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y 21, 2024

[역사기획] 평서노회 100년의 다섯 이야기

인기 칼럼

한국교회 대부흥의 발원지서 조직돼

핍박과 억압 꿋꿋이 견뎌내며 발전해

다음세대 사역과 선교사역 산하 교회

전심으로 협력해 선진노회 모델 제시

북에서 발흥해 남에서 활짝 꽃피운 위대한 복음사역의 역사

평서노회(노회장:김정민 목사)는 지난 411일 행복나눔교회에서 제177회 정기회를 열며 <평서노회 100년사> 출간 감사예배를 올린 바 있다. <평서노회 100년사>에는 이북에서 40, 남한에서 60년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의 기쁨과 슬픔이 낱낱이 담겨있다. 본 지면에서는 그중 다섯 가지 이야기를 간추려 소개한다. <편집자 주>

평서노회 100년사.

평서노회 결성되다

개신교 전래 초창기부터 평안도는 복음전파를 위한 중요한 거점이었다. 토마스 선교사가 순교한 곳이 평양 대동강변이었고, 중국에서 로스 선교사를 만나 복음을 들은 이들도 의주 출신의 청년들이었다. 선교사들은 평양에 숭실학교와 평양신학교를 세워 한국교회를 이끌어갈 주역들을 길러냈고, 1907년 시작된 한국교회 대부흥의 발원지 역시 평양의 장대현교회였다.

이런 분위기가 있었기에, 1912년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가 조직될 당시 전국의 7개 노회 중 2개 노회가 평안도에 존재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평남노회는 결성된 이후 비약적 성장을 거듭하며, 9년 후 다시 평서노회 평양노회 안주노회 등 세 개의 노회로 분립한다.

평서노회 제1회 회의록에 수록된 ‘평서노회 서문’.

평서노회는 1922년 2월 2일 진남포 비석리교회에서 목사 12명, 장로 39명이 모여 조직됐다. 초대 노회장은 송린서 목사였으며, 지역 경계는 평양의 서쪽인 강서군 용강군과 평안군 서남부 및 대동군 일부였다. 보은 김건우가 작성한 ‘평서노회 서문’에는 이 날의 감격을 “신도의 사랑이 충만하여 사사건건 감사함을 뭇 입으로 이기지 못하였다”고 표현한다.

같은 해 9월 10일 열린 제11회 총회에서 평서노회는 “노회 경내 교우 중 성경을 열심히 공부하는 이가 5388명이고, 훈춘에서는 이병하 목사가 전도하고 있으며, 경내 남녀 교우들이 날연보로 열심히 전도를 하고” 있다고 교세보고를 한다. 위대한 출발이었다.

진남포 득신고등성경학교 설립

1899년 평남 진남포시 용정리에서 예수교소학교가 시작했다. 10년 후 이 학교는 사무엘 마펫(한국명 마포삼열) 선교사의 명의로 ‘득신학교’라는 이름을 가지고 정식 설립인가를 받는다. 기독교교육을 표방한 학교였지만 학생들이 일반 초등학교 과정까지 함께 이수하도록 했고, 무엇보다 민족의식 개발에 역점을 두었다. 750평의 학교건물에, 재학생 수가 362명에 이를 정도로 호응도 좋았다.

1948년에 열린 진남포 득신고등성경학교 입학식 기념사진.

자연히 일제의 주목과 견제를 받게 된 득신학교는 조선어과목 폐지와 신사참배 강요라는 탄압 앞에서 결국 1943년 폐교의 길을 걷게 됐다. 2년 후 조국이 해방 되자, 평서노회는 학교 재건에 팔을 걷어 부친다. 그 결과 득신고등성경학교 설립이 이루어지고, 초대 교장으로 조순천 목사가 임명된다.

하지만 일제가 몰수한 득신학교 재산을 국가가 돌려주지 않자, 평서노회는 비석리교회 아래층을 잠정 임대해 교사로 사용하기로 한다. 어수선한 환경 속에 학교가 운영될 수밖에 없었지만, 1948년에는 무려 1000여 명의 입학지원자가 몰려들며 높은 인기를 얻었다. 학교가 발전하며 진남포 도원동에 건물을 마련해 기숙사까지 확보할 수 있었다.

안타깝게도 부흥기는 오래 가지 못했다. 북한을 장악한 공산정권이 학교에 김일성 초상화 게양 등 받아들이기 힘든 요구들을 하며 탄압해왔다. 학교는 점차 활력과 정체성을 잃어가다 6·25전쟁 발발과 함께 흩어지고 말았다.

평서노회 창립 멤버이자 부노회장을 지낸 스왈론(한국명 소안론) 선교사의 조선선교 40주년 기념식이 열리는 모습.

