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November 8, 2024

[부활절특집] 하나님 만나 아픔이 기쁨으로 … 고난은 축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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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주간에 만난 신현국 목사

자녀 다섯 중 셋 중증장애…둘은 먼저 떠나

평생 일군 장애인 시설 밀알복지재단 기부

자신을 ‘고난 속에서도 행복한 목사’라고 말하는 신현국 목사.

처음 듣고는 ‘고난’이라는 말에 이보다 적합한 인물이 있을까 싶었다.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사가 이렇게 아픔의 연속일지, 하나님께서 너무 하셨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그렇다면 잘못 찾아온 것”이라 말한다. 자신은 ‘행복’과 어울리는 사람이라며, 너무 많은 은혜와 축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고난주간, 기독신문이 만난 인물은 어느 누구보다 하나님 안에서 풍성한 기쁨을 누리고 있었다.

고난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성경인물이 있다. 자식을 잃고 재산을 잃고 건강마저 잃은 욥이다. 여든두 살의 한 은퇴목사를 두고 ‘현대판 욥’이라고 소개하는 누군가의 말을 들었을 때, 아무리 심한 어려움을 겪었어도 과장이 심하다 생각했다. 그러나 그가 지나온 삶을 듣고 보니 오히려 욥보다 심하면 심했지, 결코 덜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장애인 자녀를 키우고 또 먼저 자녀를 떠나보내는 과정 속에 사명을 받아 평생 장애인 사역에 힘쓴 그는 지난해 자신이 설립해 운영해온 장애인 시설을 밀말복지재단에 기부했다.

전국장애인선교연합회 6대 회장을 역임한 신현국 목사는 번듯한 집안에서 태어나 명문대에 입학한 수재였다. 대학 시절 아버지가 돌아가시는 아픔을 겪었지만,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사업이 나름 잘 되어 탄탄대로의 길을 걷는 듯했다. 그러나 사업이 망하고부터는 계속 내리막길이었고 고난의 연속이었다.

결혼 전 30대 때는 동생 두 명이 물에 빠져 죽었고, 결혼 후 낳은 5명의 자녀들 중 3명이 중증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셋째 딸은 지체와 정신장애로 복합 1급 장애인이고, 미숙아로 태어난 쌍둥이 아들은 모두 뇌병변 중증장애인이었다. 그나마도 그가 가장 의지했던 첫째 딸은 위암으로 34살에 세상을 떠났고, 둘째 딸은 희귀 난치성 질환인 근이양증을 앓고 있다. 쌍둥이 두 아들 중 한 명은 20여 년 동안 침대에만 누워 있다가 하늘나라로 갔다. 아내마저 둘째 딸과 같은 근이양증으로 별세했고, 신 목사 본인도 당뇨와 간경화로 치료 중이다.

오랜만에 베다니동산을 찾은 신 목사는 긴 시간 함께해온 장애인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이 고비만 넘어서면 괜찮을 것 같았는데 그 고개를 넘어서니 또 다른 고난이 저를 숨쉬기 힘들게 했어요.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보니 술로 하루하루를 버틸 뿐이었죠.”

가난 중에 맞은 가족의 아픔, 당장 끼니가 걱정인 상황에서 치료는 사치였다. 장애를 가진 자녀를 해외로 입양을 보낼까 알아보기도 하고, 병원 앞에 버리려고도 했다. 아이들을 죽이고 자살을 할까 고민했고, 온 가족이 함께 죽어 이 고통을 끝내고도 싶었다. 그렇지만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아니, 그런 그를 하나님께서는 버려두지 않으셨다.

아내와 함께 자녀들을 들쳐업고 이곳저곳에 기도를 받으러 다니던 신 목사는 그곳에서 다시 하나님을 만났다. 중학교 3학년 때 처음 만났지만, 성인이 되어서는 사업한다는 핑계로 그 뒤로는 잊고 살던 하나님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가 평온할 때나 방황할 때나, 또 고난에 힘겨워할 때도 늘 곁에 계셨다. 히브리서 12장에 나타난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시는 하나님’ 뿐만 아니라 ‘피곤한 손과 연약한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는 하나님’ 역시 그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모습이었다.

신 목사의 막내 아들 인철 씨는 현재 밀알복지재단 직업재활시설인 굿윌스토어에서 근무하고 있다.

“하나님을 찾기 전에는 완전히 캄캄한 암흑 같은 터널을 지나가는 기분이었다면, 하나님을 만나고 그 아픔은 기쁨이 되었습니다. 깨닫는 것이 은혜이고 축복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하나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결단했죠. 때마침 하나님께서는 제 마음에 ‘장애인을 위해서 살라’는 사명을 심어주셨습니다.”

처음부터 장애인 사역을 위해 부름 받고 총신신대원에 들어간 신 목사는 이후 10여 년간 개척 목회를 이어가던 중 1998년 넷째의 소천을 계기로 같은 해 장애인 복지 시설인 ‘베다니동산’(구 샬롬의집)을 시작했다. “내 아이가 겪은 아픔을 알기 때문에 다른 이들의 아픔이 눈에 들어오고 그들의 삶에 도움을 주고 싶었다”는 그의 말처럼 베다니동산은 이후 이전과 확장을 거듭한 끝에 경기도 광주에 정신지체 장애인들의 쉼터이자 섬김이들이 가족처럼 함께하는 신앙공동체로 자리잡았다. 이곳에서 신 목사는 신앙과 재활교육으로 20여 명의 장애인들의 자립을 모색하며 사회참여를 목표로 훈련에 매진해왔다. 그리고 지난해 4월 그는 지난 23년 동안 피땀으로 일궈온 베다니동산을 밀알복지재단(이사장:홍정길 목사)에 아무런 조건 없이 기부한다는 서약을 했다. 토지 면적 727m², 약 260m² 건물의 규모다.

그가 낳은 다섯 명의 자녀들 중 세 명은 태어날 때부터 중증장애를 갖고 있었고, 첫째와 넷째는 먼저 세상을 떠나는 아픔을 겪었다. 사진 속 둘째 은경 씨와 셋째 은선 씨, 다섯 째 인철 씨를 신 목사는 ‘살아남은 자녀들’이라고 표현했다.

“베다니동산은 하나님께서 시작하셔서 키우신 곳입니다. 제가 했다고 생각하면 아깝겠지만 하나님께서 다 하셨고 저는 청지기였을 뿐이니까요. 드릴 수 있는 것이 감사하고 기쁩니다.”

자신의 인생을 ‘평온의 시기’, ‘방황의 시기’, ‘고난의 시기’, 그리고 ‘신앙의 시기’로 나눈 신 목사는 “이제 죽는 날까지 하나님만 자랑하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증거하는 데 쓰임 받고 싶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지금 자신과 같은 고난 속에 있는 사람들이 힘을 얻고 하나님을 더 붙들고 매달릴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하고 있다.

“고난은 엄청 많았으나 가장 행복했다고 말하고 싶어요. 제게 고난은 오히려 하나님을 붙들고 하나님께 매달리게 하는 축복이었습니다.”

기독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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