 발휘되는 발명에 대한 잠재능력을 잘 말해주지만 한국인들을 칭찬만 할 수는 없다. 한국인들은 그토록 놀라운 발명의 성과를 이뤘지만, 그 성과를 더 발전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위대한 발명품들을 사장시켜버렸기 때문이다. -<하퍼스> 1899년 6월호 중 ‘한국의 세계적 발명품(Korean Inventions)’

▲…누가 보아도 한국어는 영어나 그 밖의 서양 언어들보다 대중연설에 더 적합하다. 키케로나 데모스테네스의 웅변에서와 같이, 많은 절로 구성된 한국어는 끝에 오는 동사에서 문장의 절정에 이른다. 또한 영어문장을 대개 용두사미로 만들어버리는 현상, 즉 문장 끝에서 약해지는 현상이 한국어에는 없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어는 대중연설 언어로서 영어보다 우수하다. -<스미스소니언협회 1903년 연례보고서> 학술란

▲…한글 창제자가 완벽한 음성학적 기준에 얼마나 가까이 다가갔는지를 알아보자. 맨 처음 글자를 완성한 이후 버려진 글자는 단 두 글자다. 하나는 모음을 약간 강렬하게 발음할 때 목구멍에서 약해지는 소리(ㆆ)이고, 다른 하나는 희미하게 내는 소리(ㅿ)이다. -<한국평론> 1904년 9월호 중 ‘한글 맞춤법 개정(Spelling Reform)’

▲문자의 단순성과 소리를 표현하는 방식의 일관성에서 한국의 소리글자와 견줄 문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세종은 어려움을 마다치 않고 한자를 변형하는 방식이 아닌 전혀 새로운 문자인 소리글자를 창제하여 한자로 인한 백성의 고충을 덜어준 첫 번째 인물이다. -<한국사> ‘세종편’ 1905년.

기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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