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dnesday, December 11, 2024

“신실한 장로 최재형 감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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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들을 입양해 사랑을 실천한 감사원장 최재형 장로. “입양은 진열대에 있는 아이들을 물건 고르듯이 고르는 것이 아니다”라며 “아이의 상태가 어떻든 간에 아이에게 무언가를 기대해서 입양을 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입양은 말 그대로 아이에게 사랑과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아무런 조건 없이

제공하겠다는 다짐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 군인의 아들로 태어나 판사의 길 걸으며 ‘원칙주의자’, ‘작은 예수’ 평가 받기까지
  • 부친이 최재형 원장에게 써준 네 개의 ‘예언적’ 사자성어
  • 최재형 원장이 필리핀 선교지에서 구겨진 ‘바람개비’를 일일이 폈던 이유
  • 같은 아파트에서 살았던 법조인 회고 “최재형 원장 부부는 아들들에게 헌신, 그 자체였다”
  • 아내의 지극한 아들 사랑 “막내가 유학을 떠납니다. 그 아들을 보내려니 허전합니다”



※ 최재형 원장이 오랫동안 출석해온 신촌교회를 찾았다. 그곳에서 남진희(35) 목사와 꽤 긴 시간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남진희 목사는 신촌교회에서 7년째 일하고 있으며, 최재형 원장과 깊은 교분을 나눴던 목회자다. 남 목사와의 ‘일문일답’을 통해 바라본 최재형 감사원장에 대한 신앙과 삶의 이야기다. (월간조선 최우석 · 조성호 기자)


— ‘장로 최재형’은 어떤 사람입니까.
“요즘 한국 교회 내에서 장로라고 하면 ‘덕스럽지 못하다’는 얘기가 많이 나옵니다. 장로가 어떤 계급처럼 일반 신도들과 다른 계층으로 여겨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도 다른 교회에서 사회적으로 명망이 있는,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나봤습니다. 저는 그분들의 인품을 대부분 ‘학습된 겸손’에서 나온다고 생각했어요. 그에 비해 최재형 장로님은 참 보기 드문 분입니다.”

— 어떻게 보기 드뭅니까.
“최재형 장로님은 신앙이나 삶이 괴리되지 않아요. 항상 일치해요. 아름다운 사람이라 해도 가까이서 보면 흠이 보이잖아요? 근데 이분은 아니에요. 늘 한결같고 소탈해요. 이분은 자기만의 분명한 원칙이 있고, 그게 일관됩니다. 심지어 이런 생각도 했어요. ‘판사들이 다 이런 건가’ 법관에게 이런 이야기 하면 좀 웃길 수 있지만 ‘이분은 법 없이도 살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요.”

— 구체적인 사례가 있습니까.
“올해 초 우리 교회 집사님이 돌아가셨을 때 얘깁니다. 이 집사님은 변변찮은 직장도 없고, 가족도 몸이 안 좋은 아들만 있는 분이셨어요. 보셨다시피 우리 교회(신촌교회)는 굉장히 서민적인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그 집사님께 잘 보인다고 어떤 이득을 얻을 게 아무것도 없어요. 그런데 최재형 장로님은 그분 장례에 오셨어요. 현직 감사원장이 장례에 오신 거죠. 이미 조화(弔花)를 보냈음에도요. 얼굴만 내밀고 가신 게 아니라 계속 자리를 지키셨어요. 장로님은 교회 내의 모든 경조사(慶弔事), 특히 조사엔 빠짐없이 다 참석하세요.”

— 장로라는 책임감에 그랬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4년 전 얘기를 해드릴게요. 그때 최 장로님이랑 필리핀 선교를 갔어요. 필리핀 같은 곳에 선교를 가면 어린아이들이 정말 많이 몰려옵니다. 그럼 준비한 선물도 다 동이 나 아이들을 돌려보낼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장로님께 ‘포화 상태라 더는 안 될 것 같습니다. 내일 일정도 있고요’라고 말씀드렸더니 ‘애들이 얼마나 상처받고 돌아가겠나. 그냥 돌려보낼 수 없다’면서 준비해 간 바람개비를 나눠 주시더라고요.”

2016년 최재형 감사원장은 필리핀 선교를 갔을 때 현지 아이들에게 선물로 바람개비를 만들어 주었다. 당시 선교를 담당했던 남진희 신촌교회 목사는 “이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감동했다”고 회고했다. 사진=신촌교회 제공.


