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July 19, 2024

[박헌승 목사 칼럼] “가을을 타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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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승 목사(캐나다 서부장로교회)

“가을을 타는 남자”

가을이 저만치 가고 있습니다. 단풍이 지고 낙엽이 뒹굴고 있습니다. 가을과 인사 한번 제대로 나누지 못했는데, 벌써 헤어져야 하니 아쉬움에 속이 탑니다. 추억 한 번 만들지 못하고 떠나보내는 것 같아 미안하기만 합니다. 독서의 계절이지만, 책 한 권 밑줄 치며 제대로 읽지를 못했습니다. 오색찬란한 가을 햇살을 만끽하지도 못했습니다. 호젓하게 숲속 길을 여유롭게 걸어보지도 못했습니다.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닌데, 또 후회하는 내가 밉습니다.

어느 분이 저한테 “목사님, 마음이 허하세요?” 걱정스레 물었습니다. 쓴웃음으로 답하면서, 곰곰이 나를 돌아보았습니다. 쓸쓸한 가을의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나도 모르게 가을을 타고 있었나 봅니다. 우울해지고 침체되는 기분입니다. 이렇게 또 한 해가 저문다고 생각하니 울적해지고 허전한 생각이 듭니다. 모든 것이 쉴 새 없이 돌아가는 틈바구니에서, 혼자인 것 같습니다. 어느새 타인이 되어 있는 느낌입니다.

차를 타고 교회 앞을 지나가는데, 십자가 밑 교회 벽 일부가 비에 젖어 있었습니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내려서 사진에 담았습니다. 사진을 보니, 빗물에 젖은 교회가 십자가 밑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 같았습니다. 빗물 자국이 예수님의 십자가 눈물 자국 같아 가슴이 먹먹했습니다. “예수님, 왜 우세요? 제가 마음 아프게 한 것이 너무 많지요?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눈물이 절로 나왔습니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했습니다. 왜 빗물에 젖은 벽이 눈물에 젖은 걸로 보일까? 내가 정말 가을을 타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그래도 목사인데, 감정하나 제대로 못 추스르는 것 같아 내가 싫었습니다. 영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성경을 소리내어 읽었습니다. 찬송을 불렀습니다. 성령 충만을 갈구하며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그래도 속이 시원하지 않았습니다. 더욱 간절히 은혜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은은히 솟아오르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너도 사람이야. 너는 얼마든지 가을을 탈 수 있는 사람이야.”

“인생은 그날이 풀과 같으며 그 영화가 들의 꽃과 같도다” (시편1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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