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바쁘게 돌아갑니다. 생각할 겨를이 없습니다. 빨리 결정해야 하고 속히 행동으로 옮겨야 합니다. 심사숙고하는 것을 답답해합니다. 기다리지 못하고,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느긋함, 여유가 없습니다. 뒤처지지 않으려면, 말도 행동도 생각도 빨라야 합니다. 신중하면 결정력이 부족하고 느린 사람으로 취급합니다. 그러니, 사고가 단편적이고 즉흥적이 됩니다.
‘마타이스 뉠케’가 지은 책, “나를 소모하지 않는 현명한 태도에 관하여”에서 나오는 글입니다. “사람들이 어떤 대상에 주목하는 시간이 지난 10년 사이에 12초에서 8초로 줄었다. 8초 후에도 시선을 계속 붙잡지 못하면 사람들은 곧바로 다른 곳으로 떠나간다. 연구에 따르면 금붕어가 주의를 기울이는 시간이 9초라고 한다. 인간의 집중력은 금붕어보다 짧다.” 어쩌면 지금은 더 줄어 5초인지도 모릅니다. 참으로 서글픈 현실입니다.
점점 생각이 짧아지고 있습니다. 문제나 상황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성급하게 판단합니다. 표면적인 것 만 보고 이면적인 것을 보지 못합니다. 마하트마 간디는 “행동하기 전에 먼저 생각하라. 말하기 전에 먼저 듣고, 비판하기 전에 먼저 이해하라.”라고 했습니다. 신중함이 필요합니다. 어리석음은 짧은 생각에서 나오지만. 참 지혜는 깊은 생각에서 나옵니다.
뱀이 하와를 미혹할 때 어떠했습니까?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기 그 열매를 따 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3:6) 생각 없이 보는 순간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 그 속에 들어왔습니다. 아담도 아내를 따라 하나님의 명령은 잊어버리고, 생각 없이 쉽게 금단의 열매를 먹었습니다. 인류의 최초의 범죄는 짧은 생각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자기를 성찰하고 깊게 사고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러하기 위해 매일 성경을 묵상하는 습관을 길러야 합니다. 베뢰아 성도들처럼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해야 합니다. 말씀을 깊이 묵상할 때, 짧은 생각이 조금씩 깊어지기 시작합니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시편19: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