— 바람개비요?
“그냥 돌려보낼 수 없으니 바람개비라도 주자는 거였어요. 바람개비 중에는 행사하느라 구겨진 것도 있고 그랬거든요. 빨리 애들한테 줘서 돌려보내야 하는데 최재형 장로님은 바람개비를 하나씩 하나씩 다 확인하시더라고요. 구겨진 걸 일일이 편 다음에 제대로 돌아가는지까지 확인하신 거죠. 장로님은 ‘우리가 선교를 하러 왔으니 아이들에게 감동을 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신 거 같아요. 한 사람 한 사람을 위하는 장로님의 마음을 깊이 깨달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날 밤 우리끼리 피드백을 하면서 장로님의 그런 모습을 상기하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을 섬기는 마음을 갖자’고 다짐했을 정도니까요.”

남진희 목사는 최재형 원장의 이 모습을 촬영한 영상이 있다고 했다. 기자는 그 영상을 볼 수 있었다. 필리핀 선교지에서의 최재형 원장은 판사도 장로도 아니었다. 그곳 아이들과 한데 어울려 순수한 모습으로 함께 호흡하고 있었다.

남 목사는 필리핀 선교 당시 최재형 감사원장이 적은 기도 제목도 보여줬다. 필리핀 선교를 떠남에 있어 일종의 ‘마음가짐’을 적은 글이었다. 최재형 원장의 기도 제목은 ‘선교 과정이 정결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과 ‘주님의 마음으로 필리핀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이었다. 남진희 목사는 또 다른 일화를 들려줬다.

필리핀 선교지에서 짐을 옮기는 최재형 감사원장. 남진희 신촌교회 목사는 최재형 원장을 “늘 솔선수범하는 분”이라고 했다. 사진=신촌교회 제공.


“선교를 갔던 필리핀 불라칸(Bulacan)은 제대로 인프라가 갖춰진 곳이 아니에요. 빈민가죠. 사실 씻는 것도 아주 불편해요. 물이 제대로 안 나오는 곳이니까요. 잠자리도 불편해 남자들은 조그마한 예배당에 대충 매트 깔고 누워 자야 하는 상황이죠. 최재형 장로님은 그런 곳에서 그냥 주무세요. 절대 숙소를 따로 잡지 않으세요. 다른 데에서 잠시 쉬었다가 행사 때 잠깐 얼굴 비치는 그런 것도 없어요. 공항 출발부터 현지(現地)에서까지 우리랑 똑같이 참여하는 거죠. 짐을 나를 때에도 더 솔선수범하세요. 거기 기자가 있겠어요, 아니면 감시하는 사람이 있겠어요? 그런데도 평소랑 똑같이, 그리고 진심을 담아 행동하시는 겁니다.”

 “하루는 일정이 끝나고 저녁에 최재형 장로님은 물론 교역자들이 다 함께 샤워를 했어요. 물 사정이 안 좋으니 찔끔찔끔 나오는 물로 다 같이 씻고, 등 밀어주고 그랬죠. 사실 장로님도 연세가 있고 사회적 지위가 있는데 발가벗고 샤워하는 게 쑥스러울 수 있잖아요. 장로님은 그런 권위의식이 없어요. 그냥 허물없이 함께 샤워를 했어요. 그러곤 다 같이 선풍기 켜고 앉아 그날 있었던 일들에 대해 얘기를 나눴죠. 참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 아까 말한 소탈함이 그런 모습인 거 같습니다.
 “소탈하다는 말로는 좀 부족하죠. 그냥 적선(積善)하듯이 베푸는 게 아니라는 거죠. 보통 사람들의 눈높이에서 바라보고 호흡하고 생활하는 그런 장로님의 모습에서 우리도 완전히 충격을 받았습니다. 기독교에는 ‘작은 예수’라는 말이 있어요. 예수가 그랬듯 작은 자, 보잘것없는 자를 진심을 다해 섬기는 사람들을 흔히 ‘작은 예수’라고 일컬어요. 아마도 최재형 장로님이 ‘작은 예수’가 아닐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 감사원장이 된 후에도 뵌 적이 있습니까.
 “1부 예배 ‘호산나 성가대’에 매주 나오셨어요. 지금은 코로나19로 비대면 예배가 됐지만, 그전까지는 성가대 활동을 계속하셨어요. 감사원장 취임 후, 우리 교회 부교역자(부목사)들을 초대해줘서 (감사원에) 한번 간 적이 있어요. 가면 직접 원두커피를 내려주세요. 장로님이 커피를 좋아하세요. 그래서 좋은 원두 있으면 우리에게 나눠도 주세요. 장로님 중에는 일부 공직(公職)을 맡으면 교회에서 하던 봉사를 내려놓는 경우가 많아요. 최재형 장로님은 교회에서 맡은 봉사에 다 참석하세요. 근데 본인이 드러나는 자리는 안 가세요.(웃음) 농어촌 선교 같은 데 가면 앞에 나가서 몇 마디 이야기할 법도 한데 그런 건 전혀 안 하세요. 이분이 집중하는 건 딱 두 가지, 전도(傳道)와 봉사입니다.”