국채보상운동과 물산장려운동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기간 조국을 지키기 위해 기독교계가 주도한 대표적 시민운동이 국채보상운동과 물산장려운동이었다. 1904년 한일협약 체결 후, 대한제국이 일본으로부터 막대한 빚을 지게 되자 전 국민 차원의 국채보상운동이 일어났다. 기독교계에서는 이를 금주 금연운동과 연계해 ‘이천만 우리 동포가 석 달을 한정하고 담배를 피우지 않고, 그 담뱃값을 한 달에 20전씩만 모으면 일천삼백만원이 된다’고 홍보하며 국채보상운동에 앞장섰다.

고당 조만식 장로가 앞장선 물산장려운동에는 여러 평서노회 산하 교회들이 동참했다.

평서노회 산하 진남포교회의 사례가 특히 대표적이었다. 진남포교회 여성들은 ‘은금보배폐지부인회’라는 이름으로 궐기했다. 여자들은 반지를 비롯한 패물들을 폐지하고, 남자들은 담배를 끊어 그 비용으로 국채를 갚자는 운동이었다. 이 운동은 진남포 일대는 물론이고 전국적인 호응을 얻으며, 밥상에 반찬을 줄여 돈을 모으자는 ‘감찬운동’ 등으로 확산되어갔다.

물산장려운동은 1919년 3·1운동 이후 고당 조만식 장로가 주창한 비폭력 항일운동이다. 일본의 물자들이 우리 경제를 잠식하는 것을 막아내는 동시에, 한민족 스스로 힘을 키우자는 의지가 담겨있었다. 평남 강서 출신인 조만식 장로는 특히 고향에 있는 평서노회 소속 교회들을 순회하며 물산장려운동에 관한 강연을 전개했다. 이 강연회에는 여운형 한경직 등 여러 기독인 지도자들이 동참했고, 이에 대한 교회들의 호응도 적극적이었다.

수난과 핍박의 극복

평남노회(현 평서노회) 소속 교회들은 1919년 3·1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반석교회 사천교회 원장교회 등은 3월 4일 대동군의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수많은 성도들이 시위현장에서 일본 헌병과 경찰의 총격으로, 혹은 체포 후 당한 고문으로 목숨을 잃었다.

평서노회 설립 90주년 기념예배에서 합창하는 목회자 부부 찬양대.

세 교회를 포함해 설을교회 고읍교회 용악동교회 신흥동교회 청산포교회 외서창교회 한천교회 등 총 31개 교회가 교인들의 투옥과 사망 혹은 예배당 파손 등의 고초를 당했다. 봉기 이후 일제의 집요한 감시와 탄압 때문에 아예 예배를 모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 같은 환란을 겪으면서도 교회들은 오히려 대중의 신망을 얻고 부흥의 길을 걸었다. 진남포 억량기교회 이경모 장로처럼 항일 지하운동에 투신하는 인물도 나타났다.

1945년 온 교회들이 고대했던 해방이 왔지만 이번에는 공산정권의 압제가 시작됐다. 1949년에 벌어진 진남포 4·19 사건은 그 절정이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억량기교회 김덕모 목사, 비석리교회 송일길 목사 등 48명의 기독교인들이 순교했다. 이 사건과는 별개로 조순천 박성빈 우성옥 조승익 목사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체포된 후 그대로 행방불명되기도 했다.

결국 6·25가 발발하자 평서노회원들 상당수가 월남을 선택했고, 이들을 통해 평서노회의 명맥은 남한에서 이어지게 된다.

남한에서 재건 후 총회장 배출까지

진남포 4·19 사건 이후 열리지 못하던 평서노회 정기회는 전쟁이 아직 한창이던 1952년 4월 5일 피난지인 부산 영락교회에서 열렸다. 앞선 회기를 계승한다는 뜻에서 제48회 정기회로 모였다. 4월 29일에는 제37회 총회에 정식으로 총대를 파송해 참여하기도 했다. 이듬해에는 제49회 정기회를 대전중앙교회에서 열고 이순경 목사를 노회장으로 선출했다.

평서노회 소속 권순웅 목사가 제107회 총회장으로 취임해 회무를 진행하고 있다.

WCC 파동으로 총회가 분열할 당시 평서노회는 하마터면 통째로 예장통합에 넘어갈 뻔 했다. 하지만 김지학 김선구 목사와 림호순 송형칠 김병수 장로 등 총 5명이 1961년 7월 16일 낙선교회에서 제61회 정기회로 모이며, 평서노회의 역사가 이어질 수 있었다. 이후 예장통합 평서노회와 평양노회가 합병하면서, 예장합동 평서노회가 홀로 역사를 계승하게 됐다.

점차 성장하는 교세 속에서 21세기를 맞은 평서노회는 2000년 제131회 정기회에서 노회발전을 위한 교육정책위원회와 선교위원회를 조직해 새 시대를 맞았고, 2002년에는 노회 설립 80주년 기념예배와 함께 백두산·중국선교대회를 개최하며 통일과 북한선교의 비전을 확인했다. 이후 해마다 선교대회를 개최하며 세계선교의 사명을 다짐해오고 있다. 노회 설립 100주년을 맞은 지난해에는 주다산교회 권순웅 목사가 제107회 총회장으로 취임하며 기쁨이 배가 됐다.

기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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