— 부인 이소연씨는 어떻습니까.
 “부인도 장로님과 똑같아요. 신앙심이나 인품 전부 다요. 우리 교회에서 주방 봉사를 하세요. 원래 장로님 댁이 서울 목동입니다. 이소연 권사님은 목동 지역에서 집사 두 분이랑 같이 협력하면서 그 지역을 위해 봉사를 많이 하세요. 아주 화기애애하고 분위기가 좋은 곳입니다.”

최재형 감사원장이 어린 막내아들과 함께 촬영한 사진. 사진=부인 이소연씨 페이스북


두 아들의 ‘입양’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강명훈 변호사는 기자에게 “최재형 원장을 말할 때 기독교와 관련해 꼭 얘기해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는데, 그 사례 중 하나가 바로 ‘입양’이었다.

최재형 원장 부부에게는 두 딸이 있고, 그 밑으로 아들 둘을 각각 2000년(차남)과 2006년(장남) 입양했다. 흔히 ‘가슴으로 낳아 기른다’고 표현하지만, 이는 쉬운 게 아니다. 게다가 최재형 원장 부부는 한 명이 아닌 둘을 자녀로 받아들였다. 여기엔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최영섭 대령이 말하는 ‘입양 스토리’다.

“며느리(이소연씨)가 서울 동대문 근처에 있던 고아(孤兒)들을 기르는 기관에서 봉사를 했어요. 거기서 핏덩어리를 맡아 1년 정도 봉사 차원에서 키웠는데, 그때 정이 많이 들었나 봐요. 그래서 결심을 한 거죠. 그렇게 받아들인 아이가 지금의 둘째 아들이에요. 내가 재형이한테 그랬어요. ‘네 나이가 이제 50줄에 접어드는데 괜찮겠냐’고요. 재형이 부부는 이미 결심을 굳힌 것 같더라고요.”

최영섭 대령은 손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재형이 첫째 아들이 나처럼 해군에 입대했잖아요. 근데 이 녀석이 사격에서 1등을 했다고 그러더라고. 나중에 갑판병으로 배정될 때에도 10등 이내로 들어갔다고 하대요. 손자 두 놈이 나를 좋아해요.(웃음) 그중 큰놈이 나한테 ‘할아버지 제가 군대에서 배운 게 있어요’ 그러대. ‘뭐냐’고 물었더니 ‘인생을 사는 데 노력한 만큼, 땀 흘린 만큼 ‘리워드'(reward·보상)가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하대요. 큰놈은 손재주가 있어서 지금 패션 디자인 계통에서 일하고 있어요. 재형이 부부가 두 아들을 살뜰하게 키웠어요. 그건 내가 너무 잘 알지.”

최재형 감사원장 부부가 ‘가슴으로 낳은’ 두 아들에게 지극정성이었다는 건 여러 계통으로 확인이 된다. 과거 최재형 원장 부부와 서울 목동 아파트에서 함께 살았던 한 법조인의 회고다.

“최재형 원장은 제가 살던 아파트 바로 아래층에 사셨어요. 막내아들이 초등학생 때인가, 아마 그랬을 거예요. 하루는 막내아들이 등교하면서 준비물을 두고 집을 나섰나 봐요. 그랬더니 (최재형) 원장님 부부가 집 밖에까지 나와 챙겨주더라고요. 모르는 사람들이 봤으면 그저 ‘친아들 챙겨주고 있겠거니…’ 했을 거예요. 최재형 원장 부부는 아들들에게 헌신, 그 자체였습니다. 아마 ‘가슴으로 낳았다’는 걸 모르는 사람도 있었을 겁니다.”

최재형 원장의 차남은 지난 8월 17일 육군에 입대했다. 그래서일까. 최재형 원장 카카오톡 계정에는 ‘○○야 힘내라’라고 써 있다. 여기서 ‘○○’(이)가 바로 최 원장 차남이다. 극진한 ‘아들 사랑’은 아내 이소연씨의 페이스북에서도 확인된다. 2014년 2월 25일 이소연씨가 페이스북에 올린 글 중 한 대목이다.

〈즐거운 꿈을 또 꾸었습니다. 사람들이 내게 딸 두 명의 엄마라 할 때, 제 맘속에는 항상 딸들뿐 아니라 아들들이 내게 있을 거 같은 그 당시로는 이상한 확신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제가 알 수도 없었던 소망을 주께서 주셨던 거 같아요. 우리 막내 ○○가 중국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손목이 부러지기 전까지는 전혀 상상할 수도 없었던 일입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의 마음을 만지셨습니다. ○○가 어릴 적 엄마를 쳐다보던 그 눈길에서 저는 주님이 날 보시면 이리 사랑스런 눈으로 보실 거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아들을 보내려니 허전합니다. 날개를 달고 넓은 곳으로 비상하려는 우리 아들 축복해주며 웃으며 보내주렵니다.〉


차남(막내아들)은 중국 하얼빈(哈爾濱)에 있는 기독교 계열 학교로 진학했다. 이소연씨는 차남을 이 학교에 입학시킨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2014년 2월14일자 페이스북 글이다.

〈내가 학교 다닐 때는 선생님들은 늘 ‘멀기만 한 당신’이셨다. 고등학교 때는 특히 힘들었다. 잔디를 아이들이 모르고 밟으면 잔디에 백 번씩 절하라는 학교, 조회시간에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불려 나가 전교생 앞에서 뺨 맞는 학교, 수업시간에 선생님과 눈 마주치면, 지난 시간에 배운 거 물어봐서 모르면 교실 끝에 밀려가도록 때리던 선생님…. 선생님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떨리고 두려움이 생기곤 했다. 내가 받은 상처가 많아서인지, 나는 내 아들들을 일반 학교에 넣고 싶지 않았다…. 자존감이 낮은 우리 아이들이 받는 대우를 미리부터 너무 겁먹었던 것 같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참 좋은 선생님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이제 ○○(차남)가 6년을 다니던 학교를 떠나 하얼빈이라는 먼 곳에 있는 만방학교로 간다.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는데, 하나님이 새로운 길을 여셨다. 오늘 종업식으로 드림학교, 이 정든 아름다운 학교를 떠난다.

교장 선생님, 선생님들의 퇴임식이 아이들과 선생님, 엄마들의 눈물 바다가 되었다. 배고파하는 아이들을 위해 늘 간식 준비해놓고 기다리시는 선생님들, 내가 엄마인지 선생님이 헷갈릴 정도로 아이를 이해해주시던 선생님들….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늘 장점으로 격려해주시던 분들, 아이들 한 명 한 명에게 편지 써주시는 교장 선생님. 아이들이 어떻게 행복하게 공부할 수 있을까 늘 기도하시는 우리 사랑스러운 선생님들. 고마워요. 당신들의 사랑의 수고로 우리 아들들, 아니 저까지 치유받고 떠납니다. 사랑해요. 감사해요.〉

이소연씨가 2012년 3월 7일 남긴 글에서도 두 아들에 대한 사랑이 듬뿍 배어 나온다.

〈○○(장남)이가 두레자연학교에 입학을 했다. 자기는 안 춥다고 고집부리며 이불도 안 가져간 아들이 추워진 날씨 때문에 걱정스럽다. 에구 옷이라도 입고 자겠지…. ○○(차남)는 지각할까 봐 노심초사 5시 반에 일어나 준비하고 7시면 나간다. 오늘도 8시에 도착했다고 기쁜 목소리로 전화 왔다. 학교가 멀지만 씩씩하게 다니는 ○○가 고맙다.〉

이소연씨는 이화여대 의류직물학과를 졸업했다. 이소연씨의 선친이자 최재형 감사원장의 장인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중견 기업을 운영했던 고(故) 이해원(2015년 별세)씨다. 장녀인 이소연씨 밑으로 여동생 둘, 남동생이 한 명 있다.  (월간조선 2020년 10월호 중에서)

부친 최영섭 대령이 아들 최재형 감사원장에게 가르쳐준 교훈. 〈단기출진(單騎出陣): 홀로 진지를 박차고 나가면, 불면고전(不免苦戰):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천우신조(天佑神助): 그럴 때 하늘(하나님)에 도움을 구하면, 탕정구국(蕩定救國): 나라를 안정시키고 구할 수 있다.〉


한편, 부친 최영섭 대령이 아들 최재형 감사원장에게 써준 네 개의 ‘예언적’ 사자성어는 〈단기출진(單騎出陣): ‘홀로 진지를 박차고 나가면’, 불면고전(不免苦戰): ‘고전을 면치 못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천우신조(天佑神助): 그럴 때 하늘(하나님)에 도움을 구하면’, 탕정구국(蕩定救國): ‘나라를 안정시키고 구할 수 있다.’〉이다. 이것은 최재형 감사원장의 인생 가르침이 되었다.

출처 : 뉴스제이 (http://www.newsjesu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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